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기고

법대의 높이는 책임감의 높이다[알쏭달쏭 법원]

파이낸셜뉴스

부장판사 출신 김태형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파이낸셜뉴스] 변호사 업무를 시작한 뒤 처음 법정에 섰을 때 저는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법대는 생각보다 훨씬 높았고, 그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은 때로는 차갑기까지 하다는 사실을요. 오늘은 판사 출신 변호사로서 겪은 첫 '신고식'과 그 이후의 성찰을 담아 보았습니다.

첫 재판, 그리고 예상치 못한 '면박'

이혼 사건의 피고 측 대리인으로 선 첫 재판. 재판장은 사전처분으로 면접교섭 방식을 정하려 했고, 저는 의뢰인이 원하는 방식을 설명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재판장이 제 말을 끊더군요. "변호사님, 가사 재판 처음 해보세요?" 순간 당황했습니다. '발언 기회를 얻어 대리인 의견을 진술했을 뿐인데, 왜 저런 질문을?' 재판장의 눈빛은 호기심이 아니라 매섭고 싸늘했습니다. 속으로는 "제가 재판장님보다 가사 재판 경험이 훨씬 많을 텐데요"라고 되묻고 싶었지만 의뢰인에게 불이익이 갈까 봐 참았습니다. "처음은 아닙니다."라고만 답했죠. 사실 저는 법관으로 재직할 때 이혼 사건 재판장을 오랫동안 했었고, 수원가정법원에서는 가사소년전문법관으로 근무한 바 있습니다. 퇴임 직전까지도 가사 재판을 맡아왔던 사람인데 변호사로 첫발을 내딛는 법정에서 이런 질문을 받다니.

법대 아래에서 본 법대의 높이

재판 후 동료 변호사에게 털어놓았더니, '그 정도 면박은 변호사 하다 보면 별일 아니다. 얼른 털어내고 맷집을 키워라'라고 조언하더군요. 나중에 그 재판장에 대해 알아보니 더 심한 피해를 입은 변호사들의 에피소드가 쏟아졌습니다. 여러 루트를 통해 그 재판장이 유독 고약한 사람임을 알게 됐습니다. 대다수 법관은 품위를 지키며 온화한 태도로 재판을 진행하죠. 하지만 법대 아래에서 바라본 법대는 여전히 높아 보였습니다. 당사자 입장에서 보면 꼭 채택되어야 할 증거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고, 특히 항소심에선 더욱 그러합니다. 충분히 납득할 만한 입증 목적을 기재한 증거신청이 여러 번 기각되면서 제가 재판장이었을 때 대리인들의 증거신청을 너무 엄격하게 제한했던 것은 아니었나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재판장의 진짜 역할: 소통의 기술

재판은 단순해 보입니다. 당사자의 주장을 듣고 증거로 사실을 확인한 후 법령과 판례를 적용해 결론을 내리는 과정이죠. 하지만 하나의 사건 안에서 수많은 사실관계와 증거가 얽혀 있다 보면 그 과정은 매우 복잡해집니다. 이 복잡하고 기나긴 과정을 하나하나 품위 있게 풀어나가는 것이 재판장의 역할입니다. 재판 기록을 잘 숙지하는 것은 기본이죠. 하지만 요즘은 기록 숙지만으로는 좋은 재판장이 되기 어렵습니다. 아무리 기록을 잘 파악하고 있어도 재판 당사자들과 원활하게 소통하지 못하는 재판장은 미숙한 재판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작은 일례로 법대에서 마이크 사용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재판 당사자는 재판장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아듣지 못합니다. 말이 너무 빠르거나 우물우물해도 마찬가지죠. 기록만 보면서 눈을 맞추지 않고 재판을 진행한다면 당사자들의 절차적 만족감은 현저히 떨어집니다.

판사 시절에 소통을 위해 했던 노력들

저는 법관으로 재직할 때 소통 기술 강화를 위해 재판 절차를 녹화해서 스스로 모니터링하기도 했습니다. 동료 재판장들에게 녹화 영상을 보여주면서 조언을 구했고, 전문가로부터 커뮤니케이션 코칭도 받았습니다. 그 결과 재판 중 기록을 필요 이상으로 자주 보는 습관과 재판 당사자들과의 눈 맞춤 시간이 너무 짧았던 문제점을 발견했죠. 이를 고치기 위해 사무실에서 거울을 보며 혼자 재판 진행 연습을 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법원에서는 법관들이 각 재판장의 재판 진행 영상(재판장만 촬영)을 보면서 투표를 통해 시선 처리, 발성, 질서 유지 등에서 가장 탁월한 재판장을 모범 사례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저도 그 영상을 보며 재판 진행 스킬을 연마했습니다. 그 덕분인지 우수법관으로 선정된 적도 있었습니다. 법원행정처는 일정 경력의 재판장들에게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멘토를 매칭해 주는 등 사법 신뢰 제고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권위는 싸늘한 눈빛으로 세우는 게 아니다

사법부 대부분의 재판장이 소통 기술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잘 압니다. 변호사로 나와 보니 재판 당사자나 대리인에게 막말이나 직접적인 모욕을 가하는 재판장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첫 재판 때 경험한 것처럼 은근한 면박을 주는 재판장은 아직도 더러 있는 것 같습니다. 재판장의 권위는 싸늘한 눈빛으로 대리인이나 당사자를 내리누르는 방법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법정은 소통하는 곳이니까요. 판사 출신 변호사로서 그리고 한때 법대에 앉아 있었던 사람으로서 감히 말씀드립니다. 법대의 높이는 책임감의 높이여야 합니다. 그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은 따뜻해야 하고 말 한마디 한마디는 존중을 담아야 합니다. 법정의 권위는 그런 방식으로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태형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변호사(전 수원가정법원 부장판사)
김태형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변호사(전 수원가정법원 부장판사)

김태형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l 김태형 변호사는 가사∙상속 분야 전문가이다. 2007년 법관 임용 후 2024년 수원가정법원 부장판사를 끝으로 17년간의 법관 생활을 끝내고 법무법인 바른에 합류했다. 김태형 변호사는 법관 시절 2012년부터 총 8년간 가사∙상속 및 소년심판 업무를 담당했다. 특히 법관 퇴직 전 5년(2019~2024)간 수원가정법원에서 가사소년전문법관으로 수많은 가사∙상속 관련 케이스를 처리하면서 이 분야의 전문성을 확보했다. 베스트셀러인 "부장판사가 알려주는 상속, 이혼, 소년심판 그리고 법원"(박영사, 2023)의 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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