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각

[강남視角] 정책은 실험이 아니다

파이낸셜뉴스
최갑천 금융부장·마켓부문장
최갑천 금융부장·마켓부문장

오디세우스는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폴리페모스)의 동굴에 갇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다. 동굴 문을 막아선 거대한 바위를 치우지 못해 도망칠 수 없던 상황에서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한다. 거인의 눈을 가시나무로 찌르고, 양의 배 밑에 매달려 극적으로 탈출한다. 그런데 탈출 직후 굳이 자신의 이름을 키클롭스에게 밝힌다. 그 결과는 혹독했다. 키클롭스는 아버지 포세이돈에게 복수를 빈다. 그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귀향길이 10년이나 지체되고, 수많은 동료가 목숨을 잃은 비극의 씨앗이었다. 오디세우스의 뛰어난 리더십 뒤에는 오만함과 섣부른 조급함이 부른 희생이 가려져 있다.

지금 대한민국 부동산과 금융당국의 정책 행보를 보면 오디세우스의 오판이 겹쳐진다. 8·3 세제개편안 발표 이후 시장은 혼란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열흘 뒤 정부는 '8·13 부동산 금융 종합대책'에서 땜질식 처방으로 사태 진화에 나섰다. 정책당국이 국가의 거시경제와 국민의 삶을 다루는 방식이 얼마나 경솔한지를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이번 혼선의 근본 원인으로 시장의 복잡한 연쇄작용과 메커니즘을 외면한 걸 꼽을 수 있다. 눈앞의 수치 관리에만 급급했던 '임기응변식 정책'이 부른 참사다. 불과 얼마 전까지 정부는 가계부채를 잡겠다며 금융권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를 1.5% 수준으로 엄격하게 틀어막았다. 세제개편안이 가계부채 규제의 완결판이었다. 그러나 신축 단지 입주자들의 잔금대출 차단과 실수요자의 자금난이 현실화되며 민심이 거세게 요동쳤다. 별수 없이 정부는 8·13 대책을 통해 가계대출 총량 목표를 순식간에 3.0%로 두 배나 풀어주며 '항복 선언'을 했다.

더 심각한 것은 '비거주 1주택자'를 둘러싼 규제완화다. 세제개편안에서는 실거주 유도를 명분으로 비거주 1주택자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고 전세대출 보증을 차단했다. 이들을 투기세력과 동일시한 것이다. 하지만 직장 이전, 자녀 교육, 부모 봉양 등 불가피한 사정들을 소홀히 했다. 소유와 거주가 분리될 수밖에 없는 1주택 수요자들을 달래느라 또다시 예외 규정을 만들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원칙 없이 규제를 키웠다가 반발이 거세지면 부랴부랴 예외를 신설하길 반복한다. 오디세우스가 항로를 탈출하기 위해 섣부른 묘수를 둘 때마다 더 큰 괴물과 파도를 맞닥뜨리는 격이다. 예측 가능성을 상실한 규제는 시장 참여자들의 극심한 아노미 상태를 초래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치명적인 손실은 '정책 신뢰의 파탄'이다. 부동산 정책에서 정부가 던지는 시그널은 시장의 기대를 좌우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하지만 세제와 금융 대책이 며칠 만에 번복되면서 정부 발표를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가변적 시안'으로 인식하게 된다. '반발하고 버티면 규제는 풀린다'는 학습효과가 시장 전반에 확산되는 것이다. 이 순간 그 어떤 강력한 정책도 동력을 잃게 된다.

영화 오디세이가 던지는 메시지가 그렇다. 목적지(귀향)에 도달하려면 신중한 원칙과 일관된 항해술이 필요하다. 오만함에 기반한 경솔한 모험은 비극을 부른다는 점이다. 정부 정책은 가설을 세우고 반응을 관찰한 뒤 수정을 거듭하는 연구실의 과학실험이나 일회성 모험극이 아니다. 정책이라는 배에 탄 피험자는 다름 아닌 대한민국 국민이다. 오락가락하는 정책의 피해는 온전히 국민들의 주거불안과 금융비용 부담으로 돌아온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임기응변식 핀셋규제나 눈앞의 불을 끄기 위한 고무줄식 총량 완화가 아니다. 정무적 계산과 수치 맞추기식 관리에서 벗어나 금융·세제·공급을 아우르는 일관되고 장기적인 로드맵을 세워야 한다. 정책은 실험이 아니다. 정책당국은 영화 속 오디세우스가 치렀던 혹독한 대가를 기억해야 한다. 더 이상 땜질식 처방으로 시장을 시험대에 올리는 우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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