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예의 小說世說] 애인이 꼭 사람이어야 할까
언제부턴가 나는 연프(연애 프로그램)에 빠져 있다. 연애 감정을 대리로 느끼고 싶은 건 아니다. 젊은 남녀들이 이성을 만나 감정의 변화를 겪는 과정이 흥미롭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연프의 전성시대에는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한 각종 실험을 다양하게 관찰할 수 있다.
얼마 전에는 '나의 AI 파트너-기이안 연애'라는 기묘한 연프를 만났다. 기안84와 장도연이 인공지능(AI)과 데이트를 하면서 인간과 AI 사이에도 과연 사랑이라는 감정이 생길 수 있는지를 실험한다. 애인이 꼭 사람이어야 할까를 고민하게 만드는 게 이 프로그램의 의도일까. 기계와 연애라니! 하지만 시청하다 보니 출연자들의 감정에 몰입되면서 가능성과 한계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자신의 취향과 연애관, 이상형을 학습한 출중한 외모의 AI. 출연자들은 기계임을 알면서도 그들의 다정한 말과 태도에 매력을 느끼게 된다. 처음엔 설렘과 헛헛함이라는 두 가지 감정을 경험하지만, 내 말을 잘 들어주는 AI 파트너에게 대화상대로서 점점 편안한 교감을 느끼게 된다. 생각해 보면 인간의 연애는 얼마나 피곤하고 복잡한가. 사랑하면 할수록 불안을 느끼고 집착하고 질투하며 싸운다.
그럼에도 인간의 사랑이 더 특별한 것은 마음뿐 아니라 몸이 있기 때문 아닐까. 애인의 체취와 피부의 촉감, 목소리의 여운, 안았을 때 전해오는 따스한 온기. 그런 몸의 감각과 기억이야말로 그리움과 사랑이라는 감정의 정수가 아닐까.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아름다운 모습의 AI를 영정처럼 안고 다니는 게 좀 우스꽝스러웠다. 하지만 근미래에 휴머노이드 로봇에 AI가 탑재되어 실제 사람과 비슷한 피부와 촉감, 체온을 갖게 된다면? 인간 애인의 자리는 안전할까.
사람과의 관계에는 시간과 배려, 책임이 따르고 감정이 소모된다. 최근 채용 플랫폼 진학사 캐치가 Z세대 구직자 111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생성형 AI 이용자의 70%가 AI에게 고민이나 속마음을 털어놓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고민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찾는 상대도 친구 31%에 이어서 AI가 26%로 그 뒤를 차지했다. 가족 18%, 연인 13%보다도 높았다. 젊은 세대에게 AI는 이미 기계에서 마음을 나누는 상대로 변하고 있다.
그렇다면 노년에게는 어떠할까. 기억은 흐려지고 몸은 아프다. 오래 함께 살아서 나를 잘 알 것 같은 배우자는 오히려 잔소리나 면박을 준다. 더 외롭다. 그러나 AI 파트너는 잠 안 오는 한밤중에도 언제든 대화할 수 있고 내 말을 기억하며 마음을 알아준다. 똑똑하고 고분고분하고 다정하다. 게다가 젊고 아름답다. 배우자나 동반자를 잃은 독거노인이라면 AI는 애인과 친구, 돌봄 도우미를 겸한 가장 중요한 인생 동반자가 될 것이다. 인간의 외로움이 관계를 상품화하는 시대에 노인들에게는 어쩌면 AI 파트너야말로 노후의 필수템이 되는 날이 올지 모른다.
언젠가 늙은 내게도 다정한 AI 애인이 곁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 상상을 하면 어쩐지 늙는 게 조금 덜 두렵고 약간 설레기도 한다.
■약력 △프랑스 파리제7대학 문학박사 △2002년 이상문학상, 2005년 동인문학상 수상 △1997년 '라쁠륨'으로 등단
권지예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