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일 칼럼] 형사사법제도 해체를 멈추라
"제주사건 보완수사 무관" 주장
"논리적 야바위"라는 비판 제기
검찰지휘권 빼앗고 경찰이 종결
그간 '검찰개혁' 필연적 부작용
땜질처방으론 국민 불안 여전
성찰통해 근본 해결책 찾아야
"제주 실종사건은 검사에게 보완수사권을 남겨두더라도 일어날 수 있는 문제다." 조국혁신당 박은정 의원의 발언이다. 제주 실종사건에 여론이 들끓자 김민석 대표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도 "보완수사권과 무관하다"는 발언을 내놓고 있다. 제주 사건이 검찰 보완수사권과 관련 없는 건 맞다. 하지만 이들은 이번 일이 이른바 '검찰개혁'의 후폭풍이라는 맥락을 무시하고 있다. 박 의원의 주장을 "논리적 야바위"라고 비판한 하헌기 전 민주당 부대변인의 지적은 핵심을 찌르는 것이다. 그는 "지금 성인 실종 사건을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는 게 아니지 않나. 경찰에 수사개시권과 불송치, 종결권을 줬을 때 봐주거나 암장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권의 검찰개혁은 검찰의 수사(지휘)권 박탈, 경찰의 수사개시권·종결권·불송치 결정권이 주 내용이다. 하 전 대변인의 말처럼 문제의 핵심이 거기에 있다. 검찰의 수사(지휘)권이 있었다면 경찰이 사건을 쉽게 종결 혹은 암장 시도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1987년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이 지금 벌어졌다면 어땠을까.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경찰 발표로 종결처리 되었을 것이다. 당시 최환 서울지검 공안부장이 경찰의 화장 요청을 거부하고 시신 보존 명령과 부검을 지시함으로써 사건의 진상이 드러날 수 있었다. 선한 검찰, 악한 경찰이라는 게 아니다. 검경 간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무시하고 거대 경찰에 권한을 몰아줄 경우 혼선과 부작용은 필연적 결과이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장윤기 사건, 제주 실종사건 등에서의 피해자는 모두 여성이다. 검찰 해체로 사회적 약자만 피해를 본다는 경고를 무시한 결과가 현재 대한민국 형사사법의 실상이다.
보완수사 요구, 재수사 요청, 수사관 교체, 수사기관 변경, 검사면담 등의 제도로 충분하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검사면담 기록은 법정증거로 쓸 수도 없는 등 실효성이 희박한 제도만 나열해 놓은 것이다. 고속도로를 막고 복잡한 국도를 여러 개 만들어 놓은 채 국도는 도로 아니냐고 강변하는 꼴이다. 정치인 수사를 못 하게 만드는 속셈은 감추고 국민 불편만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슈가 있을 때마다 일선에 책임을 돌리며 땜질식 대책을 급조하고 있다. 관련자 처벌과 징계, 순환인사, 상피제, 내부비리수사대, 사건문의 금지, 사적접촉 금지, 실종사건 이중 확인, 전국 전수조사 등 그때그때 '대책'들을 내놓고 있다. 여러 국도에 구불구불한 샛길을 덧대는 격이다.
형사사법체계를 흔들 진짜 혼란은 아직 개봉 전이다. 오는 10월 2일 검찰청 폐지와 함께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이 출범한다. 검찰청 대신 부패·경제·마약 등 7대 중대범죄를 맡는 핵심 수사기관이 청사, 인력, 전산망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일단 개문발차한다. 155만건에 달하는 검찰 사건의 중수청 이관을 상상해 보라. 기록과 압수물 등을 넘기는 과정에서 발생할 혼선에 대한 우려는 당연하다.
지난 8월 서울고법은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1호 인지 수사' 사건인 김모 전 경무관의 7억원대 뇌물 혐의 항소심에서 1심의 징역 10년보다 감형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함께 기소된 뇌물공여자 등에 대해서는 공수처에 고위공직자나 가족이 아닌 일반인에 대한 기소 및 공소유지 권한이 없다며 공소를 기각했다. 공수처의 수사역량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건 입법 미비로 인한 공소기각 부분이다. 검찰개혁론자들이 치적으로 선전하던 공수처이다. 2021년 출범 후 5년 만에 받아든 공수처 1호 인지 사건의 공소기각 성적표는 공수처, 중수청, 국가수사본부 간 관할권 혼선의 예고편을 보여준다. 중수청과 국가수사본부를 거느린 행정안전부의 비대화와 권력 예속을 통제할 방안도 없다. 70여년간 정착된 국가형사사법제도를 이런 식으로 뜯어고치는 나라를 과연 선진국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설계도도 없이 거대한 조직을 만들어 놓고 이제는 '경찰개혁'에 나서겠다고 한다. 검찰과 육사처럼 경찰도 해체가 답이라고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한국갤럽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7월 61%였던 20대 여성의 이재명 대통령 지지율은 지난 7월 45%로 16%p 하락했다. 같은 기간 30대 여성 지지율은 69%에서 47%로 22%p 떨어졌다. 이 대통령의 주요 지지 기반이던 2030 여성의 이탈은 보완수사권 폐지로 치안에 불안을 느낀 것이 큰 이유라고 한다. 대한민국 형사사법제도 해체에 대한 경고등은 충분히 켜졌다. 노란불을 무시하고 속도를 높이다간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아직 시간은 있다. 이른바 검찰개혁이 결국 개악으로 귀결되고 회복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기 전에 성찰이 필요하다. 해법은 어렵지 않다. 강성 지지층 대신 전문가들이 숱하게 내놓은 대안에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된다.
[email protected] 노동일 주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