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트럼프 대통령, 이란 돈줄 끊는다지만…쿠바·북한은 수십 년 버텼다

뉴시스

미, 이란 국제 경제에서 고립시키는 전면 금융 공세 착수 쿠바·북한·러시아, 제재 우회와 내부 통제로 장기 생존 경제적 고통이 곧 정권의 양보로 이어지지는 않아

[테헤란=AP/뉴시스] 이란 시민들이 테헤란 거리를 걷고 있다.. 2026.08.25 *재판매 및 DB 금지
[테헤란=AP/뉴시스] 이란 시민들이 테헤란 거리를 걷고 있다.. 2026.08.25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박영환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의 돈줄을 끊어 호르무즈해협의 선박 통행을 정상화하고 이란을 협상장으로 끌어내려는 전면 금융 공세에 나섰다. 하지만 경제 제재가 국민에게 큰 고통을 주면서도 정권을 굴복시키지 못한 사례가 적지 않아, 이번 압박이 이란의 양보를 끌어낼지는 불투명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일(현지시간) 쿠바와 북한이 수십 년간 제재를 견딘 사례를 비롯해 러시아·베네수엘라·시리아의 제재 결과를 분석했다. 신문은 권위주의 정권들이 제재를 우회하는 한편 폭력과 정치적 탄압으로 내부를 통제해 서방의 압박을 버텨왔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달 24일 이란을 국제 경제에서 고립시키는 ‘오퍼레이션 이코노믹 아웃캐스트(Operation Economic Outcast)’를 시작했다. 백악관은 이번 작전을 이란의 남은 자금줄과 거래망을 끊는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대외 금융 공세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작전 발표 뒤 호르무즈해협이 열렸고 기뢰도 모두 제거됐다고 밝혔다. 미국은 일반 상선의 통행을 보장하는 한편 이란의 원유 수출을 막는 해군 봉쇄는 계속한다는 입장이다. 애나 켈리 백악관 대변인은 이란 정권에 남은 자금줄을 모두 끊는 작전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추가 압박에 나선 가운데 이란 경제는 이미 극심한 물가 상승에 시달리고 있다. WSJ은 이란의 전년 동월 대비 물가상승률이 80%를 넘어섰으며, 기업과 가계가 투자와 성장은커녕 당장의 생계 유지에 매달리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워싱턴=AP/뉴시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1일(현지 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6.09.01.
[워싱턴=AP/뉴시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1일(현지 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6.09.01.

신문은 경제난이 곧바로 정권의 양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분석했다. 권위주의 국가가 제재를 받으면 상품과 서비스 거래가 암시장으로 숨어들고 우회 무역이 늘어난다. 정권은 외부 압박을 정치 선전에 이용해 핵심 세력의 결속을 다지고 감시와 탄압으로 내부 반발을 억누르기도 한다. 이란도 국경을 맞댄 국가들과의 교역을 늘리고 중국과 미국 중심의 은행망을 거치지 않는 별도의 금융 체계를 구축했다.

버지니아공대 경제학자인 자바드 살레히이스파하니는 미국이 이란에 경제적 고통을 줄 능력은 있지만, 그 압박이 이란 정부의 타협을 끌어낼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제재가 언제나 효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니카라과의 다니엘 오르테가는 약 10년에 걸친 제재로 경제가 타격을 받은 상황에서 1990년 선거에 패배했지만 이후 다시 집권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국제사회의 경제적 압박 속에서 아파르트헤이트를 폐지했고, 리비아는 강력한 제재를 받던 2003년 핵 프로그램을 포기했다.

반면 WSJ은 쿠바를 장기간의 제재에도 정권이 버틴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미국은 쿠바를 상대로 60년 넘게 경제 봉쇄를 시행했다. 쿠바는 정전과 식량 부족을 겪고 있지만 미겔 디아스카넬 국가주석 등 지도부는 양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쿠바 정부는 주민과 학교, 노동조합, 언론을 감시해 내부 반발을 억눌러왔다. 해외에 거주하는 쿠바인들이 들여오는 식량과 의약품으로 물자 부족을 메우는 것도 장기 봉쇄를 견디는 방법이 됐다.

[평양=AP/뉴시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제공한 사진으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21년 1월8일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대회에서 연설하는 모습이 담겼다. 2021.01.08.
[평양=AP/뉴시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제공한 사진으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21년 1월8일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대회에서 연설하는 모습이 담겼다. 2021.01.08.

북한도 핵무기와 장거리미사일 개발을 포기시키려는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를 수십 년간 견뎠다. WSJ은 북한이 러시아에 병력을 파견하고 그 대가를 받는 한편 북한 사이버 조직의 암호화폐 탈취와 북한 IT 인력의 해외 위장 취업을 통해 외화를 확보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탈북한 양일철씨는 북한 주민들이 연료·쌀·비료 부족과 잦은 정전을 반복해서 겪으며 위기에 적응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동차 배터리를 가정의 비상 전원으로 사용하는 사례를 들며 “교통사고가 한 번 나면 당황하지만 늘 일어나면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의 전면적인 제재를 받았지만 수출입 경로를 중국 등 비서방 국가로 돌렸다. 러시아 정부 통계상 국내총생산(GDP)은 제재 첫해 1.4% 감소한 뒤 빠르게 반등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여전히 권력을 굳건히 유지한 채 우크라이나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

쿠바·북한·러시아가 제재를 견디며 정권을 유지한 사례라면 베네수엘라와 시리아는 제재만으로 지도자를 축출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니콜라스 마두로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약 7년간 미국의 경제·금융 제재를 견뎠다. 미 재무부는 정권 내부의 분열을 유도하기 위해 마두로 측근과 군 관계자 200명 이상을 제재했지만 핵심 인사들은 오히려 결속했다. 마두로 집권기 베네수엘라 경제는 약 75% 쪼그라들었고 약 800만명이 나라를 떠났지만 정권은 무너지지 않았다.

[미나스=AP/뉴시스] 1일(현지 시간) 쿠바 아바나주 미나스에서 새 학기 첫날을 맞아 등교한 소녀들이 반가운 듯 서로 껴안고 있다. 미국의 강력한 봉쇄로 극심한 전력난, 교사 부족 등에 시달리는 쿠바가 이날 예정대로 새 학기를 시작했다. 2026.09.02.
[미나스=AP/뉴시스] 1일(현지 시간) 쿠바 아바나주 미나스에서 새 학기 첫날을 맞아 등교한 소녀들이 반가운 듯 서로 껴안고 있다. 미국의 강력한 봉쇄로 극심한 전력난, 교사 부족 등에 시달리는 쿠바가 이날 예정대로 새 학기를 시작했다. 2026.09.02.

마두로가 권좌를 잃은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 1월 미군 특수부대가 대통령 관저를 급습해 그를 체포한 일이었다.

마두로가 축출됐다고 베네수엘라 경제가 곧바로 정상화된 것은 아니다. 제재 해제와 외국 기업의 복귀가 더뎌 경제 회복도 늦어지고 있다. 미국과 베네수엘라 당국자들은 이 때문에 델시 로드리게스 정부가 정국을 안정시키는 부담도 커졌다고 WSJ에 전했다.

시리아도 미국이 1979년부터 제재했지만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은 2024년 말까지 버텼다. 러시아와 이란이 다른 전쟁에 묶여 지원할 여력이 줄어든 가운데 반군이 대규모 공세를 시작하자 정부군 일부는 무기를 버리고 달아났다.

미국은 알아사드 정권이 무너진 지 약 1년8개월 만인 지난달 24일에야 시리아의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했다. 제재의 한계에 대해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를 지낸 애런 아널드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 연구원은 경제 압박에는 외교적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작전의 성패 역시 이란 경제가 얼마나 더 악화하느냐가 아니라 테헤란을 실제로 협상장에 복귀시켰는지로 판단해야 한다고 WSJ은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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