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관 잘 관리해도 치매 걸리는 당뇨 환자, 왜? [안철우 교수의 호르몬 백과사전]
[파이낸셜뉴스] 호르몬은 생명의 진화와 함께 종에서 종으로 전달되고 발전했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존재할 화학물질이 있다면 바로 '호르몬'이다. 이런 의미에서 호르몬은 불멸이다. 안철우 교수가 칼럼을 통해 몸속을 지배하는 화학물질인 호르몬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고 삶을 좀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낼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당뇨병이 전 세계의 유행병이 된 현재, 당뇨병만큼이나 무서운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병이 있다. 바로 치매다. 세계보건기구의 자료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치매 인구는 5,500만 명에 이르고 매년 1,000만 명씩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2021년 OECD국가 통계에서 우리나라의 치매 발생률은 인구 1,000명당 11명으로 세계 30위다. 하지만 2050년에는 41명으로 껑충 뛰어서 세계 5위가 될 전망이다. 늘어나는 노령인구 때문이라는 사실을 감안해도 엄청나게 빠른 증가다.
그런데 놀라운 연구결과가 있다.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 유럽 5개국이 참가한 공동연구에서 당뇨가 없는 사람이 70세에 치매가 될 확률은 1,000명당 8.9명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당뇨를 5년 정도 앓은 인구에서 이 확률은 1,000명당 10명으로 늘어난다. 6~10년 정도 앓은 그룹에서는 13명으로 늘어나고 10년 이상 앓은 그룹에서는 18.3명으로 늘어난다. 만약 50세에 당뇨가 발병한 사람이 1,000명이라면 그중 18명이 60세 이후로 치매에 걸린다는 뜻이다.
당뇨가 인지능력과 관련이 있고 치매 발병 시기를 앞당긴다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제기되어왔다. 당뇨는 고혈당으로 피가 끈적끈적해져서 혈관이 여기저기 막히는 병이다. 혈관이 좁아지고 혈압이 높아지니 당연히 뇌로 피를 보내는 것이 어려워지게 된다. 당뇨의 주요 합병증이 심혈관질환과 뇌졸중이므로 뇌 기능에 영향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
또 한 가지 생각할 수 있는 원인은 당뇨 환자에게 흔히 발생하는 저혈당 증세다. 당뇨 환자들은 지속적인 고혈당이 문제이기 때문에 늘 탄수화물과 당분을 배제하는 식단을 실천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식단을 너무 가혹하게 유지하거나, 혹은 인슐린 주입량이 탄수화물 섭취량보다 많으면 저혈당이 발생할 수 있다. 저혈당은 오직 포도당만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뇌에게 치명적이다. 뇌의 해마에 손상을 입혀 급성 인지장애, 기억력 감퇴, 치매, 어지러움, 혼수 등을 일으킬 수 있다. 저혈당이 반복되면 혈당조절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여 고혈당과 저혈당을 오락가락하다가 급성관상동맥증후군으로 사망할 위험이 매우 높아진다.
이 밖에도 당뇨의 고혈당과 비만이 유발하는 염증과 산화스트레스도 치매 발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당뇨 환자 그룹 내의 높은 치매 발병률을 다 설명할 수는 없다. 치매는 뇌졸중 위험을 잘 관리하는 당뇨 환자 그룹 내에서도 여전히 발병률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저혈당은 주로 1형 당뇨 환자와 2형 당뇨 환자 중 인슐린을 주입하는 환자군에서 25% 정도의 비율로 발생한다. 이것으로는 모든 당뇨 환자에서 치매 발병률이 높은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혈관성 치매보다도 알츠하이머(뇌신경세포의 소실로 인한 치매)의 발병률이 훨씬 더 높다는 것도 의문을 남긴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다. 어쩌면 당뇨가 직접 치매를 일으키는 것은 아닐까? 그 연결고리는 아밀로이드반과 타우 단백질에서 찾을 수 있다. 알츠하이머는 초기에 뇌에 아밀로이드라는 작은 단백질이 과도하게 만들어진 후 타우 단백질이 과인산화로 뭉치는 과정을 거치며 뇌세포가 사멸한다. 인슐린은 아밀로이드반의 생성과 타우 단백질의 과인산화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인슐린이 뇌세포에 직접 작용해서 알츠하이머를 일으키는 것일 수 있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email protected]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