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과학

마비 부른 '흉터'가 신경세포로…뒷다리 다시 움직였다[헬스LAB]

연지안 기자
파이낸셜뉴스
의료진이 척추를 진료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의료진이 척추를 진료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파이낸셜뉴스] 척수손상 후 형성되는 흉터를 신경세포로 바꾸어 마비를 회복시키는 신기술이 나왔다.

18일 기초과학연구원(IBS)에 따르면 IBS 기억 및 교세포 연구단 인지 및 교세포과학 그룹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하윤 교수 연구팀과 함께 교세포 흉터를 오히려 신경 재생의 자원으로 삼는 전략을 고안해 선택적 유전자 발현 기술 'TRANsCre-DIONE(트랜스크리-디오니)'를 개발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척추 손상은 한번 발생하면 신경 재생과 기능 회복이 매우 제한되는 대표적 난치 질환이다. 손상 부위에 '반응성 별세포'가 과도하게 증식하며 '교세포 흉터'를 만들기 때문이다. 이는 추가적인 손상 확산을 막는 방어벽인 동시에, 손상된 신경세포가 다시 자라고 신경회로를 복구하는 과정을 방해하는 장벽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TRANsCre-DIONE 기술을 이용해 특정 세포가 신경세포로 분화하도록 유도하는 스위치 역할을 하는 단백질인 'Neurogenin2 (뉴로지닌2, Ng2)'를 척추 손상 부위의 반응성 별세포에만 발현되도록 했다. 이를 통해 반응성 별세포를 운동신경세포 특성을 가진 기능성 신경세포로 전환분화했다. 전환된 세포들은 단순히 신경세포의 형태를 갖추는 데 그치지 않고, 전기 신호를 내보내거나 주변 신경회로와 연결돼 시냅스를 형성하는 등 신경세포 기능을 완벽히 수행했다.

손상 부위 내 '반응성 별세포'만을 표적해 운동신경세포로 직접 전환함으로써 신경회로 복구에 성공한 것이다.

더불어 유전자 마스터 스위치인 Ng2는 마치 '카멜레온'처럼, 생쥐의 대뇌 선조체에 주입했을 때는 해당 부위를 구성하는 세포 중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가바(GABA)성 신경세포로, 척수 부위에 주입하자 운동 능력을 담당하는 운동신경세포로 바뀜을 확인했다. 즉 원하는 별세포를 주변 환경에 따라 꼭 필요한 신경세포로 환골탈태시킬 수 있는 맞춤형 분화 메커니즘을 발견했다.

이러한 특성을 바탕으로 마우스 선조체 손상 모델에 기술을 적용한 결과 62%의 효율로 신경세포가 대체됐다. 특히 필터링이 까다롭고 복잡한 영장류인 게잡이원숭이의 선조체 환경에서도 93.13%라는 높은 표적 정밀도와 세포 전환 가능성을 입증해, 향후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확인했다. 나아가 척수손상(SCI) 생쥐 동물모델에 TRANsCre-DIONE을 적용한 실험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신경 전환 효율(87%)을 기록하며, 손상 부위 주변의 신경회로를 재구성하고, 마비되었던 뒷다리의 운동 기능을 회복시키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이 개발한 TRANsCre-DIONE 시스템은 체내 존재하는 별세포만으로 신경 재생을 유도하며, 정상 세포에는 영향을 주지 않고 손상 부위의 반응성 별세포에서만 유전자가 활성화되도록 설계됐다. 따라서 기존 치료법인 줄기세포 이식이나 외부 세포 투여와 달리 면역반응, 종양(암) 발생 등 치명적 부작용을 원천 차단한다.

교신저자 이창준 연구단장은 "TRANsCre-DIONE 기술은 척수손상뿐 아니라 근위축성 측삭경화증(ALS), 파킨슨병, 뇌졸중 등 다양한 신경계 질환 치료에 널리 쓰일 것"이라며, "별세포가 마법처럼 신경세포로 변신하듯, 하루 빨리 TRANsCre-DIONE 기술이 실용화돼 척추손상 환자들이 일어서는 기적 같은 순간이 찾아오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네이처(Nature) 자매지 '실험분자의학(Experimental & Molecular Medicine)'에 9월 11일 온라인 게재됐다.

[email protected] 연지안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기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