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사설

[사설] 美 현대제철소, 아쉽지만 현지화 성공모델 되길

파이낸셜뉴스

저탄소 車강판으로 북미 공략
국내 제조 경쟁력도 돌아봐야

4일(현지시간) 미국 루이지애나주 어센션 패리시 도널드슨빌에서 열린 '현대제철-포스코 루이지애나 전기로 제철소(HPLS)' 기공식에서 주요 내빈들이 공장 건설을 알리는 첫 삽을 뜨고 있다. 왼쪽부터 강경화 주미한국대사,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 제프 랜드리 루이지애나 주지사,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트로이 카터 연방 하원의원,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4일(현지시간) 미국 루이지애나주 어센션 패리시 도널드슨빌에서 열린 '현대제철-포스코 루이지애나 전기로 제철소(HPLS)' 기공식에서 주요 내빈들이 공장 건설을 알리는 첫 삽을 뜨고 있다. 왼쪽부터 강경화 주미한국대사,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 제프 랜드리 루이지애나 주지사,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트로이 카터 연방 하원의원,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현대제철의 미국 전기로 제철소 건설 프로젝트가 첫발을 뗐다. 현대제철이 포스코, 현대차와 함께 미국 루이지애나에 58억달러(약 8조원)를 투자해 전기로 제철소를 건설하는 것이다. 2029년 양산을 목표로 오는 4·4분기 착공해 열연·냉연·도금 강판 등 연간 총 270만t을 생산할 계획이다. 연간 매출은 4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회사 측은 내다봤다. 미국의 높은 관세장벽을 현지 생산으로 돌파하고 세계 최대 시장을 직접 공략하는 비장의 승부수다.

루이지애나 제철소는 미국 최초의 전기로 기반 자동차강판 전문 제철소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남다르다. 철광석을 천연가스로 가공해 만든 직접환원철(DRI)과 고철을 전기로에서 녹여 철강을 생산한다. 탄소포집·저장(CCS)과 신재생전력을 적용하면 기존 고로 제품보다 탄소배출량을 최대 70% 줄일 수 있다. 가격과 물량을 앞세운 중국 철강과 소모적 경쟁을 벌이기보다 저탄소·고부가가치 강판으로 차별화하는 것은 한국 철강산업이 가야 할 방향이다.

판로도 상당 부분 확보했다. 현대차와 기아 미국 공장에 각각 연간 40만t을 공급하고, 포스코도 60만t을 판매할 계획이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도 공급을 논의 중이어서 외부 고객 확보 가능성도 열려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이곳에서 생산한 철강을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에 적용하고, 향후 스페이스X 같은 우주기업에도 공급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저탄소·고성능 철강 수요가 확대되는 추세를 감안하면 먼 미래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자동차강판을 넘어 로봇·우주항공 등 첨단산업용 고부가 제품으로 시장을 넓힌다면 루이지애나 제철소는 한국 제조업의 성공적인 현지화 모델이 될 수 있다.

이번 투자 결정은 한국 철강산업이 처한 절박한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거세지는 중국의 저가 공세, 여기에 국내 전방산업 부진까지 겹치면서 철강업계는 혹독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각국의 보호무역 장벽과 탄소규제까지 높아져 안팎으로 생존을 위협받는 처지다. 범용재를 대량생산하는 방식만으로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 고부가 자동차강판과 저탄소강, 우주항공용 특수강 등 고난도 분야로 승부처를 옮기고 설비의 저탄소 전환과 연구개발에 총력을 쏟아야 한다.

미국의 관세장벽과 자국산 우대정책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해외 현지화는 불가피한 생존전략이다.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방식만 고집하다가는 시장 자체를 잃을 수 있다. 소재기업과 수요기업이 함께 진출해 현지에서 생산부터 수요까지 공급망을 구축하면 시너지도 기대할 수 있다.

다만 해외 현지화가 국내 제조업 기반 약화로 이어져선 안 된다. 철강뿐 아니라 자동차·배터리·반도체 주력기업들의 미국 투자가 급증하면서 국내 투자와 고용 기반이 위축될 우려도 커지고 있다. 기업에 애국심을 앞세워 국내 투자를 요구할 일은 아니다. 8조원짜리 최첨단 제철소가 왜 한국이 아니라 미국에 들어서는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높은 전력비용과 산업용지 부담, 더딘 인허가, 강성노조, 경직된 노동시장과 복잡한 규제 등 국내 투자를 가로막는 요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족쇄는 철강을 넘어 한국 제조업 전반의 경쟁력을 갉아먹는다. 규제와 투자환경을 대폭 개선해야한다. 해외에선 현지화로 시장을 지키고, 국내에선 고부가·저탄소 전환으로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투트랙 전략이 한국 철강의 생존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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