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종이 한 장에 담긴 역사의 숨결…'체부3' 펴낸 나봉주 대표
"처음에는 그저 우표 도감을 하나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자료를 정리하다 보니 우표 한 장마다 우리 역사의 숨결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제가 독립운동 하는 사람처럼 느껴지더군요."
우표 수집가에서 근현대사 기록자로 변신한 나봉주 반도엠피에스 대표(78·사진)의 말이다. 10대 때 시작한 우표 수집은 60여년의 세월을 거치며 개인의 취미를 넘어 잊혀가는 우리 근현대사 기록을 보존하는 작업으로 발전했다.
■수입인지 통해 본 근현대 생활상
나 대표가 최근 세 번째 '체부' 시리즈인 '한국 근현대 수입인지 총람'(박영사)을 펴냈다. 앞선 두 권이 우표와 우편사를 다뤘다면, 이번 책의 주인공은 '수입인지'다. 대한제국의 징세인지부터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임시정부, 미군정기, 해방 이후 정부가 발행한 수입인지와 수입증지까지 시대순으로 집대성했다. 작은 종이 한 장을 통해 한 시대의 재정과 행정, 나아가 국가의 탄생 과정을 엿볼 수 있게 한 것이다.
사실 나 대표는 '체부2'를 낸 뒤 이 거대한 작업을 마무리하려 했다. 2년 만에 두 번째 책을 내기까지 7년 넘게 자료를 모으고 원고를 쓰느라 자판을 두드리기조차 버거울 만큼 지쳤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마음을 돌린 것은 2024년 가을, 한 수집상에게서 건네받은 대한제국 수입인지였다. 우표 수집가에게도 낯선 희귀 자료 속에서 역사의 흔적을 발견한 그는, 일본계 미국인 수집가가 소장하던 대한제국·일제강점기 수입인지 컬렉션을 30만달러(약 4억3000만원)에 사들였다. 해외에 흩어진 우리 기록을 되찾아와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었다.
이번 책에는 근대 조세 행정부터 임시정부의 독립공채와 독립운동자금 모집, 미군정기 이후의 행정 제도까지 폭넓은 사료가 담겼다. 실제 수입인지가 첨부된 계약서와 영수증 등을 함께 수록해 당시의 생활상까지 생생히 전한다. 특히 관보를 일일이 뒤져 발행 근거를 대조하고, 불분명한 자료는 '미확인' 등으로 엄격히 구분해 사료의 객관성을 높였다.
"완벽하게 해석하는 것보다 자료를 정직하게 남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틀렸다면 후대 연구자들이 바로잡으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실물이 사라지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놓는 것이죠."
■"아이들 위한 '체부4' 펴낼 것"
'체부'라는 이름에는 초등학교 시절 우편집배원을 기다리던 오랜 우표 사랑이 담겨 있다. 책의 목적 역시 상업적 이익이 아니었다. 첫 책은 전국 대학과 도서관, 우체국 등에 사비로 무상 기증했고, 해외 대사관과 문화원에도 보내 교민과 외국인이 볼 수 있게 했다. 한 초등학생이 보낸 손편지는 그가 꼽는 가장 큰 보람이다.
세 번째 책으로 끝내려던 계획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네 번째 책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번 책에는 만화와 일러스트를 곁들여 나이 어린 독자들도 쉽게 읽을 수 있게 할 계획이다.
"아이들이 우표를 보며 호기심을 품고, 그 속에 담긴 시대를 스스로 찾아보게 하고 싶습니다. 역사를 어렵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우표라는 작은 창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거죠."
60여년 전 한 소년이 우표에서 느꼈던 설렘은 이제 역사를 온전히 전하는 소명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표와 수입인지, 낡은 봉투와 문서에 스민 흔적들을 모아 세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은 그는, 이제 그 유산을 어린 세대의 눈높이에 맞춰 건네려 한다.
"제가 평생 수집해온 것은 어쩌면 우표가 아니라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시간인지도 모릅니다. 이번 작업이 끝나고 나면, 그제야 좀 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mail protected] 정순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