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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두진의 건축시선] 백년의 토론

파이낸셜뉴스
황두진 건축가
황두진 건축가

요즘 신문을 펼치면 도시와 건축 이야기가 부쩍 늘었다. 종묘 앞이 그랬고, 지금은 용산이 뜨겁다. 이런 문제가 전문가들만의 관심사가 아니라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다만 도시의 운명을 바꿀 만한 결정조차 특정 정치일정과 부동산 시장 상황 같은 당면 현안에 맞춰 서둘러 다뤄지는 듯해 아쉽다. 이런 구도에서는 장기적 안목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도시는 선거보다 오래가고, 정책보다 호흡이 길다. 한번 놓인 도로와 공원, 철도와 주거지는 수십년, 때로는 수백년 동안 우리의 삶을 규정한다. 파리의 역사축도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루브르에서 튀일리, 콩코르드, 샹젤리제, 개선문을 지나 라데팡스의 그랑드 아르슈에 이르는 축은 여러 시대를 거치며 덧붙여지고 재해석됐다. 이런 문제일수록 '얼마나 빨리 결정하느냐'보다 '얼마나 오래 생각했느냐'가 더 중요하다.

마침 우리에게는 이런 고민을 담아낼 좋은 장치가 있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다. 2017년 시작해 2년마다 열렸고, 2025년 제5회를 맞아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세계 여러 도시의 경험과 아이디어를 서울에 불러 모아 공유하는 자리다. 여기에 한 가지 제안을 보태고 싶다. 비엔날레의 한 회를 '서울도시건축센테니알레'로 정하는 것이다. 이름 그대로 100년에 한 번 열리는 전시다.

첫 전시에서 던진 질문과 토론, 설계안과 반론을 최대한 온전히 기록해 100년 뒤의 다음 세대에게 넘긴다. 기후와 환경, 에너지, 인구, 이동, 주거 등 당장 답을 내리기 어렵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마주하게 될 장기적인 문제를 다룬다. 시장의 임기나 개발사업의 일정이 아니라, 한 세기 뒤를 기준으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100년 뒤의 사람들은 우리가 남긴 질문을 다시 읽고 무엇이 맞았으며 무엇이 틀렸는지 답하면 된다. 그 과정 자체가 거대한 타임캡슐이다.

100년이라는 시간에는 묘한 힘이 있다. 지금 논의를 시작한 사람 가운데 다음 전시를 직접 볼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 생각이 실현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욕망도 한결 옅어진다. 권력과 명성, 이해관계도 대부분 휘발된다. 발표자는 자기 주장이 당장 채택될지보다 미래의 누군가에게 어떤 질문을 남길지를 생각하게 된다. 100년이라는 시간은 사람을 한없이 겸손하게, 동시에 진지하게 만들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남겨야 하는가. 당장의 편리를 위해 무엇을 희생하고 있는가. 다음 세대가 우리를 돌아볼 때 잘했다고 말하게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비엔날레가 격년의 가쁜 리듬으로 도시를 바라본다면, 그 안에 단 하나쯤 100년이라는 긴 시간의 시계를 놓아도 좋지 않을까. 도시가 성숙한다는 것은 빨리 결정하는 것보다 오래 생각할 줄 아는 능력에 달렸다. '백년의 토론'은 오랜 역사를 가진 한국이 인류에게 던질 수 있는 매력적인 화두다. 그때의 사람들은 지금의 우리에게 과연 어떤 답장을 보내올 것인가.

■약력 △서울대 및 예일대에서 건축 전공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 스웨덴 스톡홀름 동아시아박물관 한국실, 무카스사옥, 한강 교량카페, 시마크 호텔 호안재 등 설계 △서울시 건축상, 한국건축역사학회 작품상, 김종성 건축상 등 수상

황두진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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