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視角] CXMT 창업자의 이메일 한 통
칭화대 출신 투자자 리쥔은 오래된 이메일 한통을 지우지 않고 있었다. 2004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받은 메일이었다. 보낸 사람은 칭화대 후배인 당시 서른두살 무명의 엔지니어 주이밍이다. 메일은 길지 않았다. "메모리 산업의 경로는 미국에서 일본으로, 다시 한국으로 넘어갔다. 이제 중국 차례"라는 게 요지였다. 주이밍은 마지막에 쐐기를 박는다. "장차 중국 최대 메모리 설계·제조회사를 만들겠다."
솔깃한 내용이었으나 리쥔은 시큰둥했다. 중국 반도체 굴기 원년은 파운드리업체 SMIC가 닻을 올린 2000년이다. 하지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다른 영역이다. 삼성전자, 하이닉스 같은 거인들이 지키는 기술의 요새였다. 주이밍은 직접 리쥔을 찾아간다. 초여름 실리콘밸리 어느 스타벅스에서였다.
얼굴을 마주한 자리에서도 리쥔은 감흥이 없다. 반전은 몇달 뒤 두번째 만남 때였다. 주이밍은 4배속 2T1C 방식의 고속 정적 메모리(SRAM) 설계구상을 내밀었다. 기존 SRAM보다 저비용·저전력·고성능을 동시에 잡을 수 있다는 모델이었다. 리쥔이 비로소 움직인다. 10만달러 투자금을 모으고 실리콘밸리 차고를 빌려줬다. 주이밍의 첫회사 팹리스 기가디바이스는 여기서 SRAM 기술 특허를 손에 쥔다. 리쥔이 훗날(2017년) 칭화대 교우회보에서 밝힌 이야기들이다.
주이밍은 특허서류 한장을 들고 중국으로 돌아온다. 현지 매체와 가진 인터뷰는 적잖이 도발적이다. "미국의 메모리산업은 오후 4시의 태양이지만 중국은 아침 8시의 태양이다. 중국의 삼성전자를 만들겠다." 손을 뻗은 다음 영역이 플래시 메모리다. 10년을 쏟아부어 기가디바이스를 세계 3위 노어(NOR)플래시 기업으로 키워낸다. 적어도 이때까진 합법적이고 그럴싸한 시작이었다.
때는 2016년, 중국 정부의 거대한 야망 '중국 제조 2025'가 선포된 이듬해다. 주이밍의 D램 시장 염원이 현실화될 조건이 갖춰지고 있었다. 판을 깔아준 곳이 안후이성 허페이시다. 1500억위안(약 30조원) 규모의 대형 D램 프로젝트가 가동된다. 첫 투자액의 80%를 시 국유자본이 댔다. 중국의 D램 업체 CXMT의 출발점이 바로 여기였다.
공장의 뼈대를 세우고 초기 콘텐츠를 채운 이는 따로 있다. SMIC 사장을 지낸 중국 반도체 원로 왕닝궈가 등장한다. 일흔의 나이에 대만과 한국의 엔지니어 싹쓸이에 나섰다. 미국 마이크론 출신 중국계도 다수 끌어들였다. 공장은 착공 후 10개월 만에 완공됐다. 긁어모은 인재들의 머릿속 지식재산을 퍼즐처럼 맞춰보지만 한계가 분명하다. 수백 단계에 이르는 삼성의 공정레시피를 통째로 가져오는 방식이 동원된다. 이를 주도한 삼성 출신이 한국 법정에서 증언한 내용이다. 이와 관련해선 국내 형사책임은 물론 국제 제소를 통해 상응하는 배상 책임까지 물어야 한다.
더 뼈아픈 것은 파산한 독일의 D램 업체 키몬다의 특허를 사들이고 여기에 끌어모은 기술을 섞어 D램 산업화 길을 열었다는 사실이다. 회사 설립 3년 만인 2019년 DDR4 양산을 시작했다. 그 후 찾아온 '반도체의 겨울'은 오히려 기회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초유의 적자에 시달리며 감산에 나설 때 CXMT는 대규모 증설을 감행한다. 40년 전 삼성이 일본 도시바를 추격할 때 썼던 그 전략이다. 달랐던 건 CXMT의 경우 거대한 국가자본이 먼저 움직였다는 점이다.
인공지능(AI) 시대 강력한 수혜주 CXMT는 이제 10% 점유율로 세계 4위 D램업체 한 자리를 꿰찼다. 메모리 공급난에 몸값이 크게 올랐다. CXMT의 다음 고지가 고대역폭메모리(HBM)다. 압도적 우위인 한국과 아직 격차는 엄연히 있다. 하지만 시간이 많지는 않다. 빛의 속도로 인프라 보완이 필요하다. 개발자 속을 태우는 근로규제도 마땅히 풀어야 한다. 무엇보다 정치권의 민원성 요구로 기업의 근심을 키우지 말 것. 이 정도는 돼야 최소한의 시간을 벌 수 있다.
[email protected] 최진숙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