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인 줄 알았는데 뇌 청소 돕네?…치매 물질의 '반전'[헬스LAB]
[파이낸셜뉴스] 국내 연구진이 치매 뇌의 청소세포를 다시 활성화하는 새로운 원리를 밝혀냈다.
16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따르면 KIST 뇌질환연구단 류훈 책임연구원·생체분자인식연구센터 이현범 책임연구원 연구팀은 미국 보스턴대학교 의과대학 이정희 교수팀과 공동으로, 뇌 면역세포인 미세아교세포의 노폐물 제거 능력을 높여 치매 원인 단백질을 청소하는 새로운 경로를 규명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알츠하이머 치매는 뇌에 아밀로이드 베타 등 독성 단백질이 쌓여 신경세포를 손상시키는 질환이다. 독성 단백질을 제거하기 위한 연구가 이어져 왔지만, 나이가 들수록 뇌의 청소 기능 자체가 떨어지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았다.
연구팀이 주목한 것은 뇌 속 대사물질인 '퀴놀린산'이다. 퀴놀린산은 농도가 높을 때 신경세포를 손상시키는 물질로 알려져 있지만 연구팀은 낮은 농도에서는 오히려 미세아교세포의 청소 능력을 높이는 '반전 효과'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확인했다.
소량의 퀴놀린산이 미세아교세포를 자극하면 세포막을 구성하는 인지질을 만드는 경로의 핵심 효소가 활성화된다. 새로 만들어진 인지질(PE 인지질)이 세포막을 유연하게 만들면서, 노폐물 제거 자가포식 과정에 관여하는 단백질과 결합해 면역세포가 뇌 속 독성 단백질을 더 잘 포획하고 분해하도록 돕는다. 적은 양의 유해 물질이나 독소가 오히려 생체의 방어 능력을 높이는 '호르메시스' 효과다. 연구팀은 이 새로운 청소 경로를 'GAP'이라고 이름 붙였다.
실제 알츠하이머 치매 마우스 모델의 뇌에 저농도의 퀴놀린산을 국소 투여한 결과, 수일 만에 해마의 아밀로이드 베타 플라크가 유의하게 감소했다. 손상됐던 신경세포 연결도 회복됐으며, 단기·장기 기억 능력도 정상 마우스 수준으로 개선됐다.
이번 연구는 퀴놀린산 자체를 치료제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퀴놀린산이 작동시키는 뇌의 '청소 시스템'만 선택적으로 활성화하는 새로운 치매 치료 전략으로 이어질 수 있다. 향후 미세아교세포의 노폐물 제거 능력을 높이는 신약 개발뿐 아니라, 파킨슨병·헌팅턴병처럼 독성 단백질이 쌓이는 다른 퇴행성 뇌질환 치료에도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다.
이번 성과는 뇌의 자체 회복·청소 능력에 주목해 퇴행성 뇌질환 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연구로, KIST 뇌과학연구소가 '난치성 뇌질환 극복을 통한 국민 뇌 건강 실현'을 목표로 추진하는 임무중심연구의 결실이다.
KIST 류훈 책임연구원은 "치매 악화 물질로만 알려졌던 대사물질이 낮은 농도에서는 오히려 뇌 면역세포의 회복력을 높이는 신호로 작용할 수 있음을 밝혔다"며 "뇌 면역세포의 대사와 청소 기능을 활용한 새로운 치매 치료 전략을 제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KIST 이현범 책임연구원은 "앞으로 미세아교세포의 청소 시스템을 선택적으로 활성화하는 치료 후보물질을 발굴하고, 제약·바이오 기업과 협력해 전임상 검증과 기술이전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 성과는 국제 학술지 'Signal Transduction and Targeted Therapy'(IF 81.2, JCR 상위 0.2%) 최신호에 게재됐다.
[email protected] 연지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