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조선강국, 수리는 왜 남의 손에
대한민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조선강국이다.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초대형 컨테이너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자랑한다. 그런데 이해하기 어려운 역설이 하나 있다. "배는 세계 1등으로 만들면서, 왜 수리는 남의 나라에서 하는가?"
선박은 한번 건조하면 20~30년을 운항한다. 그 기간 동안 정기검사와 정비, 부품 교체, 엔진 수리는 물론 수차례의 대규모 개조가 필요하다. 배 한 척 판매가 아니라 그 순간부터 수십년간 또 다른 시장이 열리는 셈이다. 그런데 우리는 '신조(新造)'에 집중한 나머지 유지·보수·정비(MRO)와 개조(Retrofit)를 전략산업으로 키우는 데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지금 세계 조선산업의 판이 바뀌고 있다. 그 변화를 상징하는 것이 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다. 미국의 조선산업 재건과 한미 조선협력 확대는 대한민국에 거대한 기회로 다가오고 있다. 이를 단순히 배를 더 많이 만드는 기회가 아니라 MRO·선박 개조·기자재·엔지니어링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산업 생태계의 대전환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또 하나의 변화는 북극항로다. 북극항로가 활성화되면 동북아와 유럽을 잇는 해상물류의 지도가 달라지는데, 이는 단순히 새로운 바닷길 하나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항만·물류와 선박 정비·수리·개조, 기자재 공급을 아우르는 새로운 해양서비스 시장이 열린다는 뜻이다. '선박의 대형화'와 '국제해운의 탈탄소 전환'도 수리조선의 중요성을 더욱 키우고 있다. 친환경 연료 전환, 추진시스템 개선, 에너지 효율 향상, 디지털 장비 설치 등 기존 선박을 새롭게 탄생시키는 개조시장이 열리고 있다. 미래 조선산업의 승부는 '누가 배를 잘 만드느냐'에서 '누가 선박의 생애 전체를 책임지느냐'로 패러다임이 변모하고 있는 매우 중차대한 변혁기이다.
중국과 싱가포르, 두바이 등은 이미 대규모 수리·개조 인프라와 축적된 경험을 기반으로 글로벌 MRO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 기술과 기자재 생태계를 갖춘 대한민국이 이 시장을 외면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대한민국에 전 세계가 주목하는 세계 최대 '선박종합병원'이 있다는 것을 상상해 보라. 너무나도 가슴 벅차지 않은가. 더욱이 수리조선은 단순한 비즈니스가 아니라 산업안보와도 직결된다. 공급망 불안과 지정학적 갈등이 일상화된 시대에 핵심선박의 정비와 개조를 해외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행히 정부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수리조선'을 조선업의 보조산업이 아닌 조선·해운·항만·기자재·에너지·방산을 연결하는 국가 전략산업으로 접근하며, 대한민국을 세계적인 MRO·개조 허브로 도약시키는 마스터플랜이 필요한 이유다. 청사진과 더불어 흔들림 없는 실행력 또한 수반되어야 한다. MASGA와 북극항로라는 새로운 기회가 열리는 지금, 세계 최고의 배를 만드는 나라에 세계적인 수리조선소가 없다는 역설을 이제는 끝내야 하지 않을까.
■약력 △아서디리틀 코리아 대표 △이화여대 교수 △색동회 이사장 △청와대·기재부·산업부·국토부 자문위원
홍대순 광운대 경영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