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각

[강남視角] 공짜로 풀리는 AI, 산업은 누가 키우나

파이낸셜뉴스
이구순 IT 대기자
이구순 IT 대기자

2026 글로벌 기업공개(IPO) 시장 최대어 앤스로픽에 대해 투자자들이 토큰당 매출, 컴퓨팅 전력 1기가와트(GW)당 매출 등 구체적인 수익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단다. 앤스로픽이 내놓는 사용자 수, 모델 성능 같은 데이터로는 투자를 결정하지 않겠다는 태세다. 지난 5년간 막대한 투자금을 쏟아부었으니, 원가 대비 수익을 정확하게 계산해 달라는 말이다. 인공지능(AI)이 실험실을 벗어나 시장에서 평가받는 거대한 산업으로 자리 잡았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소식이다.

시장은 냉정하다. 수억명의 사용자, 정부가 두려워할 만큼 강력한 성능 같은 화려한 포장은 과감하게 걷어낸다. 원가 얼마를 들여 얼마의 수익을 올리는지 내용물의 실체를 따지겠단다.

그도 그럴 것이 AI 사업은 사용자가 늘면 좋기만 한 것이 아니다. 질문과 답변이 많아질수록 그래픽처리장치(GPU)가 돌아가고, 전력과 데이터센터 비용이 발생한다. 결국 사용자가 늘어난 만큼 비용도 더 들고, 그러니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게 시장의 논리다.

정부가 올해 안에 전 국민이 공짜로 쓸 수 있는 '모두의 AI'를 내놓는다. SK텔레콤, 카카오, KT가 서비스를 맡는다. 국민 누구나 기본적인 AI 챗봇과 공공서비스를 연결하는 AI비서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된다. AI 시대의 새로운 기본권이 생기는 것이다.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한편 걱정도 된다.

정부가 주도하고, 굴지의 대기업들이 제공하는 공짜 AI가 전 국민에게 풀리면 한국에 AI 시장은 생겨날 수 있을까? 공짜 '모두의 AI'가 한국 AI 시장의 가격기준이 된다면 한국에서 그 기준을 넘어서는 AI 산업은 싹을 틔울 수 있을까? '모두의 AI'를 능가하고 대기업들의 브랜드를 앞서는 AI 서비스를 개발해 돈을 벌겠다는 꿈을 품고 창업에 나서는 스타트업이 나올 수 있을까?

공짜 '모두의 AI'가 한국인들의 AI 기본권을 제공한다는 면에서 반갑고 고마운 일이지만, AI 산업에는 넘기 힘든 장벽을 만드는 것은 아닐까 싶다. 한국에서 소비자에게 평가받을 시장을 얻지 못한 한국 AI 스타트업이 '원가 대비 수익'을 묻는 글로벌 AI 시장으로 나가기에는 너무 좁은 길을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닐까 싶다.

정부는 '모두의 AI'도 공공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특화된 AI서비스는 유료화의 길을 열겠다는 정책을 내놨다.

정책 기준이 선명하지 않다. AI 기본권을 내세운 복지정책은 명확하게 내놨지만, AI 시장을 키울 수 있는 산업정책은 명확한 방향을 정하지 못한 셈이다.

정부가 공짜 '모두의 AI'를 활용한 복지정책의 다른 축으로 한국 AI 산업을 키울 AI 시장 설계도도 제시했으면 한다. 원칙대로라면 시장 설계야 기업들이 내놓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정부가 공짜 서비스라는 가격장벽을 만들어놨으니, 장벽 너머의 시장을 규정하는 AI 시장의 설계를 내놓는 게 마땅하다.

정부가 주도하는 '모두의 AI'가 어떤 서비스까지 공짜로 제공할 것인지, 정부의 공짜 서비스에 위축되지 않고 민간기업이 자유롭게 가격을 정하고 경쟁할 수 있는 지점은 어디서부터인지 분명하게 선을 그어줘야 한다. 그래야 정부 주도 AI 사업에 참여하지 않는, 정부의 운영자금 없이도 생존하고 성장할 수 있는 K-AI 산업 생태계가 만들어질 것이다.

또 공공 분야가 K-AI 시장 형성의 마중물이 됐으면 한다. 5000만 소비자 시장에 공짜 AI라는 가격장벽을 만들었으니, 공공기관이라도 나서서 한국 AI 기업들의 제품과 서비스를 제값 내고 사서 쓰는 소비자가 됐으면 한다.

정부가 전 국민 AI 기본권이라는 복지정책에만 집중해 AI 시장과 생태계를 키우는 산업 정책은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진정한 복지는 정부의 공짜 AI서비스로 그치는 게 아니라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K-AI 산업을 키워내는 것까지다.

[email protected] 이구순 기자


#앤스로픽 #AI 기본권 #AI 산업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기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