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신입 채용 반토막… 'AI의 축복'인가, '리더십의 위기'인가[김문경의 리더십테크](27)
[파이낸셜뉴스] 최근 채용 시장의 기류가 심상치 않다. 대규모 공채로 신입사원을 뽑아 조직의 미래를 든든히 준비하던 풍경은 불과 몇 년 새 옛말이 되었다. 실제 지표도 이를 증명한다. 한 채용 플랫폼의 조사에 따르면 최근 대기업 정규직 신입 채용 공고는 1년 전보다 40% 이상 급감했다. 하반기 신규 채용을 계획한 기업 중 10명 이하의 소규모 인원만 뽑겠다고 답한 비중도 80%에 육박한다. 신입이 사라진 빈자리는 당장 실무에 투입할 수 있는 경력직과 인공지능(AI)이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지금 많은 기업이 회의실에서 조용한 비용 계산에 빠져 있다. "AI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에 굳이 시간과 막대한 비용을 들여 신입을 뽑을 필요가 있을까?" 눈앞의 생산성만 따진다면 신입 채용을 줄이는 것이 지극히 합리적으로 보인다. 당장 실적을 내야 하는 경영진에게 지치지 않고 엄청난 속도로 실무를 쳐내는 AI는 그야말로 '축복'처럼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이 조용한 계산에는 치명적인 맹점이 숨어 있다. 오늘 뽑지 않은 그 신입이 결국 몇 년 뒤 우리 조직을 이끌 미래의 리더였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이미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세계 경영대학원 입학 위원회(GMAC)의 2026년 조사에 따르면, 기업 세 곳 중 한 곳이 코딩이나 데이터 입력, 고객서비스 등 기존 신입 직무를 AI로 대체했다. 국내 사정도 다르지 않다. 한국은행은 최근 4년간 사라진 청년 일자리 28만 5천 개의 대부분이 AI 노출도가 높은 업종에 집중되었다고 분석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위기의 원인을 단순히 뛰어난 기술 발전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똑같이 AI를 도입했어도 일자리의 양상은 크게 달랐다. AI에게 사람의 일을 온전히 넘겨버린 자동화 중심 업종은 청년 고용이 급감했지만, 반대로 사람이 AI를 도구로 활용한 '증강' 중심 업종에서는 고용 감소가 두드러지지 않았다. 즉, 청년의 일자리를 없앤 것은 무서운 기술 자체가 아니라, AI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결정한 리더의 선택이었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가슴 아픈 청년 취업 문제처럼 보이지만, 리더십 관점에서는 '조직의 미래 리더를 어떻게 육성할 것인가'라는 본질적이고 치명적인 위기다. 훌륭한 리더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주어진 실무를 완벽히 해내고, 타인을 관리해 보며, 마침내 조직 전체를 책임지는 단계로 올라서는 길고 고단한 훈련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누구도 입사 첫날부터 완벽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훌륭한 팀장이 될 수는 없다. 신입 시절 밤새워 보고서를 쓰며 비즈니스의 맥락을 읽고, 선배의 뼈아픈 피드백을 통해 퀄리티의 기준을 세우며, 크고 작은 실패 속에서 실무 감각을 배워나간다. 이 사소해 보이는 초기 업무들이야말로 직무 전문성과 조직의 소통 방식을 체화하는 필수 과정이다. AI가 이 기초 훈련의 시간마저 무심코 대신해 버린다면, 조직은 결국 튼튼한 허리 역할을 할 중간 관리자와 임원 후보군이 단절되는 뼈아픈 결과를 맞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리더가 되겠다는 후보군 자체도 점점 말라가고 있다. 딜로이트의 2026년 조사에서 리더 직책을 커리어 목표로 꼽은 Z세대와 밀레니얼은 단 6%에 불과했다. 과도한 책임과 번아웃에 대한 짙은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중 76%는 언젠가 고위 리더 역할을 맡고 싶다고 답했다. 리더가 되기 싫은 것이 아니라, 현재 방식의 무거운 리더 역할이 과연 내 삶을 걸고 감당할 가치가 있는지 묻고 있는 것이다. 아래에서는 신입 유입이 줄고, 위에서는 기존 인재들의 리더 성장 의지마저 꺾이는 이중고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예전처럼 무작정 신입 채용 규모를 늘려야 할까? 그렇지 않다. AI가 단순 반복 업무를 훌륭하게 처리하는 거대한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핵심은 신입의 자리를 맹목적으로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역할을 '어떻게 재설계할 것인가'에 있다. 과거처럼 복사하고 데이터를 단순 입력만 하는 신입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글로벌 기업들의 행보가 훌륭한 해답을 제시한다. IBM은 올해 미국 내 신입 채용을 세 배나 늘렸지만, 신입의 직무 내용은 완전히 뒤바꾸었다. 단순 행정 업무 비중을 과감히 줄이는 대신, 고객과 직접 소통하고 AI의 산출물을 깊이 있게 검토하며 스스로 판단을 내리는 역할을 맡겼다. 맷 가먼(Matt Garman) 아마존웹서비스(AWS) 최고경영자 역시 "주니어 직원을 AI로 대체하려는 발상이야말로 가장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강하게 꼬집으며, 오히려 젊은 직원들이 새로운 AI 도구를 더 빠르게 습득해 조직에 혁신적인 시각을 불어넣는다고 강조했다.
이 앞서가는 기업들은 AI에게 단순 '실행'을 맡기되, 신입에게는 그 결과를 '검증'하고 질문하는 훈련을 일찍부터 제공하고 있다. AI가 뱉어낸 결과물의 맥락을 파악하고, 숨은 오류를 찾아내며, 최종적인 비즈니스 결정을 내리는 경험을 통해 과거보다 훨씬 더 밀도 있게 리더십의 기본기를 다지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리더가 던져야 할 질문은 완전히 방향을 틀어야 한다. "이 일을 AI로 대체해 인건비를 줄일 수 있는가?"가 아니라, "AI가 이 일을 훌륭히 수행할 때, 우리 신입은 무엇을 경험하고 어떻게 미래의 리더로 성장하게 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전자는 단기적인 비용 절감의 질문이고, 후자는 장기적인 미래 인재 육성의 질문이다.
신입을 채용하고 교육하는 일은 언제나 가장 늦게 성과가 돌아오는 무거운 투자다. 그렇기에 경영 상황이 팍팍할 때 가장 먼저 줄이고 싶은 달콤한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이 투자를 멈춘 대가는 당장 내일 청구되지 않는다. 몇 년이 지난 뒤 숙련자 기근과 리더 부재라는 엄청난 액수의 청구서로 둔갑해 반드시 돌아온다.
리더의 근시안적인 선택은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 조직을 이끌 미래 리더의 싹마저 완전히 잘라버릴 수 있다. 눈앞의 AI 기술이 주는 축복에 취해 신입 채용을 줄이기 전에 스스로에게 엄중히 자문해 보아야 한다. 사다리의 첫 칸을 치워버린 조직에서, 과연 미래를 이끌 리더는 어디서 탄생할 것인가?
/김문경(국민대학교 겸임교수·대한리더십학회 부회장)
[email protected]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