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니의 법이야기] 기차, 돈 냈으니 조용히 갈 권리 있다?
법무법인 두율 김예니 변호사
[파이낸셜뉴스] 아이가 칭얼거리기 시작하자 옆자리 승객이 크게 한숨을 내쉰다. 뒷자리에서는 "애 좀 어떻게 해보세요"라는 말이 들려오고, 부모는 아이를 안고 통로로 나가며 연신 고개를 숙인다. 요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애 있으면 기차 타지 말고 자가용 타고 다녀야 한다", "돈 내고 기차 탔으니 조용히 갈 권리가 있다"라는 주장이 공감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얼핏 그럴듯해 보이지만 옳지 않다. 법적으로도 그러하다.
먼저 "애 있으면 주위 방해가 되니 자가용 타고 다니라"는 말부터 살펴보자. 이 말은 유아동 동반 가족에 대중교통을 포기하라는 요구다. 장거리를 자차로 이동하기 어려운 가구가 적지 않다는 현실은 차치하더라도, 이러한 주장은 대중교통의 취지 및 관련 법 취지에 정면으로 반한다.
우리 법은 '영유아를 동반한 사람'과 '어린이'를 장애인, 고령자, 임산부와 함께 '교통약자'로 명시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등에 이들이 대중교통을 불편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출 책무를 지운다. 나아가 '대중교통의 육성 및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은 모든 국민이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않고 편리하고 안전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권리를 가진다고 못 박고 있다. 아이를 동반한 보호자 역시 당연히 이 권리의 주체이며, 법은 교통약자인 이들이 대중교통을 더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대중교통은 애초에 불특정 다수가 함께 타는 것이 예정된 공간이고, 그 안에서 크고 작은 소리가 나는 것은 필연적이다. 물론 수인한도를 넘는 지나친 소음은 누구나 견디기 힘들 것이나, 내가 듣기 싫은 소리라 해서 그것이 곧 수인한도를 넘는다고 할 수는 없다. 법원도 혼잡한 지하철처럼 밀집한 공간에서는 승객들 사이에 서로 양해해야 할 폭이 그만큼 넓어진다고 본다. 함께 쓰는 공간인 이상 일정 범위의 불편은 상호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돈 냈으니 조용히 갈 권리가 있다"라는 주장도 타당하지 않다. 승차 운임은 좌석과 이동이라는 표준화된 운송 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해 지불하는 것이다. 여기에 주변에 어떤 승객이 앉을지, 대중교통에서 조용하게 이동할 권리까지 포함된 것이 아니다. 실제로 코레일 여객운송약관 어디에도 완전한 정숙을 서비스 내용으로 명시한 조항은 없다. 게다가 아이와 함께 탄 부모 역시 똑같은 운임을 지불하고 승차한 것이다.
영유아 울음은 의도된 행위가 아니라 생리적·본능적 반응이다. 소란행위는 행위자 고의를 전제로 하는데, 영유아에게는 애초에 책임능력 자체가 없고 보호자 또한 아이의 울음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 어떤 소음이 수인한도를 넘는지는 그 행위의 공공성, 공간의 성격, 피해를 피할 수 있는 여지 등을 함께 따져 판단한다.
아이의 울음은 가해 의도가 없는 불가피한 소리이고, 다양한 이용자가 공존하는 대중교통의 성격상 예정된 소리다. 다른 승객은 정 참기 어렵다면 귀마개나 이어폰 착용 등으로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반면 보호자는 울음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 감수해야 할 통상의 범위 안에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러한 예민함이 유독 기차에서, 그것도 유독 엄마와 함께 있는 어린 아이를 향해서만 크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퇴근길 지하철을 타보면 사정이 다르다. 동료들끼리 목소리를 높여 대화를 나누고, 옆에서 통화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도 지하철에서는 '조용해 달라'라거나, '대화하는 사람은 내리라'고 하지 않는다. 목소리 크기나 지속 시간만 놓고 보면 오히려 어른들의 대화 쪽이 더 크고 긴 경우가 많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소음의 절대적 크기가 아니라 약자에 대한 '갑질' 또는 '혐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 부모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아이를 안고 어르고, 통로를 오가며 달래고, 초조하게 다른 승객의 눈치를 살피는 부모의 모습을 우리는 숱하게 봐왔다. 그럼에도 막을 수 없는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를 이유로 "돈을 냈으니 내 권리가 우선한다"며 교통약자를 대중교통 밖으로 밀어내려는 태도는 타당하지 않다.
결국 아이가 있으면 기차를 타지 말라거나, 돈을 냈으니 조용히 갈 권리가 있다는 주장은 법적으로도 옳지 않다. 우리 모두 한때는 기차에서,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이유 없이 울던 아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