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광장] 자나 깨나 말조심
李대통령 지지도 7주 연속 하락
집값 불안과 세제개편안이 발목
폐버스 논란 등 정치인들의 발언
뿔난 민심에 기름부어 불신 키워
"정치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일"
에이브러햄 링컨의 말 되새길 때
"정치는 결국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라고 말한 사람은 에이브러햄 링컨이다. 그는 1858년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열린 첫 상원의원 합동토론에서 "여론을 얻으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고, 여론을 잃으면 이룰 수 있는 일이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치란 '법이나 제도를 만드는 행위'보다 '사람들의 생각을 형성하는 행위'에 더 가깝다고 본 것이다. 그만큼 정치인에게 말은 단순한 의사표현을 넘어 사람의 생각을 움직이고 여론을 바꾸는 강력한 정치적 수단인 셈이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에 빨간불이 켜졌다. 리얼미터가 지난달 31일 내놓은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대통령 지지도는 7주 연속 하락하며 취임 후 처음으로 30%대를 기록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집값 불안과 세제개편안 발표, 코스피지수 급락, 보완수사권 폐지 같은 데서 이유를 찾는다. 하지만 나는 이 중에서도 부동산 문제가 가장 크다고 본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사람들은 아버지의 죽음보다 자신의 재산을 잃은 일을 더 오래 기억한다"고 했다. 평생 모은 재산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집값 문제가 민심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데 부동산 문제에서 민심을 자극하는 건 정책의 내용만이 아니다. 이를 설명하고 대변하는 정치인들의 말 한마디가 때론 정책 자체보다 더 큰 파장을 불러오기도 한다. 특히 정치인들이 현실과 거리가 있는 듯한 말을 내놓을 때 국민의 불만은 정책에 대한 불신으로 번지기 쉽다. 소위 '폐버스' 논란이 대표적이다.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폐버스를 리모델링해 청년주택으로 활용하자는 취지의 제안을 내놨다. '폐버스 청년주택' 구상은 곧바로 정치권 논란으로 번지며 지지율 급락에 일조했다.
물론 황 의원의 발언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실제 폐버스에 청년을 살게 하겠다는 정책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주거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유휴시설을 찾아보자는 아이디어 차원의 제안일 수 있다. 문제는 '무엇을 말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들렸느냐'에 있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내 집 마련의 꿈이 멀어졌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폐버스에 살게 하자'는 말이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는 뻔하다. 정책의 의도가 아무리 선해도 국민이 자신의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순간, 그 말은 정책 홍보가 아니라 정치적 악재가 된다.
부동산 문제에서 정치인의 말이 특히 위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택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평생 모은 재산이고, 누군가에게는 가족의 보금자리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노후를 지탱할 마지막 보루다. 집값이 오르내리는 것은 통계표 위의 숫자 변화가 아니라 한 가정의 자산 규모와 미래 계획이 통째로 달라지는 문제다. 그러니 정치인이 집 문제를 이야기할 땐 경제정책을 설명하는 것 이상의 신중함이 필요하다.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는 숱하게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2018년 당시 청와대를 이끌었던 장하성 정책실장의 "내가 강남 살아봐서 아는데 강남 살 필요 없다"는 발언이다. 당시 장 실장은 강남에 살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로 설명했지만, 이 말은 오히려 국민의 반감을 샀다. '강남에 살아본 사람이 강남에 살 필요 없다고 말한다'는 역설 때문이다. 집값 문제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던 사람들에게는 주거 선택의 문제를 너무 쉽게 이야기하는 것으로 들릴 수 있었다.
2020년 김현미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의 '아파트가 빵이라면' 발언도 빼놓기 어렵다. 김 장관은 국회 현안질의에서 아파트 공급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아파트가 빵이라면 제가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겠다"고 말했다. 공급 확대에는 시간이 걸린다는 취지였지만, 전셋값과 집값 상승으로 고통받던 국민에게 '빵'이라는 비유가 어떻게 다가갔을지는 별개의 문제다.
이른바 '정치인 실언 사전'에 올려도 될 이 세 가지 사례에는 공통점이 있다. 말한 사람의 본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희미해졌지만, 국민의 귀에 꽂힌 한마디는 오래 남았다. '폐버스' '강남 살 필요 없다' '아파트가 빵이라면'이라는 말은 이제 발언의 전체 맥락을 떠나 하나의 정치적 상징처럼 소비된다. 정치인의 말이 얼마나 무서운 정치적 자산이자 부채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부동산 정책에서는 숫자와 말이 따로 움직이지 않는다. 정부가 아무리 정교한 공급 대책을 내놔도 국민이 정치인의 말에서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는 순간 신뢰는 무너진다. 복잡한 정책일수록 국민에게 쉽게 설명해야 하지만, 쉬운 말과 가벼운 말은 다르다. 국민의 삶과 재산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문제일수록 정치인의 언어에는 그만큼의 무게가 실려야 한다. 자나 깨나 말조심해서 나쁠 게 없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