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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우 칼럼] 격변의 세계, 대한민국의 길

파이낸셜뉴스

한미동맹은 안보·번영 이끈 핵심축
외교·안보의 원칙을 분명히 세우고
경제안보를 국가전략 중심에 놓아
외부 충격을 견딜 내부 체력 축적
여야 국론분열 유발해서는 안돼
국가 생존력 강화 한목소리 내야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초대 금융위원장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초대 금융위원장

세계가 다시 격변의 문턱에 섰다. 냉전 이후 국제질서를 떠받쳐온 미국의 동맹 리더십, 미중 양극체제, 선진국의 재정·금융 안정성이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 중동 불안까지 더해져 안보와 경제의 경계도 사라졌다. 트럼프 2기 후반은 레임덕이 아니라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미국 중간선거의 압박이 예측하기 어려운 대외정책으로 번질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동북아 정세 변화도 심상치 않다. 지난달 한미 연합훈련 '을지 자유의 방패'가 단축된 것은 미국의 동맹 운용과 역내 전략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 신호다. 한미일 훈련 '프리덤 에지'는 예정대로 실행, 3국 안보협력을 재확인했다. 북한은 핵·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하고 북러 군사협력은 한반도 위협을 유럽과 인도태평양으로 확장하고 있다. 오는 24일 미중 정상회담에서는 경쟁 속에서도 인공지능(AI) 안전과 같은 협력의제가 다뤄질 전망이다. 전면적 대결과 선택적 거래가 병존하는 시대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 길을 택해야 하나.

첫째, 외교·안보의 기준을 분명히 세워야 한다. 한미동맹은 대한민국의 안보와 번영을 지탱해 온 핵심축이며, 시대 변화에 맞게 발전시켜야 할 필수자산이다. 미국 내 동맹의 역할과 비용 논쟁이 거세질수록 확장억제의 실효성을 높이고, 재래식 방위와 사이버·우주 대응능력을 강화해야 한다. 동맹은 의존이 아니라 공동의 의지와 역량으로 유지된다. 중국과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국가 정체성을 지키면서 협력의 공간을 넓혀야 한다. 일본과도 안보·경제·첨단기술 협력을 본격 확대해야 할 시점이다. 호주·인도·유럽 등 중견국과도의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강대국 사이에서 모호성을 전략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원칙이 분명할 때 실용외교의 폭도 넓어진다.

둘째, 경제안보를 국가전략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 AI와 반도체, 바이오, 조선·방산, 에너지는 국가의 생존과 협상력을 좌우하는 전략자산이다. 핵심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기술·인재 유출을 막는 한편 미국·일본·유럽과 공동 연구·투자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기업의 해외투자가 일방적 부담으로 끝나지 않도록 시장접근, 기술협력, 국내 고용과 연계하는 정부의 협상역량도 중요하다. 경제외교의 지평도 넓혀야 한다.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서두르고 디지털 통상과 'AI 속도조절론'이나 AI규범 논의에도 적극 참여해야 한다. 한국은 글로벌 공급망의 수동적 참여를 넘어 핵심규칙과 기술표준을 설계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셋째, 외부 충격에 견딜 내부 체력을 키워야 한다. 저출생·고령화, 생산성 둔화,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과도한 규제는 잠재성장률을 끌어내리고 있다. 경제 기반이 약해지면 외교·안보 전략도 지속될 수 없다. 노동·교육·규제 개혁을 미뤄서는 안 되는 이유다. AI혁명의 성과도 반도체와 일부 대기업에 머물지 않고 제조업과 서비스업, 중소기업과 공공부문으로 확산해 국가 전체의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져야 한다. 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난 세수를 일회성 지출보다 구조개혁과 인적자본 투자, 취약계층 지원에 집중해야 한다. 'K자형 양극화'를 방치하면 국민적 삶의 질과 혁신의 정치적 기반도 약해진다. 재정은 오늘의 소비가 아니라 내일의 성장능력을 확충하는 자본이어야 한다.

넷째, 국내 정치가 국가전략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 격변기에 가장 위험한 것은 국론의 분열과 개혁정책의 단절이다. 외교·안보와 경제의 핵심 기조는 정권을 넘어 지속되어야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여야는 치열히 경쟁하되 국가 생존력 강화에는 한목소리를 내는 절제를 보여야 한다. 국력은 경제 규모와 군사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사회적 신뢰, 제도의 예측 가능성, 위기 상황에서 나보다 나라를 앞세우는 시민정신이 함께해야 진정한 강국으로 나아갈 수 있다.

격변의 시대는 약한 나라에 운명을 강요하지만, 준비된 나라에는 선택의 공간을 넓혀준다. 한국이 지켜야 할 것은 분명하다. 외교의 원칙, 안보의 억지력, 경제의 혁신과 개방, 정치의 책임이다. 세계가 흔들릴수록 대한민국의 좌표는 더욱 선명해야 한다. 국익을 중심에 놓고 스스로 선택하며 미래를 설계하는 나라, 그것이 격변의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이다.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초대 금융위원장

■약력 △금융위원회 위원장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외교통상부 국제금융대사 △포스코 이사회 의장 △세계은행(WB) 수석이코노미스트 △미국 미시간주립대학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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