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사설

[사설] 821兆 초대형 예산 확정, 빚에 대한 경각심 높여야

파이낸셜뉴스

선심성 지출, 무분별한 빚 탕감 금물
국회서 낭비성 지출은 철저히 거르길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이 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이 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부가 내년 예산안 총지출을 올해보다 12.8% 늘어난 821조원 규모로 1일 확정했다. 역대 최대 규모다. 반도체 초호황으로 세수가 크게 늘면서 총수입도 880조원을 넘을 전망이다. 정부는 이 재원을 바탕으로 반도체 등 3대 메가프로젝트와 청년·지방·미래 성장동력에 집중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동시에 내국세와 연동된 교육교부금 제도 개편 등을 통해 100조원대 지출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162조원 규모의 미래대응기금도 신설한다. 불필요한 사업을 걷어내고 미래 투자에 집중하겠다는 방향은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지금 세계 경제는 과도하게 풀린 돈의 후유증을 겪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각국이 천문학적으로 풀어놓은 돈은 인플레이션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물가를 잡기 위한 고금리는 다시 가계와 기업, 정부의 이자 부담을 키우고 있다. 중동발 에너지 불안까지 겹치면서 주요국의 금리 인하 여지도 좁아졌다. 세계 경제가 과잉 유동성과 부채의 대가를 치르는 상황에서 우리만 초대형 재정의 부담을 가볍게 볼 수는 없다.

더욱이 한국은 가계·기업·정부 모두 상당한 빚을 짊어지고 있다. 지난 2·4분기 가계부채는 사상 처음 2000조원을 넘어섰다. 기업부채 부담도 만만치 않은 데다 국가채무는 내년 152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빚은 절대 규모도 문제이지만 증가 속도와 상환 능력도 걱정이다. 가파른 고령화 추세로 연금·복지 등 줄이기 어려운 의무지출은 향후 더 급속히 불어날 것이다. 세수가 넉넉할 때 빚 부담을 줄여야 비상시 정부 대응력이 생긴다.

미국이 반면교사다. 막대한 재정적자와 이자 부담이 쌓이면서 미 국채 장기금리는 불안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둘러싼 경고도 끊이지 않는다. 기축통화국이라는 압도적 이점과 세계 최대 국채시장을 갖고도 이렇다. 미국 안팎에선 '빚의 제국'이 됐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대로 가면 미국의 정부 부채가 2031년 국내총생산(GDP)의 140%까지 뛸 것이라며 거듭 재정적자 축소를 주문했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조차 빚의 대가를 걱정하는 마당에 비기축통화국인 우리는 더욱더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

국가 미래가 달린 전략산업과 인재 지원에는 예산을 아낄 이유가 없다. 미래 투자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반도체 공장이 들어서는데 전력과 용수가 없어 가동이 늦어진다면 정부가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재정 건전성이 무턱대고 지출을 틀어막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미래 소득을 만들어낼 곳에는 과감히 투자하되, 그렇지 않은 분야의 방만한 지출은 확실히 걷어내는 게 핵심이다. 정부가 역대 최대 규모의 지출 구조조정을 내세운 만큼 성과 여부는 국회가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더 경계해야 할 것은 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난 세수를 영구적인 세입처럼 여기는 것이다. 올해 법인세가 크게 늘었다고 이를 각종 현금 지원이나 채무 탕감에 소진하고, 줄이기 어려운 의무지출로 굳혀버리면 반도체 경기가 꺾이는 순간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무분별한 채무 탕감 역시 성실하게 빚을 갚아온 국민과의 형평성을 해치고 금융시장의 원칙까지 흔들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재정정책의 정상화다. 고금리·긴축의 시대에 성장 투자는 살리되 선심성 지출은 걷어내고 빚 부담도 낮춰야 한다. 국회는 이런 원칙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꼼꼼히 따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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