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구비는 누가 내나" 기후 재난 청구서 앞에 선 개발도상국 [재난으로 온 기후위기⑤·끝]
[재난 뒤에 남은 청구서]
네팔·파키스탄·리비아, 복구비 국가 재정 넘어서
기후 취약국, 손실과 피해대응기금 확대 요구
[파이낸셜뉴스] 대형 홍수와 산사태, 폭풍해일, 폭염 피해는 구조가 끝난 뒤에도 복구비와 보험금, 식량·에너지 가격 부담으로 이어진다. 네팔과 파키스탄, 리비아 등 기후 취약국은 도로와 주택, 농경지, 발전시설 피해를 한꺼번에 떠안고, 국제사회에는 손실과 피해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히말라야 산악지대를 덮친 네팔 대홍수는 산악 국가가 기후 재난 뒤 어떤 비용을 떠안는지 보여준다. AP통신 등 주요 외신 등에 따르면 스와르님 와글 네팔 재무부 장관은 이번 홍수 피해 복구에 40억~50억달러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최대 추산액인 50억달러는 네팔 경제 규모의 10%에 가까운 금액이다.
피해는 하천 주변 마을과 도로, 교량, 수력발전시설로 번졌다. 외신은 네팔 재난 당국의 초기 피해 추산액이 25억6000만달러로, 네팔 연간 정부 예산 약 140억달러의 5분의 1에 가깝다고 보도했다. 재건 비용은 최종 집계가 끝나지 않았지만 40억~50억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추산도 함께 전했다.
네팔 정부는 이번 재난을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기후변화 피해로 주장하고 있다. 시시르 카날 네팔 외교부 장관은 "네팔이 초래하지 않은 전 지구적 위기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며, 기후변화 보상을 요구하는 공식 서한을 국제 파트너들에게 보냈다고 밝혔다.
카날 장관은 이번 홍수를 "표준적인 홍수"가 아니라 "히말라야 쓰나미"라고 표현했다. 빙하와 산악 지형, 급류가 결합하면 물과 흙, 암석이 계곡을 따라 내려오고, 하류의 도로와 발전시설, 주거지가 동시에 피해를 입는다. 산악국가의 복구비는 집을 다시 짓는 비용에 그치지 않고 끊어진 교통망과 에너지 시설, 관광 기반까지 포함한다.
기후 취약국의 보상 요구는 2022년 파키스탄 홍수 이후 국제 협상장에서 더 뚜렷해졌다.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 유럽연합, 유엔개발계획 등이 참여한 '2022년 파키스탄 홍수 사후 피해·수요 평가'는 당시 홍수로 인한 피해와 경제손실을 300억달러 이상으로 추산했다. 복구와 재건에 필요한 비용은 163억달러 이상으로 평가됐다.
파키스탄 사례는 기후 재난 비용이 주택 복구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평가 보고서는 농업과 축산, 주택, 교통, 교육, 보건 등 여러 부문 피해를 함께 계산했다. 세계은행은 이 홍수로 빈곤층이 최대 910만명 늘어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재난 이후 파키스탄은 국제사회에 기후 재원을 요구했다. 파키스탄은 온실가스 배출 책임이 제한적인 국가가 대규모 홍수 피해를 입었다는 점을 강조했고, 이 논의는 2022년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손실과 피해 기금 설립 합의로 이어졌다.
홍수 피해가 낡은 기반시설과 겹치면 재건 비용은 주택과 도로를 넘어 도시 기능 회복까지 커진다. 세계은행과 유엔, 유럽연합은 '리비아 폭풍·홍수 신속 피해·수요 평가'에서 동부 리비아 홍수의 피해와 손실을 16억5000만달러로 추산했다. 복구와 재건 수요는 18억달러로 평가됐다.
리비아 데르나에서는 폭우 뒤 댐 2곳이 붕괴하면서 도시가 큰 피해를 입었다. 도로와 교량, 주택, 보건시설, 상하수도, 전력망 피해가 한꺼번에 발생했다. 세계은행 자료는 복구가 단순 시설 재건이 아니라 서비스 회복과 도시 기반시설 재정비를 포함한다고 설명한다.
재난 복구비는 국가 재정과 국제 지원, 보험, 주민 부담으로 나뉜다. 정치적 불안정이나 행정 역량 부족이 있는 국가는 피해 집계와 지원 배분도 늦어진다. 데르나의 사례는 기후 위험과 낡은 인프라, 행정 공백이 겹칠 때 복구비가 더 커지는 구조를 보여준다.
대형 재난이 늘어도 보험으로 보상되는 손실은 일부에 그친다. 스위스리 인스티튜트는 2025년 전 세계 자연재해 경제손실을 2200억달러로 추산했다. 이 가운데 보험으로 보상된 손실은 1070억달러였다. 나머지 손실은 정부와 가계, 기업이 부담했다.
신흥국의 보험 공백은 더 크다. 인스티튜트는 신흥국에서 자연재해 손실의 80~90%가 일반적으로 보험으로 보상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보험이 닿지 않는 피해는 정부 예산, 가족의 저축, 대출, 국제 원조로 메워진다.
네팔의 최근 홍수도 보험 손실보다 전체 복구비가 훨씬 크다. 로이터는 네팔 대홍수의 상업보험 손실이 사망·부상 청구를 제외하고 200억 네팔루피, 약 1억3230만달러를 넘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네팔 정부가 추산한 복구비 40억~50억달러와 비교하면 보험으로 처리되는 금액은 일부에 그친다.
기후 재난 비용은 피해 지역 밖의 생활비에도 반영된다. 폭우가 농경지를 덮치면 작물 출하가 줄고, 폭염은 가축 폐사와 양식장 피해를 키운다. 항만과 도로가 끊기면 식량과 연료 운송도 차질을 빚는다. 피해는 농민과 어민, 운송업자, 소비자에게 나뉘어 나타난다.
세계은행의 파키스탄 홍수 평가에서도 농업과 식량 부문 피해는 큰 비중을 차지했다. 침수된 농지와 폐사한 가축, 망가진 관개시설은 다음 수확기까지 영향을 준다. 식량 가격이 오르면 저소득 가구의 지출 비중이 더 커진다.
폭염 피해도 비용으로 계산된다. 보험연구원의 권순일·한진현 연구위원은 '폭염재해와 기후 취약계층' 리포트에서 폭염 피해가 신체 상해와 가축·수산물 폐사뿐 아니라 야외 작업 중단에 따른 근로소득 상실 같은 간접 손해를 늘린다고 진단했다. 건설 현장, 배달, 농어업 현장에서 작업 시간이 줄면 임금과 생산량이 함께 줄어든다.
국내 재난 통계에서도 복구비 규모가 크다. 행정안전부의 '2024년 재해연보·재난연감'에 따르면 2024년 자연재난 인명피해는 121명, 재산피해는 9107억원이었다. 자연재난 복구비는 1조2379억원으로 집계됐다.
정부는 풍수해·지진재해보험으로 주택과 온실, 소상공인 상가·공장의 자연재해 피해를 보상하도록 하고 있다. 국민안전24에 따르면 이 보험은 행정안전부가 관장하고 민영보험사가 운영하는 정책보험이다. 태풍, 호우, 홍수, 강풍, 풍랑, 해일, 대설, 지진, 지진해일 등이 보상 대상이다.
농어업 분야에서는 복구 단가 조정도 이뤄졌다. 해양수산부는 지난 8월 '자연재난 복구비용 산정기준 단가 고시'를 개정한다고 밝혔다. 김 종자 등 7개 복구 품목이 새로 포함됐고, 우럭과 광어 등 18개 품목 단가가 올랐다. 우럭 큰 고기 1마리 복구 단가는 전년보다 38% 오른 2817원으로 조정됐다.
손실과 피해 보상 논의는 기후 협상장에서 반복되고 있다. 개발도상국과 작은 섬나라, 산악 국가는 온실가스 배출 책임이 작은 나라들이 홍수와 해수면 상승, 폭염 피해를 더 크게 떠안는다고 주장한다. 선진국은 기후재원 확대와 기금 출연을 말하면서도 법적 배상 책임으로 해석될 수 있는 표현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다.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들은 제27차 당사국총회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손실과 피해에 대응하는 기금 설립에 합의했다. 제28차 당사국총회에서는 손실과피해대응기금(FRLD) 운영 방식이 구체화됐다. FRLD 공식 자료에 따르면 2026년 3월 15일 기준 약정액은 8억2206만달러였다.
이 금액은 단일 대형 재난 복구 추산액에도 미치지 못한다. 네팔이 밝힌 대홍수 복구비는 40억~50억달러, 파키스탄 홍수 재건 수요는 163억달러 이상이었다. 피해국들은 기금 출연 확대와 신속한 집행, 대출이 아닌 보조금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손실과 피해 기금 설립을 기후 취약국을 위한 중요한 진전으로 평가해 왔다. 다만 유엔과 개발도상국들은 현재 약정 규모가 대형 재난 복구 수요에 비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email protected] 한승곤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