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韓 제조업, 두뇌를 가져라
지난 7월 테슬라의 국내 판매량이 1만대를 넘어섰다. 모델 Y는 8705대가 팔리며 그랜저(8532대)를 제치고 단일 모델 판매 1위에 올랐다. 오랫동안 현대차·기아가 장악해 온 대한민국 자동차 시장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그 변화의 중심에 자율주행 FSD가 있다. 물론 아직 완전한 자율주행은 아니며 운전자의 감독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보여주는 방향은 분명하다. 소프트웨어와 인공지능(AI)으로 자동차를 제어하고, 사람의 도움 없이 스스로 운전하는 기술이 자동차 산업의 핵심 경쟁력으로 등장한 것이다. 엔진 성능과 안전성이 경쟁력의 원천이었던 시대에서 이제는 소프트웨어와 AI가 그 자리에 가세했다.
그렇다면 AI 시대 제조업의 경쟁력은 무엇일까.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은 오랫동안 '잘 만드는 능력'이었다. 좋은 설계, 정교한 생산, 흔들림 없는 품질. 자동차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FSD가 보여주듯 이제 자동차의 경쟁력은 제조에서 끝나지 않는다. 얼마나 잘 조립됐는가 못지않게 자동차가 도로 위에서 무엇을 보고,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하는가도 경쟁력이 되고 있다. 잘 만든 차라도 판단이 굼뜨거나 부정확하면 소비자는 그 차를 선택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AI를 전부 '직접'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배터리나 반도체처럼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가져다 쓰는 것이 더 빠르고 합리적일 수 있다. 완성차업체가 모든 것을 자체 개발해야 경쟁력이 있다는 생각은 오히려 비효율적이다. 문제는 AI가 여타 부품과 성격이 다르다는 데 있다. 배터리는 한 번 탑재하면, 규격에 맞춰 교체하면 그만인 완성된 부품이다. 그러나 자동차를 보고 판단하는 AI는 그렇지 않다. 주행할 때마다 데이터가 쌓이고 이를 통해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개선되며 판단능력 자체가 달라지는 살아있는 시스템이다. 오늘 탑재된 AI와 1년 뒤의 AI는 같은 이름이지만 전혀 다른 시스템일 수 있다.
이걸 그대로 외부에 맡긴다면 어떻게 될까. 자동차는 잘 만들었지만 정작 그 자동차가 무엇을 보고 왜 그렇게 판단하는지는 제조사도 알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하나로 차량의 반응이 바뀌어도 어떤 데이터와 기준에 따라 이뤄졌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차는 제조사 로고를 달고 있지만, 그 차의 눈과 판단은 다른 회사의 손안에 있는 셈이다. 사고나 오작동이 발생하면 책임과 원인 규명은 결국 제조사의 몫이지만, 정작 그 원인을 들여다보고 통제할 권한은 없는 모순이 생긴다.
바로 여기에 소버린 AI가 필요한 이유가 있다. 이는 무조건적인 국산화를 뜻하지 않는다. 세계 최고 기술을 가져다 쓰더라도 자신의 제품과 데이터에 맞춰 스스로 개선하고, 필요할 땐 언제든 다른 기술로 교체할 수 있는 기술주권을 갖추는 일이다.
자동차와 FSD가 남긴 교훈은 명확하다. AI 시대 제조업의 승패는 '조립의 완성도'뿐 아니라 '판단의 통제가능성'에도 달려 있다. 내 제품이 내린 판단을 제조사가 온전히 들여다보고 통제할 수 없다면, 남는 것은 껍데기뿐인 제조사와 그에 따른 법적 책임뿐이다. '잘 만드는 손' 위에 '스스로 통제하는 두뇌'를 얹는 것, 이것이 AI 시대 대한민국 제조업이 나아갈 길이다.
모정훈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