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승계의 숨은 변수 "떠나는 사람의 노하우 챙겨라"[한미재무학회]
숫자·문서만으로 파악 안되는 경영 정보
전임자의 인수인계 과정서 얻을 수 있어
향후 기업가치에도 긍정적 변화 확인돼
후임의 성과는 전임자의 평판에도 영향
공유한 시간만큼 적절한 동기도 있어야
누구를 후임자로 뽑느냐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넘겨받는지가 훨씬 중요
최고경영자(CEO)가 바뀔 때마다 시장과 언론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새 CEO에게 쏠린다. 그가 누구인지, 어떤 경력을 가졌는지, 앞으로 기업의 전략을 어떻게 바꿀지가 주된 관심사다. 이사회 역시 좋은 후임자를 찾는 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CEO 승계에서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는 사람이 있다. 바로 떠나는 CEO다. 좋은 후임자를 고르는 것만큼 그에게 경영의 바통을 어떻게 넘겨주는지도 중요하다. CEO 승계는 릴레이 경주와 비슷하다. 아무리 뛰어난 다음 주자도 바통을 제대로 넘겨받지 못하면 제 실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전임 CEO에게는 재무제표나 사업보고서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경영 경험과 의사결정의 맥락이 있기 때문이다.
■CEO와 함께 사라질 수 있는 '무형의 자산'
새로 부임한 CEO는 취임 직후부터 투자 확대와 사업 정리, 핵심인재 등용, 주요 고객사 대응 등 수많은 판단을 내려야 한다. 재무제표, 전략보고서, 이사회 회의록 등 필요한 정보가 충분해 보이지만 실제 경영에 필요한 모든 지식이 문서로 남는 것은 아니다. 한 사업부의 높은 수익성이 일시적인 가격 효과인지 지속가능한 경쟁력 덕분인지, 매출 규모는 작아도 놓쳐선 안 될 핵심고객은 누구인지, 조직 내 실질적 영향력을 가진 사람은 누구인지 등은 숫자나 보고서만으로 파악하기 어렵다. 과거 전략의 실패 원인이나 진행 중인 연구개발(R&D) 프로젝트에 대한 경영진의 기대감도 마찬가지다.
이는 경영학의 지식기반관점(Knowledge-Based View)과도 맞닿아 있다. 기업의 중요한 경쟁력 가운데 하나는 조직 구성원들이 축적한 고유한 지식이며, 특히 경험을 통해 형성돼 쉽게 문서화하거나 이전하기 어려운 지식은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기업 특유의 지식(firm-specific knowledge)은 외부 CEO를 영입할 때 더욱 중요하다. 외부 CEO는 새로운 기업의 문화와 사람, 업무방식과 역사를 충분히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임자와의 인수인계는 공식 자료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기업 고유의 지식과 의사결정의 맥락을 이해하는 중요한 과정이 될 수 있다.
반도체 기업 인텔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2005년 크레이그 배럿에서 폴 오텔리니로 CEO가 바뀌는 과정에서 두 사람은 배럿이 떠나기 전 자주 만나 주요 현안과 과거 의사결정의 배경을 함께 검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새 CEO에게 필요한 것은 공식 문서에 담긴 정보만이 아니다. 수익성이 낮은 사업을 왜 유지하는지, 특정 고객이 왜 중요한지, 과거 비슷한 전략을 왜 중단했는지와 같은 경영의 맥락은 오랜 기간 기업을 이끌어 온 사람의 경험 속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CEO 인수인계의 가치는 결국 업무를 넘겨주는 것을 넘어 의사결정의 배경과 조직의 기억을 다음 경영자에게 이어주는 데 있다.
■인수인계 잘되면 기업가치도 달라질까
그렇다면 이런 CEO 인수인계가 실제 기업가치와도 관련이 있을까. 필자는 최근 공동연구자들과 함께 이 질문을 연구하고 있다. 특히 외부에서 CEO를 영입한 미국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전임 CEO와 신임 CEO가 일정 기간 함께 근무한 경우 이후 기업성과에 어떤 차이가 나타나는지를 살펴봤다. 1992년부터 2014년까지 680건의 CEO 교체 사례를 분석한 결과 약 44%에서 전임 CEO와 신임 CEO가 일정 기간 함께 근무했다. 기업가치는 금융 및 기업지배구조 연구에서 널리 사용하는 토빈의 Q(Tobin's Q)를 통해 살펴봤다. 쉽게 말해 기업이 가진 자산에 비해 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가치를 인정받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분석 결과 인수인계 기간이 있었던 기업에서 CEO 교체 이후 토빈의 Q가 더 높게 나타났으며 두 CEO가 함께 근무한 기간과 이후 기업가치 사이에도 긍정적인 관계가 확인됐다. 기업 규모와 부채, 성장성, R&D 투자, 산업과 시기의 차이를 고려하고 다양한 기업가치 및 성과지표를 사용해도 결과는 비슷했다. 물론 원래 경영을 잘하는 기업이 CEO 승계도 잘 준비하는 것일 수 있다. 이 가능성을 고려해 CEO 교체 전후의 기업가치 변화를 비교하고 외부 요인을 이용한 추가 분석도 실시했지만, 결과의 방향은 대체로 일관되게 나타났다.
■인수인계는 시간과 비례하지 않아
전임 CEO와 신임 CEO에게 함께 일할 시간을 준다고 중요한 지식이 자동으로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지식을 전달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사람의 몫이므로, 함께하는 시간만큼 이를 제대로 활용할 동기도 중요하다. 분석 결과 두 CEO의 지분 보유가 많을수록 인수인계의 긍정적인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났다. 이는 경영자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기업가치와 연결될 때 행동의 유인이 달라질 수 있다는 대리인이론(Agency Theory)의 이해관계 일치(incentive alignment) 논리와도 연결된다. 특히 전임 CEO가 퇴임 이후에도 회사 주식을 보유한다면 후임 CEO의 성공이 자신의 경제적 이익과도 연결된다. 반대로 기업의 미래와 이해관계가 단절된다면 경험을 적극적으로 전수할 유인은 줄어들 수 있다.
경제적 이해관계가 전부는 아니다. CEO에게는 평판이라는 또 하나의 자산이 있다. CEO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다른 기업의 이사회나 경영자, 고문 등으로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경력우려(career concerns)의 관점에서 보면, 향후 경력기회가 남아 있는 경영자에게는 자신의 능력과 평판에 대한 평가도 중요한 동기가 될 수 있다. 실제 분석에서도 향후 경력기회가 많이 남아 있는 전임 CEO에게서 인수인계의 긍정적인 효과가 더 강했다. 후임 CEO의 성공은 자신이 어떤 CEO로 기억될 것인가와도 연결될 수 있는 셈이다.
■떠나는 CEO도 사람이다
여기에 퇴임하는 CEO의 심리까지 생각하면 승계는 더 복잡해진다. 한 기업을 오랫동안 이끌어 온 사람에게 퇴임은 단순한 이직이 아니라 자신이 행사해 온 권한과 의사결정권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일이다. 특히 장기 재임 CEO라면 기업의 성공과 자신의 정체성을 분리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 이는 오랫동안 수행한 역할을 자신의 정체성 일부로 받아들인다는 역할정체성(role identity)의 관점에서도 설명할 수 있다. 'CEO'라는 역할과 정체성이 강하게 연결될수록 이를 후임자에게 넘기는 과정은 복잡할 수 있으며, CEO와 이사회 의장을 겸직했거나 자신의 의사와 달리 물러나는 경우라면 더욱 그럴 수 있다.
실제 분석에서도 재임기간이 긴 전임 CEO, CEO와 이사회 의장을 겸직했던 전임 CEO, 비자발적으로 물러난 CEO에게서는 인수인계와 이후 기업가치 사이의 긍정적인 관계가 상대적으로 약했다. 물론 이러한 결과가 이들의 심리를 직접 측정하거나 의도적으로 후임자를 돕지 않았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전임 CEO가 어떤 상황에서 물러나는지도 인수인계의 효과와 관련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후임자의 성공은 전임 CEO 자신의 성과와 평판에 대한 시장의 평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결국 지식을 전달할 수 있는 역량과 전달하려는 의지는 다른 문제이며, 좋은 인수인계에는 시간뿐 아니라 적절한 동기와 심리적 준비도 필요하다.
■복잡한 기업일수록 인수인계가 중요
만약 CEO 인수인계의 중요한 역할이 기업 고유의 지식을 넘기는 데 있다면 기업을 이해하고 운영하기 어려울수록 전임 CEO가 가진 경험과 지식의 가치도 커질 것이다. 이는 앞서 살펴본 지식기반관점의 논리와도 일치한다. 기업의 중요한 지식이 쉽게 문서화하거나 이전하기 어렵다면 복잡한 기업일수록 CEO 인수인계의 가치도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연구 결과도 이러한 설명과 대체로 일치했다. 여러 사업부와 다양한 시장을 운영하는 다각화된 기업에서 인수인계의 긍정적인 효과가 더 강했고, R&D 투자 비중이 높은 기업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
이러한 기업에서는 공식 자료만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지식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크다. 공장의 규모나 부채, 현금 보유액은 자료를 통해 비교적 빠르게 파악할 수 있지만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기술의 가능성, 핵심 연구인력의 가치, 여러 사업부가 서로 의존하는 방식, 프로젝트의 시행착오 같은 정보는 숫자로 완전히 표현하기 어렵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자산이 중요한 회사일수록 눈에 보이지 않는 지식의 이전도 중요해질 수 있다.
■'후임 CEO'만큼 '전임 CEO'도 중요
많은 기업은 CEO 승계계획(CEO succession planning)에 큰 노력을 기울인다. 내부 후보자를 육성하고 이사회에서 여러 후보를 검토하며, 때로는 외부에서 적합한 인물을 찾기 위해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는다. 그러나 후임자를 정했다고 CEO 승계가 끝난 것은 아니다. 특히 외부 CEO를 영입했다면 어떤 경험과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지, 주요 고객과 투자자·정부와 규제기관·핵심 임직원과의 관계를 어떻게 이어갈지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주요 고객과 공급업체와의 관계, 장기 전략의 배경, 핵심인재에 대한 이해, 과거 실패에서 얻은 교훈처럼 문서로 전달하기 어려운 지식과 경험을 후임자에게 전하는 역할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전임 CEO의 지식과 경험은 활용하되 경영의 권한과 책임은 신임 CEO에게 넘겨야 한다. 전임자의 경험을 활용하는 것과 권한까지 유지하는 것은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그동안 CEO 승계를 준비하면서 "Who is next?", 즉 "누가 다음 CEO인가"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좋은 후임자를 고르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만큼 어떻게 넘겨줄 것인가도 중요하다. 릴레이 경기에서 다음 주자가 아무리 뛰어나도 바통을 제대로 넘겨받지 못하면 앞선 주자가 만들어 놓은 속도를 이어가기 어렵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AI가 많은 정보를 빠르게 학습할 수 있는 시대가 되더라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전달되는 경험과 맥락은 여전히 중요할 것이다. 좋은 후임자를 선택하는 것이 성공적인 CEO 승계의 시작이라면, 그에게 경영의 바통을 제대로 넘기는 것은 그 승계를 완성하는 일이다.
최대웅 교수는 미국 워싱턴대학교 경영대학 재무학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앨라배마대학교에서 재무학 박사학위와 통계학 및 재무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연구분야로 기업지배구조, 경영자 보상, ESG 등 기업재무를 연구하고 있으며 현재 한미재무학회(KAFA) 사무총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미재무학회(KAFA)는 지난 1991년 미주지역 재무 연구자들의 학술적 발전 및 상호교류 증진을 목적으로 발족한 학술단체다. 30여년간 발전을 거듭해 현재 미주는 물론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과 유럽, 호주 지역 한인 연구자들의 모임으로 발전했다. 파이낸셜뉴스는 지난 2007년부터 한미재무학회의 학문적 성취를 장려하기 위해 KAFA를 후원하고 있다.
최대웅 美 워싱턴대학교 경영대학 재무학 조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