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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정 칼럼] 과학기술 정책도 선진국형 진화해야

파이낸셜뉴스

1인당 국민소득 일본을 뛰어넘고
전세계 한류에 열광… 선진국 대접
헌법 "과학기술은 경제발전의 도구"
한국산업 독창적인 기술발전 '발목'
인간 호기심 기초한 연구지원 미약
국가의 연구개발 선진국형 바꿔야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 前 서울대 총장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 前 서울대 총장

우리나라는 이제 세계에서 당당히 선진국으로 대접받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은 일본을 뛰어넘었고, 한류는 세계의 젊은이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경제와 문화면에서 세계적 주목을 받는 국가가 된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국가 위상을 아직 실감하지 못하는 국민도 많고, 의식이나 관행이 과거 개발도상국가 시절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분야도 많다. 소위 '선진국 클럽'이라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는 이미 30년 전에 가입하였고, 2009년에는 외국으로부터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공식적인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국민 의식과 국가 제도는 그러한 위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면이 많은 것이다.

아마도 과학기술 분야가 하나의 예라고 생각된다. 지금의 풍요로운 물질문명을 가능하게 만든 과학기술들은 대부분 서구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쇄국정책으로 개방이 늦어져서 메이지유신을 한 일본에 나라까지 빼앗겼던 뼈아픈 기억이 있다. 그렇기에 해방 이후 서구의 과학기술을 빨리 쫓아가고 활용하는 것이 국가적 목표의 하나로 설정된 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우리나라 헌법 제127조 1항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는 조항은 그 염원의 구체적인 표현이다. 국력을 키우는 데 과학기술 발전이 중요한 요소라는 점이 헌법에 명시된 것이다.

문제는 이 조항이 "과학기술은 경제 발전의 도구"일 뿐이라는 인식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 조항에 따라 우리나라의 법령과 연구개발 정책 등 과학기술과 관련된 국가의 제도 모두가 경제발전 지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예를 들어 정부는 선진 기술 중 우리나라에 가장 적합한 기술을 최단기에 자체 개발하여, 우리나라 기업의 경쟁력을 높여주는 것이 중요 업무 중 하나이다. 이 기술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개발해야 하며, 실패는 용납하지 않는다. 이러한 정책들은 과거 우리 기업들이 선진국을 쫓아가기에 급급했던 시절 상당히 효율적이었고, 근로자의 근면성과 과학기술자의 사명감에 힘입어 우리나라는 세계가 놀랄 만한 빠른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정책이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발전한 지금은 오히려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 이유는 한국 산업에 지금 필요한 것은 독창적인 기술인데, 우리나라 정책의 틀은 남의 기술을 빨리 모방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과학기술 연구에 대한 전통과도 맞물려 있다. 애초 서구의 과학기술은 경제발전이 목표가 아니었다. 과학이 초기에는 영어로 'Natural Philosophy'(자연철학)로 불렸는데, 과학도 철학이나 지적 탐구의 일부로서 인간의 호기심에 기초한 것이었지 실용적 가치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 후 산업혁명과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과학기술의 실용적 가치가 부각되었고, 이에 따라 실용 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의 비중이 점점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선진국에서는 과학 발전의 전통에 맞게 아직도 인간의 호기심에 기반한 기초연구가 하나의 큰 기둥으로 남아 있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 기술을 실용화한 딥러닝 연구, 코로나 백신을 가능케 한 mRNA 백신 연구들은 이러한 기초연구의 대표적인 예이다. 이런 종류의 연구는 성공 여부가 불확실하지만 만일 성공한다면 매우 파괴적인 혁신을 유도할 수 있어서, 보통은 국가가 장기적으로 투자한다.

문제는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전통도 없고 헌법부터 "경제 개발의 도구"라는 점을 강조하기 때문에, 이처럼 장기적이고 인간의 호기심에 기초한 연구에 대한 지원이 매우 미약하다는 점이다. 재정 규모가 작을 뿐 아니라 지원방식 또한 실용 기술 개발과 대동소이하게 효율성과 성공 가능성 등을 중시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매우 독창적이고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는 획기적인 성과는 내기 어렵다. 즉 과거에 얽매인 국가 연구개발정책과 제도 때문에 독창적인 기술을 필요로 하는 현재의 우리 기업들은 도움을 못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나라 과학기술 투자의 성과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 이 문제는 세세한 규정 몇 개 고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 국가의 연구개발 체계를 선진국형으로 아주 바꾸어야 할 것이다.

■약력 △미국 스탠퍼드대 물리학 박사 △서울대 총장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 △제2대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기초과학연구원(IBS) 초대원장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前 서울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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