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마다 떨어지던 폭탄… 김포서 B-26 지킨 20세 청년[1950, 산 자들의 기억]
호머 바니데스 한국전쟁 참전용사
1951년 김포 배치된 어린 정비사
기습공격 속 정찰기 수리 맡아
폐허 된 서울 내려다보던 기억
56년 만에 다시 찾자 "아름다워"
5살 아이의 감사 인사에 감동
노병 가슴에 영원히 남은 한국戰
【파이낸셜뉴스 뉴욕=이병철 특파원】 "미드나이트 찰리(Midnight Charlie)."
자정 무렵이면 칠흑 같은 김포비행장 상공에서 작은 프로펠러 소리가 들려왔다. 한국전쟁 참전용사 호머 바니데스(95)가 75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기억하는 이름이다. 북한군의 작은 단발기가 어둠을 타고 날아와 김포 활주로에 소형 폭탄을 떨어뜨렸다. 활주로에 구멍을 내 미군 전투기와 정찰기가 이륙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밤이 되면 아주 작은 비행기가 날아와 활주로에 폭탄을 던졌습니다. 우리 비행기가 뜨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죠." 최근 바니데스는 이를 '미드나이트 찰리'라고 기억했다. 미 공군 공식 전사에는 북한군의 이 같은 야간 기습기가 주로 '베드체크 찰리(Bedcheck Charlie)'라는 별칭으로 등장한다. 바니데스는 바로 그 활주로에서 B-26을 지켰다. "제 임무는 B-26을 계속 날 수 있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1931년생인 바니데스가 군복을 처음 입은 것은 1950년 10월 16일이다. 미 공군이 육군에서 분리돼 독립 군종으로 출범한 지 불과 3년여 뒤였다. 랙랜드 공군기지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셰퍼드 공군기지에서 항공기와 엔진 정비교육을 받은 그는 1951년 11월 한국으로 향했다.
"1951년 11월부터 1952년 11월까지 한국에 정확히 1년 있었습니다." 김포의 미 공군 제12전술정찰비행대대에 배치된 그는 B-26 크루치프이자 정비사였다. 정찰기가 북한 지역으로 날아가 병력과 차량, 군사시설을 촬영하고 돌아오면 기체에 총탄을 맞은 흔적이나 이상이 없는지 확인했다. 문제가 있으면 고쳐서 다시 날 수 있게 했다.
"그게 제 일이었습니다." 1951년 11월 그가 도착했을 때 김포는 이미 전쟁의 상처를 입은 뒤였다. 바니데스는 북한군이 기지를 두 차례 점령했다가 다시 빼앗겼다고 기억했다. 처음에는 제대로 된 샤워시설조차 없었지만 몇 달이 지나면서 화장실과 샤워장, 난로 등이 갖춰졌다.
그의 기억 속 서울은 폐허였다. 어느 날 높은 곳에서 서울을 내려다본 그는 당시 모습을 '엉망(mess)'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완전히 엉망이었습니다. 정말 엉망이었어요." 건물은 무너져 있었고 거리의 민간인들도 가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서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1952년 11월 한국을 떠났다. 미국으로 돌아와 다시 B-26 관련 업무를 맡은 뒤 1956년 10월 명예전역했다. 그리고 2008년, 56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았다. "정말 아름다워(Absolutely beautiful)." 전쟁 때 아무것도 서 있지 않았던 곳에는 건물과 상점이 들어서 있었다.
"부서진 것을 볼 수 없었어요. 한국 사람들이 정말 잘해줬어요." 그러나 그를 더 놀라게 한 것은 사람들이었다. 참전용사 모자를 쓰고 거리를 걸으면 한국인들이 고개를 숙이거나 경례하며 말했다. "당신의 한국전 참전에 감사합니다."
엘리베이터에서는 한 여성이 바니데스에게 먼저 내리라며 일곱 번이나 서로 양보했다. 다섯 살짜리 아이도 그에게 "Thank you for your service"라고 말했다. "그 아이들은 전쟁 때 태어나지도 않았잖아요. 그런데도 우리에게 감사하다고 합니다."
그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수십 년간 참전용사로 살았다. 미국재향군인회(American Legion) 78지부 지휘관을 지냈고 해외참전용사회(VFW), 한국전쟁참전용사회(KWVA)에서 활동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