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포럼

[포럼] 몰입의 디자인

파이낸셜뉴스
김현선 서울디자인재단 이사장
김현선 서울디자인재단 이사장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시인의 이 질문은 오래 마음에 남는다. 해직교사 시절 힘겨웠던 자신에게 던진 물음이라고 한다. 훗날 그는 그 시간을 '성찰의 기회를 갖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회고했다.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는 질문은 결국 타인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다.

나는 연탄재를 보며 몰입을 생각한다. 연탄은 몸을 다 태워 한겨울을 데운다. 불이 꺼진 뒤에도 재는 눈길에 뿌려져 또 다른 쓰임을 얻는다. 불꽃은 사라져도 흔적은 남는다. 자신을 온전히 쏟아부은 시간도 그렇다.

지난주 서울은 예술과 디자인으로 뜨거웠다. 코엑스에서는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서울이, DDP에서는 디자인마이애미 서울이 열렸다. 회화와 조각, 가구와 조명, 오브제가 도시 곳곳을 채웠다. 서울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미술관처럼 움직였다.

전시장을 걸으며 내가 본 것은 작품만이 아니었다. 그 뒤에 쌓인 작가의 시간이 보였다. 한 작가가 자기 언어를 갖기까지 얼마나 많은 실패와 반복을 견뎠을까. 올해 프리즈가 충분히 조명받지 못했던 20세기 작가들을 다시 바라본 것도 뜻깊었다. 예술의 가치는 새로움에만 있지 않다. 오래 지속된 탐구가 새로운 시대와 만날 때 작품은 다시 태어난다. 몰입은 단지 오래 매달리는 일이 아니다. 눈앞의 현실에 갇히지 않고 그 너머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향해 내딛는 대담함이다. 익숙한 것을 의심하고 실패를 감수하면서도 자기 질문을 놓지 않는 태도다. 그래서 몰입은 치열하다. 동시에 아름답다. 나는 그것을 '치열한 아름다움'이라 부르고 싶다.

DDP에서 열린 디자인마이애미 서울에서도 같은 생각을 했다. 올해 주제는 '함께, 울림(Resonance: Design in Dialogue)'. 세계의 갤러리와 디자이너, 컬렉터가 모여 20·21세기의 가구와 조명, 오브제를 '컬렉터블 디자인'이라는 언어로 보여주었다.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는 흐려지고 있다. 지난해 아시아 첫 개최에 이어 올해는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에서 거래와 담론이 함께하는 본격적인 디자인 페어로 확장됐다.

미켈란젤로는 다비드상을 완성한 뒤 비결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다비드는 원래 대리석 안에 있었다. 나는 다비드가 아닌 것을 깎아냈을 뿐이다."

좋은 창작은 계속 더하는 일이 아니다. 오래 바라보고 지우고 다시 선택하며 본질에 가까워지는 일이다. 몰입 또한 그 너머를 향해 자신을 고쳐가는 집중이지 않을까. 다시 안도현의 질문 앞에 선다.

나는 무엇을 위해 뜨거웠는가. 그 뜨거움은 무엇을 남겼는가.

지난주 서울에서 만난 수많은 작품과 디자인도 결국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오래 견딘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느 날 작품이 되고, 한 사람의 언어가 되고, 때로는 한 도시의 문화가 된다. 몰입은 현실에 갇히는 일이 아니라 현실 너머를 보는 힘이다.

오래 사랑한 사람만이 오래 남는 것을 만든다.

그것이 내가 믿는 몰입의 디자인이다.

김현선 서울디자인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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