유배·돌·신화로 제주 다시 읽는다… 20개국 69팀 제주비엔날레 개막
25일부터 11월15일까지 83일간 개최
도립미술관·돌문화공원·원도심 5곳 전시
추사 유배부터 우크라이나 전쟁 기억까지
제주어 '허끄곡 모닥치곡 이야홍' 주제로
【파이낸셜뉴스 제주=정용복 기자】 추사 김정희의 유배와 제주 현무암, 일만팔천 신의 섬에 전해지는 신화가 세계 현대미술과 만난다. 20개국 69팀의 작가들이 제주 곳곳을 무대로 역사적 고립과 이주, 전쟁의 기억, 자연과 인간의 공생을 동시대 미술로 풀어낸다.
24일 제주특별자치도에 따르면 도가 주최하고 제주도립미술관이 주관하는 '2026 제5회 제주비엔날레'가 25일 개막해 11월15일까지 83일간 열린다.
올해 주제는 '허끄곡 모닥치곡 이야홍: 변용의 기술'이다. '허끄곡 모닥치곡'은 제주어로 서로 다른 것이 섞이고 모이는 모습을 뜻하고 '이야홍'은 제주민요 '이야홍 타령'의 후렴구에서 가져왔다.
제주가 외부 문화와 만나 자신만의 문화로 바꿔온 과정에 미술의 시선을 대는 셈이다. 지난 제4회 비엔날레가 '표류'를 중심으로 제주와 남방 해양문화의 관계를 살폈다면 올해는 유배와 돌문화, 신화를 통해 제주와 북방문화가 만난 흔적을 조명한다.
전시장도 한곳에 머물지 않는다. 제주도립미술관과 제주돌문화공원 오백장군갤러리, 제주아트플랫폼, 예술공간 이아, 갤러리레미콘 등 5개 공간을 연결한다.
제주도립미술관의 '추사의 견지에서: 유배'는 19세기 추사 김정희의 제주 유배에서 출발한다. 김정희의 '세한도' 영인본과 제주 문자도, 현중화의 '취시선'을 시작으로 오석훈의 대형 수묵 '한라영곡', 조기섭의 '걷는 풍경: 7계', 이현태의 오디오비주얼 설치 등이 이어진다.
2층 '세한: 동시대 유배'에서는 유배라는 역사적 경험을 난민과 이주, 강제된 이동 등 오늘의 문제와 연결한다. 제주 작가 이쥬의 신작 '아포리아의 증인'은 인공지능(AI)으로 만든 여섯 증인의 초상을 활용한다. 관람객이 질문에 답하면 마지막에 한 증인과 연결되며 피해자와 가해자, 방관자의 경계를 스스로 돌아보도록 구성했다.
아랍에미리트 작가 알라아 에드리스는 폐허가 된 고대 유적과 신화·전설을 현재의 삶과 연결하며 시간이 반복되고 기억이 변형되는 과정을 작품으로 보여준다.
제주돌문화공원 오백장군갤러리는 '검으나 돌은 구르고 굴러: 돌문화'를 펼친다. 김현성의 신작 '담지체'는 24개의 물레 위에 돌을 올려 관람객이 직접 물레를 돌리도록 했다. 돌이 서로 스치는 마찰음이 하나의 리듬을 만들면서 제주의 돌을 바라보는 방식도 시각에서 청각으로 확장된다.
일본 작가 오카베 마사오와 미나토 치히로는 제주와 홋카이도, 히로시마의 기억을 잇는 신작 'TIME RINGS'를 선보인다. 전시장 습기가 작품을 변화시키는 갈라 포라스-김의 작업과 운석을 주인공으로 삼은 룸톤의 가상현실(VR) 작품 등도 만날 수 있다.
제주 원도심은 신화의 전시장이 된다. 제주아트플랫폼과 예술공간 이아, 갤러리레미콘에서 열리는 '큰 할망의 배꼽: 신화'는 제주 신화와 공동체 기억을 오늘의 예술 언어로 다시 구성한다.
제주아트플랫폼에서는 캐나다 작가 뱅상 모리세와 캐롤라인 로버트의 '테라(TERRA)'가 눈길을 끈다. 높이 6m, 폭 15m가 넘는 벽 전체가 거대한 화면이 된다. 관람객 움직임에 반응하면서 사람과 흙이 서로를 빚고 변화하는 장면이 '살아있는 벽화'처럼 펼쳐진다.
우크라이나 작가 자나 카디로바의 'Performance VI'도 주목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사라진 마을과 사람들의 기억을 다뤄온 작가는 기존 프로젝트를 제주라는 장소에 맞게 다시 구성했다. 제주도민과 진행한 초상화 워크숍 결과물이 옛 극장 객석을 채우며 전쟁으로 파괴된 공동체의 회복과 연대를 이야기한다.
예술공간 이아에서는 제주의 녹나무를 신목이자 우주목으로 바라보는 작업과 제주 해녀의 숨비소리, 심방과 굿, 국가민속문화유산인 제주도 내왓당 무신도, 천지왕본풀이에서 출발한 작품 등이 제주 신화를 각기 다른 시선으로 해석한다.
이종후 제주도립미술관장이 예술감독을 맡았다. 이 감독은 "유배와 신화, 돌문화를 통해 북방문화와 제주가 이어져 온 흐름을 살펴보고자 했다"며 "서로 다른 문화가 제주에서 뒤섞이고 합쳐지며 만들어낸 변용의 기술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공생을 이야기하려 한다"고 말했다.
개막식은 본 전시 개막을 하루 앞둔 24일 오후 6시 제주 관덕정 광장에서 열린다. 비엔날레 홍보대사 김창옥의 인사말과 경기소리꾼 이희문의 축하공연 등이 마련된다. 성인 입장료는 8000원이다.
[email protected] 정용복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