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MP3·줄이어폰 이어 이번엔 CD…'과거로 가는 소비' 중심엔 K팝 [쓸만한 이슈]
디카·MP3·줄이어폰 이어 이번엔 CD…'과거로 가는 소비' 중심엔 K팝
英 백화점 CD플레이어 검색 한 달여 새 96%↑…인기 모델 잇단 품절
CD 판매량도 영국·미국서 나란히 증가…HMV "K팝과 BTS가 대표적"
스마트폰 화소보다 플래시 터지고 흔들린 사진…디카도 인기도 부활
최신 기술 대신 '불편함' 선택하는 Z세대…소유와 통제, 차별화의 욕구
[파이낸셜뉴스] 디지털카메라(디카)와 MP3 플레이어, 유선 이어폰까지. 기술 발전과 함께 사라질 것으로 보였던 전자제품들이 하나둘 돌아오더니 이번에는 CD와 CD플레이어가 주목받고 있다.
온라인만 연결되면 수천만곡을 들을 수 있는 2026년 현재 부모 세대에게 익숙한 CD를 10·20대가 직접 골라 플레이어에 넣어 듣기 시작했다. 영국에서는 CD플레이어 검색량이 한 달여 만에 96% 급증하고 인기 제품이 품절됐다.
흥미로운 점은 이 같은 '과거로 가는 소비' 곳곳에 K팝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가디언은 지난 22일(현지시간) 한때 구시대 유물로 취급받던 CD와 CD플레이어가 젊은층 사이에서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며 이 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가디언이 영국 백화점 존 루이스 데이터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지난 7월 이후 CD플레이어 검색량은 96% 증가했다. 79파운드(약 14만8000원)짜리 크로슬리 보이저와 129파운드짜리 퓨어 클래식 C-D6 등 일부 제품은 온라인에서 품절됐다.
CD도 다시 팔리고 있다. 영국 음반유통업체 HMV의 CD 판매량은 전년보다 10% 증가했다.
CD에 대한 높은 관심은 영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 음악시장 데이터 분석업체 루미네이트의 '2026 미드이어 리포트'에서도 올 상반기 미국 CD 판매량은 1630만장으로 전년 동기보다 16% 늘었다. 바이닐 레코드(LP) 증가율 2.4%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주요 구매층은 젊은 세대다. 가디언은 저렴한 가격이 이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분석했다. 영국에서 새 LP 한 장은 약 35파운드지만, CD는 약 12파운드, 중고 제품은 4파운드 수준이다.
K팝도 CD 부활의 주요 동력이 됐다. HMV의 필 할리데이 전무는 "K팝이 엄청난 동력(massive driver)이 됐다"며 BTS를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포토카드와 화보집, 버전별 패키지 등을 통해 CD를 음악 저장매체에서 '소유하는 굿즈'로 바꾼 K팝의 소비문화가 실물음반 시장과 맞닿았다는 얘기다.
루미네이트 분석도 이를 뒷받침한다. 올해 상반기 미국 CD 판매 증가율은 16%였지만 K팝을 제외하면 6.7%로 낮아진다. CD 음반 판매율 10위권 중 K팝이 8개를 차지했다.
CD에 앞서 디카와 아이팟 같은 MP3 플레이어, 유선 이어폰도 부활했다.
영국 BBC에 따르면 이베이에서 2025년 아이팟과 워크맨 등 휴대용 오디오 플레이어 판매량은 전년보다 약 50% 증가했다. 아이팟 미니 검색량도 1년 새 48% 늘었다. 무선 이어버드에 밀렸던 유선 이어폰도 젊은층의 패션 아이템이 됐다.
특히 디카의 부활이 두드러진다. 과거 단점으로 여겨졌던 낮은 화질과 노이즈, 강한 플래시가 이제는 'Y2K 감성'으로 재평가된다
한국에서는 K팝 아이돌이 디카 열풍에 불을 붙였다. 뉴진스가 오래된 캠코더의 색감을 활용한 '디토(Ditto)'를 선보인 이후 빈티지 디카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최근에는 예나, 아일릿 원희, 하츠투하츠 멤버들이 디카를 사용하는 모습이 공개됐다. 이후 팬들이 아이돌과 같은 제품을 구매하는 이른바 '손민수' 소비도 나타났다.
시장도 움직였다. 중고거래 시장에서 디카와 MP3·CD플레이어 검색량이 늘었고 과거 10만원 안팎이던 일부 디카 가격은 30만원 수준까지 뛰었다.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에서도 디카를 찾는 20대 고객이 늘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 카메라영상기기공업회(CIPA)에 따르면 디카 출하량은 2008년 1111만대에서 2023년 91만대로 약 92% 감소했지만 2024년 101만대로 11% 늘며 7년 만에 반등했다. 2024년 일본 카메라 구매자의 46%는 39세 이하였다.
젊은 세대가 CD와 디카, MP3 플레이어, 유선 이어폰 등 오래된 기기를 찾는 데는 기성 세대와 차이가 있다. 이들에겐 추억의 물건이라기보다 새로운 경험을 주는 '레트로 테크'다.
이유도 명확하다. 먼저 디지털 피로와 통제감의 해방구 역할을 한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음악·사진·영상·SNS까지 모두 이용할 수 있지만 그만큼 원하지 않는 정보에도 노출된다. 음악을 들으려고 스마트폰을 켜도 메시지와 SNS 알림이 들어오고 스트리밍에서는 알고리즘이 다음 곡을 추천한다.
반면 CD플레이어는 음악을 듣고 디지털카메라는 사진을 찍는 데 집중한다.
BBC와 인터뷰한 옥스퍼드대 앤드루 프르지빌스키 기술·인간행동 교수는 이를 "자신의 경험을 다시 통제하려는 욕구"라고 정의했다. 선택지가 지나치게 많은 디지털 환경에서는 '결정 마비'가 발생하는 반면 카메라를 직접 조작하거나 MP3플레이어와 CD플레이어에 음악을 넣는 과정은 사용자가 스스로 선택하는 경험이라는 것이다.
소유의 만족감도 매력이다. 스트리밍은 수천만곡을 들을 수 있지만 음악을 실제 소유하는 것은 아니다. 구독 해지와 함께 듣던 음악은 사라진다. 반면 CD는 구입해 보관하고 빌려줄 수 있다. 시간이 지난 뒤 다시 꺼낼 수도 있다.
불완전함에서 색다른 매력을 발견하기도 한다. 최신 스마트폰은 고화소 카메라와 흔들림 보정, 인공지능(AI) 보정으로 실패 없는 사진을 만든다. 이에 비해 빈티지 디카는 플래시가 과도하게 터지거나 사진이 흔들려 매번 다른 결과가 나온다.
BBC와 인터뷰한 콘텐츠 크리에이터 릴리 레드먼은 "구형 디카에는 스마트폰에서 얻기 어려운 질감이 있다. 사람들이 조금 더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을 원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CD를 플레이어에 넣고, 카메라를 직접 조작하며 유선 이어폰을 연결하는 과정을 경험으로 소비하는 점도 가치로 여겨지고 있다.
가령 무선 이어폰에 밀려 사라질 것이라 예상된 유선 이어폰은 일단 배터리를 충전할 필요가 없고 블루투스를 연결할 필요도 없어 편리하다. 대신 가방에서 꺼낼 때 엉킨 선을 풀어야 하는 새로운 불편이 감성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Z세대 트렌드 분석가 제이내 필립스는 가디언에 "모든 음악에 사실상 제한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시대에 오히려 앨범을 고르고 디스크를 넣어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 행위가 특별한 문화적 가치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email protected] 서윤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