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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의 본초여담] 약재는 두 가지뿐이지만 눈을 덮은 예막을 걷어냈다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주>

약재의 수보다 중요한 것은 병기에 정확히 맞는가이다. 때로는 몇 가지 약재만으로도 약력이 더 집중되기 때문에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챗GPT에 의한 AI생성 이미지
약재의 수보다 중요한 것은 병기에 정확히 맞는가이다. 때로는 몇 가지 약재만으로도 약력이 더 집중되기 때문에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챗GPT에 의한 AI생성 이미지

옛날 어느 고을에 젊은 사내가 하나 있었다. 그는 젊어서부터 여색을 지나치게 가까이하였다. 밤낮으로 정기(精氣)를 소모하는 생활이 이어지면서 어느 날부터 눈앞이 침침해지고 사물이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피곤해서 그러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눈은 맑아지지 않았다. 눈이 뻑뻑하고 아픈 날이 잦아졌고 눈물이 자주 흘렀으며, 검은자위 위로 마치 안개가 낀 듯 희끄무레한 막까지 생기기 시작했다.

젊은이는 동네 약방에서 "눈은 간신(肝腎)의 정혈을 받아 밝아지는 법이네. 자네는 정기를 너무 많이 소모했으니 신수(腎水)가 부족해진 것이 분명하네. 신수를 보하고 눈을 밝히는 약을 먹어보게."라는 말을 들었다. 젊은이는 그 말을 듣고 수(水)의 기운을 보충하고 눈을 밝게 한다는 약을 복용하였다.

그러나 약을 먹으면 먹을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눈병은 나아지지 않았는데 몸의 정력만 도리어 왕성해졌다. 눈병은 마침내 양쪽 눈이 거의 온통 희게 보일 정도였다.

가족들이 그의 눈을 들여다보고는 걱정스러워하면서 "이러다가 정말 앞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 아니냐?"라고 했다. 젊은이는 이제 사람 얼굴조차 또렷하게 분간하기 어려웠다.

결국 그는 이름난 의원을 찾아갔다. 의원은 젊은이를 밝은 곳에 앉히고 두 눈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의원은 "검은자위 위로 흰 예막(瞖膜)이 두텁게 드리워져 있네. 왜 이리 방치를 했는가?"라고 했다. 예막은 검은자위, 특히 각막 부위에 생긴 희거나 뿌연 혼탁을 가리킨다. 현대의 특정 질환 하나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각막혼탁, 각막반흔, 각막염 후 혼탁, 백반성 병변 등 여러 상태가 포함될 수 있다.

의원은 자신하지 못했지만 먼저 눈 주위와 예막에 효과가 있는 혈자리에 침을 놓기 시작했다. 그 혈자리들은 정명(睛明), 찬죽(攢竹), 동자료(瞳子髎), 승읍(承泣), 풍지(風池) 등 눈 주위와 머리 뒤쪽의 몇 군데였다. 며칠 동안 침 치료를 이어가자 변화가 나타났다. 희게만 보이던 예막이 전보다 조금 얇아졌고, 그 아래로 가느다란 붉은 실 같은 혈맥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의원은 젊은이의 눈을 다시 자세히 살펴본 뒤 "이제 치료할 수 있겠네."라고 했다. 젊은이의 예막이 침 치료에 반응하자 회복할 여지가 있다는 판단이었다.

의원은 이제 약을 처방했다. 그런데 처방 구성은 무척 단순했다. 지모(知母)와 황백(黃柏), 단 두 가지 약재였다. 의원은 여기에 당귀를 하나 더했다.

처방전을 받아든 젊은이는 의아하였다. 그동안 먹어 봤던 약재들에 비하면 약재가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젊은이는 "제가 지난 몇 년 동안 눈에 좋다는 보약을 얼마나 많이 먹었는데 낫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의원은 "이 처방은 익본자신환(益本滋腎丸)이네. 익본자신환은 이름 그대로 '근본을 돕고 신음을 자양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네. 이 두 약재를 당귀와 같은 양으로 써서 소금물로 법제하여 볶은 뒤 곱게 가루 내고 물로 환을 만들어서 공복에 염탕(鹽湯, 소금물)과 함께 복용하시게나."라고 했다.

젊은이는 "그런데 약재가 겨우 세 가지뿐입니까?"라고 했다. 의원은 "약재가 많다고 약효가 강한 것은 아니네. 병의 원인을 제대로 짚어야 하네."라고 했다. 그리고 젊은이의 눈을 가리키며 "자네는 정기를 지나치게 소모하여 음(陰)이 허해졌고, 음이 부족해지자 안에서 허화(虛火)가 치솟은 것이네. 그러니 수기(水氣)만 무턱대고 보할 것이 아니라 먼저 위로 치솟은 불을 내려야 하네."라고 했다.

젊은이는 의원의 지시대로 익본자신환에 당귀를 더한 약을 꾸준히 복용하였다. 그랬더니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면서 눈의 흰 막은 점차 옅어졌다. 눈이 뻑뻑하고 아픈 증상도 줄었고 눈물이 흐르는 횟수도 적어졌다. 그렇게 몇 달을 계속 복용한 끝에 눈병은 크게 좋아졌다.

젊은이는 기뻐하며 "그 많은 약을 먹어도 낫지 않던 병이 이렇게 간단한 처방으로 좋아질 줄은 몰랐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의원은 웃으면서 "약은 많고 적음에 달린 것이 아니네. 병에 정확히 맞느냐가 중요하지. 익본자신환은 약재가 적지만 그래서 약력이 오롯하여 효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이네."라고 답했다.

때로는 열 가지 약재보다 병기에 꼭 맞는 두 가지 약재가 더 강한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처방을 논할 때 약재의 숫자보다 약력(藥力)이 얼마나 한곳에 오롯하게 모이는가를 중요하게 보았다. 약재는 적어도 좋다. 무엇보다 병의 뿌리를 정확히 겨냥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경보신편> 一少年過色眼疾, 壯水明目之劑數年多服, 而病益甚, 兩目純白, 要予求治. 恐其已盲, 醫膜難除, 誠針退翳數穴, 則瞖白稍薄, 赤絲微見. 驗其可治, 因進益本滋腎丸, 加當歸, 連服數朔, 快差. 此藥藥材少而藥力專, 而收效, 孫眞人之遺䂓, 亦當深察. (어떤 젊은이가 지나치게 여색을 좋아하여 눈병이 생겼다. 수(水)의 기운을 보충하여 눈을 밝게 하는 약을 수년간 많이 복용하였으나 병이 더욱 심해져서 양쪽 눈이 완전히 흰 예막으로 덥히게 되어 나에게 진료를 청해 왔다. 이미 눈이 멀었거나 예막을 제거하기 어려울까 염려되었지만 정성들여 예막을 거두는 효능을 가진 경혈 여러 곳에 자침했더니 흰 예막이 조금 옅어지고 핏줄이 미약하게 드러났다. 치료 가능성을 확인하고 익본자신환에 당귀를 더하여 주고 몇 개월 동안 계속 복용시켰더니 깨끗이 나았다. 이 약은 약재 수는 적지만 약력이 오롯하여 효과를 냈다. 손진인이 남긴 법도이니 마땅히 깊이 살펴야 한다.

<동의보감> 益本滋腎丸. 治黑睛生瞖膜, 或陰虛, 睛散大. 黃柏ㆍ知母(幷酒洗炒) 各等分. 右爲末, 滴水和丸梧子大, 空心, 鹽湯下五七十丸. (익본자신환. 검은자위에 예막이 생겼거나 음허로 눈동자가 커진 것을 치료한다. 황백과 지모 같은 양을 가루내고 그 위에 물을 떨어뜨리면서 반죽하여 오자대로 환을 만든다. 끓인 소금물로 50~70알씩 빈속에 먹는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email protected]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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