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각

[강남視角] 기후변화와 닮은 꼴, AI 규제

파이낸셜뉴스
임상수 논설위원
임상수 논설위원

"이건 누군가(다른 AI든 편집 과정이든) 이 문서를 다룰 때마다 이전 맥락 없이 손을 대면 생기는 전형적인 문제입니다." 최근 여러 인공지능(AI)을 번갈아 활용해 기획안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한 AI 챗봇이 한 말이다. 언뜻 공손해 보였지만 느낌은 달랐다. '누가 내가 만든 문서에 손을 대서 엉망으로 만들었느냐'고 말하는 듯했다. 이어 "다음에 수정할 땐 지적 사항을 체크리스트로 관리하라"고까지 했다. 인간과 대화하는 듯한 오싹함이 밀려왔다.

AI가 인간의 영역을 침범하는 속도는 이미 상상을 초월한다. 최근 오픈AI의 신형 모델은 인터넷에서 사람 여부를 판별하는 '캡차(CAPTCHA)' 기반 브라우저 게임을 통과했다. 단순 텍스트·이미지 판독을 넘어 평행주차나 박자에 맞춰 키보드를 누르는 등 숙련된 인간도 시행착오를 겪는 까다로운 미니게임이었다. AI가 인간처럼 컴퓨터를 다루는 시대가 성큼 다가왔음을 실감케 한다.

이런 눈부신 발전의 뒤편에는 공포가 드리워져 있다. 얼마 전 앤스로픽을 퇴사한 연구원 제이컵 콕슨은 "AI 기업들이 인류의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AI 핵심 인재들조차 10년 내 AI가 인류를 위협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최근 다리오 아모데이 앤스로픽 최고경영자(CEO)는 "AI 모델의 성능 향상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촉구했다. 샘 올트먼 오픈AI CEO, 일론 머스크 xAI CEO,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창업자 등 AI 거두들도 동의를 표했다. 첨단 기술을 이끄는 주역들마저 제동을 걸 정도로 위험수위가 높아졌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미국의 탐사 저널리스트 애비게일 슈라이어는 저서 '부서지는 아이들'에서 많은 심리치료사와 학자, 전문가가 젊은 세대의 불안과 우울을 유발하는 주원인 중 하나로 기후변화를 꼽는다고 소개했다. 슈라이어 자신은 이 진단에 회의적이지만 실제 아이들이 마주한 현실을 보면 그 불안은 근거가 없지 않다. 지구 온난화의 위험을 알면서도 국가와 기업은 산업 경쟁력 등을 이유로 외면하고 있다. 개인의 힘으로는 이 거대한 위기를 막을 수 없다는 무력감이 어른과 아이들을 짓누른다. 특히 자신의 미래를 지켜낼 수 없다고 느끼는 젊은 세대의 불안은 더 클 수밖에 없다.

AI를 둘러싼 현실도 기후위기와 놀랍도록 닮아 있다. 미중 패권 다툼과 기업 간 생존 경쟁 속에서 위험을 통제할 국제적 합의가 쉽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속도조절론에 대해 "AI와 데이터센터를 겨냥한 역겨운 음모가 있으며, 이를 기뻐할 유일한 나라는 중국"이라고 주장했다. 국가와 자본이 멈출 줄 모르는 치킨게임을 벌이는 동안 개인이 느끼는 무력감과 공포는 기후위기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이 치킨게임을 막을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기후변화와 AI 사이의 '평행이론'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이미 진행된 기후변화는 되돌리는 데 한계가 있지만 AI는 인류가 어떻게 고삐를 쥐느냐에 따라 미래를 긍정적으로 전환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공포에만 사로잡혀 좌절할 필요가 없는 이유다.

무기력하게만 보이는 개인도 출발점이 될 수 있다. AI의 결과물을 무조건 수용하지 않고, 한계와 편향성을 끊임없이 따져 묻는 비판적 태도가 필요하다. 이런 깨어 있는 이용자가 많아지면 기업에는 안전장치를 요구하는 압력이 커지고, 국가도 감시와 규제를 서두를 수밖에 없다. 이미 세계 곳곳에서 AI 빅테크의 정보 독점에 맞서 개발 과정의 투명성을 요구하고 AI를 감시할 법적 장치를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AI가 문서 작성을 돕는 과정에서 인간처럼 보였던 그 오싹한 순간은 역설적으로 이 기술의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우리에게 되묻고 있다. 수동적인 소비자에 머물기를 거부하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검증하는 주체적 이용자가 되는 것, 그것이 개인에서 시작해 산업과 국가의 변화를 촉구하고 AI 시대를 안전하게 만드는 첫걸음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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