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딩드레스 사진촬영 금지에요. 신랑님이 그리세요" [남편은 첨이라]
[파이낸셜뉴스] "신랑님, '스·드·메' 상담 받으신 기념품으로 수첩이랑 연필 드려요."
2025년 1월 초, 결혼을 7개월 앞두고 찾은 한 웨딩박람회에서 상담 실장이란 분이 수첩과 연필을 주셨다. 결혼을 앞둔 예비신랑에게 '이게 왜 필요하죠?'라고 묻자 실장님은 "아, 모르셨구나. 웨딩드레스 시착할 때는 신랑분 사진 촬영이 금지요. 신랑님이 잘 보셨다가 열심히 그리셔야 나중에 신부님이 초이스 할 때 도와주실 수 있어요."라고 답했다.
순간 내 두 귀를 의심했다. 내가 지금 이 말을 잘 알아들은 게 맞는걸까. 10만원도 아니고, 100만원도 아니고 그보다 더 비싼 돈을 주고 사진 몇 시간 찍는 일이다. 스튜디오 촬영을 위해 한두 시간 대여할 드레스를 입어보는데 그 사진을 찍지도 못한다고? 이게 과연 어느 나라 법인거지?
이어진 설명을 들으며 나는 점점 더 내 귀보다 내 뇌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내 귀의 오작동으로 어떤 소리를 잘못 들은 게 아니라 내가 들은 소리를 해석하는 내 뇌의 이상이 아니고서는 참으로 이상한 말들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 계약하시면 일반 드레스만 선택 가능하고, 블랙(더 고급) 라벨 드레스를 입으려면 추가금을 내야 하는데 당일 계약하고 가시면 '특별하게' 블랙 드레스도 추가금 없이 선택 가능하게 해드릴게요."
이게 무슨 '다른 집 붕어빵에는 붕어가 들어가는데 저희집 붕어빵에는 팥이 들어가서 먹을 수 있어요' 같은 소리지. 이건 사실상 블랙 드레스를 입어야 한다는 말이잖아. (보통의 경우라면) 평생 '단 한 번'뿐인 결혼식인데 그 누가 '고급'이 아닌 '저급' 드레스를 입고 싶어 한단 말인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드레스 투어를 하시게 되면 처음 가는 곳은 무료고 만약 다른 업체에 추가로 방문하게 되면 추가 피팅비가 가게당 5만5000원이 발생해요."
동대문에 가서 가짜 나이키 운동화를 하나 사더라도 가게 몇 군데는 둘러보는데 평생 한 번뿐인 결혼식에 입어볼 웨딩드레스는 입어만 보는데도 추가금이 드는구나. 그래도 뭐 이건 중개업체 입장에서도 품이 드는 일이니까 이해는 할만하네.
"스튜디오 사진을 찍으시면 포토샵을 거쳐 수정한 사진만 받아 보실 수 있고요, 전체 원본 사진을 받으시려면 추가금이 또 발생하세요. 앨범은 기본 장수에서 더 늘어나면 추가로 비용을 내야 하고요"
이쯤 되니까 '고객이 왕'이란 만고 불변의 격언도 '스·드·메' 시장에서만큼은 '흥이다'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됐다. 내 돈 주고 드레스 빌리고(상당히 고가다), 스튜디오 섭외해서, 다른 사람도 아닌 우리 부부의 사진을 찍는건데 사진 원본은 볼 수 없다니. SNS에 '스드메 100~200만원대'라고 고객을 유인하고 사실상 추가 비용을 붙여 파는 상술이 아닌가 싶었다.
과거 한국소비자원을 출입할 당시 결혼시장 관련 소비자 피해 접수 건수가 '생각보다 적은데'라고 여겼는데 막상 내가 결혼 시장의 수요자가 되니 왜 그런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마도 평생에 한 번 뿐인 결혼식인데 괜히 업체와 가격과 서비스에 대해 다툼을 하거나 갈등을 빚는 것보다 '좋은 게 좋은 거다'하고 넘어가는게 낫다고 판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동네 단골 고객이 아닌 한철 장사만 하는 관광지 식당의 음식맛이 별로듯, 한 번 오고 다시 안 올 손님에게 최대한 많은 이익을 보려는 업체와 평생 한 번 뿐인 결혼식 준비에 얼굴 붉히고 싶어하지 않는 소비자가 만들어내는 환장의 콜라보인 셈이다.
국가데이터처(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5년 기준 혼인신고 건수는 24만326건에 달한다. 같은 해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예식장과 스드메 포함 결혼준비대행 서비스 피해 접수 건수는 1076건 정도다. 모든 혼인신고한 부부가 예식장 결혼식을 하거나 결혼준비대행 서비스를 이용하지는 않겠지만 단순 비율로 추정하면 1000커플 중 약 4~5쌍만 예식장과 스드메 관련 불만 사항을 한국소비자원에 피해 접수했다는 거다. 해당 서비스를 이용해 본 사람이라면 1% 미만 불만율은 이상하리 만치 높지 않다고 의아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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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한 지인이 자기는 "선불제 서비스와 상품에 대해 돈을 지불하거나 그렇게 하기로 결정한 순간 스스로를 철저한 '을'이라고 생각한다"고 한 말이 떠올랐다. 예를 들어 결혼정보업체에 가입해 돈을 지불했는데 괜히 매니저와 다툼을 벌여 향후 받게 될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는 것보다 매니저의 비위를 맞춰가며(카카오톡 선물하기 등) 자기가 받게 될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는 편이 현명하다는 것이다. 헬스장에서 수십 회 PT를 끊은 뒤 중간에 서비스 질 저하를 이유로 계약을 해지하고 위약금을 내느니 트레이너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거나, 하물며 식당에서 밥을 한끼 먹더라도 식당 주인과 싸우면 주방에서 내가 먹는 음식에 침을 뱉더라도 고객은 알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한국소비자원에 피해 접수를 한다한들 결혼 준비 과정에서 불쾌했던 기억이 보상을 받을리도 없다.
생각해보니 필자 역시 뉴스를 통해서 야외 촬영을 가면 카메라맨을 위한 도시락을 고객인 예비 부부가 준비해야 한다거나, 특히 수요가 많은 강남과 청담 일부 스튜디오는 도시락의 가격에 따라 사진의 질이 달라진다는 소문을 들은 기억이 났다.
스튜디오 촬영도 스튜디오 내부 촬영과 야외 촬영에 따라 또다시 옵션 비용이 추가로 들었다. 모든 것이 옵션이고 추가 비용인 세상에서 신부의 웨딩드레스를 대여할 경우 신랑의 턱시도와 구두는 무료 대여가 가능하다는 그 말이 어찌나 고마운지 몰라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스튜디오 촬영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 결혼식 당일 본식에 입을 웨딩드레스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엄청나게 두꺼운 앨범에 연예인 못지 않은 선남선녀 커플이 찍은 사진을 여럿 볼 수 있었다. 신부님 '추구미(추구하는 스타일)'에 따라 반짝반짝한 펄이 많이 들어간 스타일, 어깨와 가슴이 파인 스타일, 수수한 스타일, 화려한 스타일 등 여러 설명이 이어졌다. 복잡한 설명이 이어졌지만 예쁜 드레스는 추가 비용이 발생하고, 더 많은 드레스를 보려면 또 옵션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메이크업도 비슷했다. 인스타그램에서 친구도 아닌데 알고리즘에 뜰 법한 세상 멋지게 꾸민 모델들의 사진이 여럿 제시됐다. 그 중에 원하는 메이크업 스튜디오를 예약하고 선택해야 하는 구조였다.
대략적인 설명이 끝나자 상담 실장님은 일단 '가계약'을 할 것을 강권했다. 가계약금 10만원을 내고 돌아가서 생각해 본 뒤 일주일 이내에는 언제든 취소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인스타그램 광고로 봤을 때는 분명 '스드메 200만원' 이라는 문구를 본 것 같았는데 이날 설명으로 들은 대략적인 비용은 '스드메'만 최소 300만~ 500만원은 족히 넘을 것 같아 보였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스드메' 패키지의 중간가격은 292만원이다. 스튜디오 촬영을 뺀 '드메'의 경우 160만원으로 보통 스튜디오 촬영에만 130만원가량 든다는 뜻이다. 하지만 실제 결혼 시장에서의 체감 가격은 각종 옵션에 따라 기하 급수적으로 오른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같은 깜깜이 결혼 준비 비용에 대한 대안으로 지난해 11월부터 '중요한 표시·광고사항 고시'를 개정했다. 예식장 대관료와 식비, 장식비, 스드메 패키지 가격 등을 사전에 표시·고지하도록 것이다. 이를 어길 경우 최대 1억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현재 국회에는 '결혼서비스업의 관리에 관한 법률안(스드메법)'이 계류 중이지 최종 통과 여부와 시행 시점은 미지수다.
30분에서 1시간 정도 스드메에 대한 폭풍 설명을 들으니 정신이 혼미했다. 그나마 정신줄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스드메 결정에서 남편의 역할이란 '풋내기슛'을 던지는 '강백호의 왼손' 정도였기 때문이리라. '왼손은 거들뿐', 결정은 오롯이 신부의 몫이었다. (계속)
■[남편은 첨이라]시리즈는 마흔에 늑깎이 결혼한 기자의 결혼 준비와 결혼식, 출산, 육아 등에 관한 경험과 사회적 이슈를 다룰 예정입니다.
[email protected] 이환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