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인력난의 구원투수 '공공형 계절근로사업'[기고]
조덕현 동천안농협조합장·농협중앙회 이사
[파이낸셜뉴스]
가을 들녘을 바라보는 농민들의 마음이 유독 무겁다. 농촌의 인구 감소와 급격한 고령화로 인해 '일손 가뭄'은 이제 매년 반복되는 고질적인 재앙이 됐다. 청년층의 도시 유출이 가속화되면서 농촌 현장에는 연세 지긋한 원로농업인들만 남아 겨우 영농을 이어가고 있다. 내국인 인력은 높은 임금을 제시해도 고된 농작업을 꺼리다 보니 이제 외국인 근로자 없이는 한 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것이 농촌의 엄연한 현실이다.
특히 며칠 동안의 단기 작업이나 소규모 농사를 짓는 소농·고령농의 처지는 더욱 절박하다. 기존 외국인 계절근로제는 농가가 최소 3개월에서 8개월 동안 근로자를 직접 고용하고 숙식까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구조였다. 이 때문에 일손이 수시로, 잠깐씩 필요한 대다수 소규모 농가는 정식 고용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결국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설 인력중개업소나 불법체류 근로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치솟는 인건비 부담과 불법 단속의 불안감을 안고 하루하루 농사를 지어왔다.
이러한 절박한 현장에 가뭄의 단비처럼 등장한 제도가 2022년 시범 도입된 '공공형 계절근로사업'이다. 공공형 계절근로제는 지자체가 선정한 지역농협이 외국인 근로자를 직접 고용·관리하고, 일손이 필요한 농가에 하루 단위로 인력을 재배치·파견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농가는 하루 약 10만원 안팎의 임금만 지급하면 되고, 숙식이나 장기 상주 부담에서 완전히 자유롭다. 합법적인 인력을 안정적이고 적시에 공급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 농촌의 인건비 폭등을 억제하는 효과까지 거두며 농가로부터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이러한 성과에 힘입어 도입 4년 만에 공공형 계절근로 사업은 전국 130개 운영농협(시·군)으로 대폭 확대됐다. 배정 인력도 4500여명으로 늘어나 공공형계절근로자 비중이 빠르게 늘어 전국 농번기 단기 인력난 해소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현장의 뜨거운 환호 이면에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구조적 숙제들이 많다. 현장에서 제도의 지속성을 위협하는 가장 큰 문제는 운영주체인 사업 참여농협의 과도한 재정적 부담이다. 농협은 외국인 근로자의 사회보험료 부담, 비수기 및 기상 악화(우천 등)로 인한 미작업 날의 최소임금 보장, 전담 관리자 배치 및 이동 수단 운영 등 적지 않은 경비를 감당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인력 가동률이 70% 수준에 그쳐 적자 구조가 심화되고 있다.
주거 인프라 확보와 인력 숙련도 문제 역시 시급히 풀어야 할 과제다. 농협과 지자체가 공동으로 숙소를 마련하고 있지만 유휴시설 부족과 예산 한계로 양질의 주거 환경을 제공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는 근로자의 조기 이탈 위험을 높이고 농작업 숙련도 부족으로 이어져 농가의 불만을 야기한다.
공공형 계절근로제가 일시적인 임시방편에 그치지 않고 농촌 인력 구조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농협의 전방위적인 협력과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첫째, 운영농협의 재정적·행정적 부담을 과감히 완화해야 한다. 과도한 사회보험 적용과 가동률 저하에 따른 임금 지급 구조를 현실에 맞게 정비하는 등 불합리한 제도적 걸림돌을 제거해야 한다. 비수기 임금 보전 및 전담 관리비용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의 직접적인 재정 지원 확대가 절실하다.
둘째, 안정적인 주거 인프라 확충이다. 농촌 내 유휴시설 리모델링 지원을 대폭 늘리고, 외국인 근로자 전용 기숙사 건립을 확대해 쾌적하고 안전한 주거 환경을 보장해야 한다. 이는 근로자의 이탈 방지와 인권 보호의 첫걸음이다.
셋째, 숙련 노동자 확보 및 비자 체계의 개편이다. 한국 농촌 문화와 농작업에 익숙한 숙련 인력을 체계적으로 관리·배치할 수 있도록 장기 근무가 가능한 숙련기능인력(E-7-4) 및 E-8 비자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아울러 체계적인 농업 기술 교육과 한국어·문화 적응 프로그램을 병행, 현장의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외국인 근로자를 향한 따뜻한 포용의 자세가 필요하다. 이들은 단순히 모자란 일손을 채우는 대체재가 아니라 소멸 위기에 처한 우리 농촌을 함께 지켜나가는 정식 구성원이자 소중한 이웃이다. 사업 참여농협과 농민, 지역 사회가 외국인 근로자들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인권 보호에 앞장설 때 비로소 진정한 상생이 완성될 수 있다.
'농사는 타이밍'이라는 말이 있다. 제때 일손을 구하지 못해 일년 농사를 망치는 비극이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공공형 계절근로제는 농촌 인력난 해결을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 강력한 대안이다. 정부와 농협이 지혜를 모아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속도감 있는 제도 개선에 나선다면, 농민들이 일손 걱정 없이 오롯이 농사에만 전념할 수 있는 희망찬 농촌의 내일이 열릴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