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로 중앙은행 역량 키우되 주요 의사결정은 인간의 몫" [AI월드 2026]
AI 시대의 경제와 중앙은행 박정필 한국은행 디지털혁신실장
AI가 물가 낮추고 실업 높인다면
통화정책 어떻게 가야할지 등 고민
복잡해진 금융시스템 대응도 과제
"인공지능(AI)을 통해 중앙은행의 역량을 키우는 게 새로운 시대에 대응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AI의 역할은 부조종사(Copilot)이기 때문에 주요한 의사결정은 인간이 하는 게 중요합니다."
박정필 한국은행 디지털혁신실장은 9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롯데시네마에서 파이낸셜뉴스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공동 개최한 'AI월드 2026' 기조연설자로 나서 AI 시대의 중앙은행 대응 방향을 설명하며 이같이 말했다.
AI가 경제 전반에 광범위한 변화를 일으키는 데다 인력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AI를 통해 대응 역량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중앙은행의 정책 판단이 국가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책임은 인간에게 남겨둬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박 실장은 AI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크게 생산성, 가계, 기업, 분배 등 4가지 경로로 구분했다. 생산성 측면에서는 AI를 전기나 인터넷처럼 범용기술로 보고 생산성을 크게 올릴 것이라는 낙관론과 실제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거라는 신중론이 공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AI 도입 초기에는 보완적 자본투자와 조직개편이 먼저 이뤄지고 생산량 증가가 뒤따르는 'J커브'가 나타날 가능성을 제시했다.
기존의 기술혁신이 제조·조립이나 데이터 입력 등 정형 업무를 자동화했다면, AI는 분석·전략·창작·진단과 같은 비정형 인지 영역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실제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지난 2023년에는 취업자의 12%가 AI 고노출 직업군에 종사했고, 고소득·고학력 취업자일수록 노출 정도가 심했다. 근로자 5512명을 대상으로 한 올해 조사에선 근로 시간이 3.8% 감소했으며, AI가 청년취업 감소에 94% 수준의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박 실장은 "AI가 물가를 낮추면서 실업을 높이면 통화정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AI시대에서 중립금리와 정책금리 경로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AI 생산성 효과가 불확실한 가운데 어떤 지표를 가지고 정책 결정을 할 것인가 등은 앞으로도 중앙은행이 계속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박 실장은 금융권에서도 AI 전환이 이어지면서 중앙은행이 살펴야 할 금융시스템의 범위와 속도, 복잡성이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은행뿐 아니라 비은행 중개기관과 플랫폼으로 금융서비스의 경계가 넓어지고 실시간 거래가 확대돼 관련 위험성도 증폭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2023년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뱅크런과 주가 폭락으로 파산하며 금융 위기를 일으킨 '실리콘밸리 사태'를 예로 들며 "금융 문제가 발생했을 때 빨리 포착하지 못하면 시스템 전체의 문제로 번질 수 있기 때문에 중앙은행의 대응 속도가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한국은행은 이 같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자체 AI 역량을 높이고 있다. 지난 2020년 중기전략계획을 수립해 디지털혁신실을 신설하고, AI와 머신러닝(ML)의 중앙은행 업무 활용을 목표로 제시했다. 이듬해부터는 데이터 거버넌스와 인벤토리를 구축하고 소셜미디어 기반 평판 모니터링, AI번역, 시스템 리스크 탐지 AI 등 활용 사례를 축적했다.
올해부터는 한국은행 전 직원이 업부 전반에 활용할 수 있는 규모의 AI플랫폼인 '보키(BOKI·Bank of Korea Intelligence)'를 가동하고 있다. 지난 1월 개발된 보키 1.0에선 조사 연구와 규정 검색, 특화번역 기능만 제공했으나, 지난 7월 이후 출시된 보키 2.0에서는 조사연구·규정·문서 어시스턴트를 하나의 사용자환경(UI·UX)으로 통합하고, 인터넷 정보 기반 검색증강생성(RAG) 문서 원형을 유지한 채 일괄 번역하는 기능이 추가됐다. 보키 3.0에서는 분석 자동화 기능까지 더해져 한층 확장했다.
박 실장은 "한국은행은 경제 통계나 대국민 서비스를 AI와 결합해 제공하는 방향도 검토 중"이라며 "앞으로 더 발전된 AI 성과를 보여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 이구순 팀장 연지안 장민권 윤홍집 최혜림 박지연 주원규 임수빈 정원일 최가영 박성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