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벽이 늙어 헐거워지면?"...배꼽 옆이 볼록, 탈장으로 이어져 [헬스톡]
[파이낸셜뉴스]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기침을 반복하다 사타구니나 배꼽 주변이 불룩하게 튀어나왔다면 '탈장'을 의심해봐야 한다.
우리 몸의 장기는 주변 근육과 조직의 지지를 받으며 제자리를 유지한다. 하지만 장기를 둘러싼 근육이나 조직이 약해지거나 벌어지면 그 틈을 통해 장이나 지방 조직 등이 제자리를 벗어나 돌출될 수 있는데, 이를 '탈장'이라고 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민관심질병통계에 따르면 탈장 환자는 2020년 8만8790명에서 2024년 10만4797명으로 5년 새 약 18% 늘었다. 이처럼 꾸준히 환자가 증가하고 있는 만큼 탈장의 주요 증상과 위험 신호를 알아두는 것이 중요하다.
봉준우 고려대 구로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는 "탈장은 초기에는 특정 부위가 불룩하게 튀어나오거나 묵직한 불편감이 느껴지는 정도에 그쳐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쉽다"며 "그러나 상태가 악화되면 장폐색이나 장 괴사 등 심각한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어 의심 증상을 가볍게 넘기지 말고 적절한 시기에 치료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탈장은 신체 여러 부위에서 발생할 수 있지만 대부분 배를 둘러싼 근육과 조직으로 이뤄진 복벽에서 나타난다. 복벽에 약해진 부위나 틈이 생기면 복강을 감싸는 얇은 막인 복막이 주머니 모양으로 돌출되고, 그 안으로 장이나 지방 조직 등이 함께 빠져나올 수 있다.
탈장의 원인은 다양하다. 태어날 때부터 복벽 일부가 제대로 닫히지 않아 틈이 남아 있을 수 있고, 나이가 들면서 근육과 조직이 약해지거나 수술한 부위의 조직이 벌어지기도 한다. 여기에 △만성기침이나 변비로 반복해서 힘을 주는 습관 △무거운 물건을 드는 행동 △임신 △복수 등으로 복압(배 안의 압력)이 지속적으로 높아지면 탈장 발생 위험이 커질 수 있다.
탈장은 발생 위치에 따라 여러 유형으로 나뉜다. 가장 흔한 유형은 사타구니 부위에 발생하는 '서혜부 탈장'이다. 이 외에도 허벅지와 아랫배가 만나는 부위에 생기는 '대퇴 탈장', 수술 흉터 부위가 약해져 발생하는 '반흔 탈장', 배꼽 주변의 약한 부위로 장이나 조직이 빠져나오는 '제대 탈장' 등이 있다. 특히 대퇴 탈장은 빠져나온 장이 좁은 틈에 끼어 제자리로 돌아가지 않을 위험이 서혜부 탈장보다 높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장으로 가는 혈액 공급이 차단돼 장 조직이 손상되거나 괴사할 수 있어 신속한 치료가 필요하다.
탈장의 대표적인 증상은 피부 아래로 불룩하게 튀어나온 덩어리가 만져지는 것이다. 초기에는 돌출 부위가 작고 통증이 거의 없으며, 서 있거나 기침을 하는 등 배에 힘이 들어갈 때 더 뚜렷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누우면 돌출됐던 부위가 다시 들어가 눈에 띄지 않기도 한다. 그러나 탈장이 진행되면 돌출된 부위가 쉽게 들어가지 않을 수 있다. 특히 장이 탈장 부위에 끼어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하면 심한 통증과 함께 구역·구토, 발열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증상이 반복되거나 돌출 부위가 점차 커진다면 방치하지 말고 의료진을 찾아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 한다. 탈장은 주로 돌출 부위를 직접 살펴보거나 만져보는 신체검사를 통해 진단하며, 기침하거나 배에 힘을 줄 때 돌출 부위가 뚜렷해지는지도 확인한다. 신체검사만으로 진단이 어렵거나 다른 질환과 구별이 필요한 경우에는 초음파나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를 시행한다.
탈장 진단 후에는 발생 위치와 크기, 복벽 상태, 환자의 전반적인 건강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치료 방법을 결정한다. 탈장의 근본적인 치료는 수술로, 빠져나온 장이나 조직을 원래 위치로 되돌리고 약해진 복벽을 보강한다. 수술 방법에는 개복수술과 복강경수술, 로봇수술 등이 있다.
복강경수술과 로봇수술은 모두 작은 절개를 통해 카메라와 수술 기구를 삽입하는 방식으로, 수술 후 통증 부담을 줄이고 빠른 회복을 기대할 수 있다. 특히 로봇수술은 고해상도 3차원 카메라를 통해 수술 부위를 입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고, 관절형 수술 기구를 정교하게 조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최근 탈장 수술에서도 활용이 늘어나는 추세다. 대한외과학회지에 발표된 국내 연구에 따르면, 로봇을 이용한 서혜부 탈장 수술은 2019년 19건에서 2022년 226건으로 증가했다.
봉 교수는 "탈장은 이전 수술 이력과 현재 복벽 상태 등을 면밀히 파악해 치료 계획을 세워야 한다"며 "환자 상태에 맞는 수술법을 선택하는 것은 물론, 수술 후 통증 조절과 조기 보행, 일상 복귀부터 재발 예방을 위한 생활관리까지 체계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의료기관에서 치료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탈장은 수술 후 재발도 주의해야 한다. 특히 반흔 탈장은 수술 후에도 재발 위험이 높은 편으로, 유럽탈장학회(EHS)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반흔 탈장 수술 후 재발률은 23~50%로 보고된다. 재발한 탈장은 이전 수술로 복벽의 해부학적 구조가 달라져 있거나 유착이 생겨 치료가 더욱 까다로울 수 있다.
이처럼 이전 수술로 복벽 구조가 복잡해진 경우에는 로봇수술이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확대된 시야를 통해 정상 조직과 유착된 부위를 세밀하게 구분하고, 좁은 공간에서도 정교한 기구 조작이 가능해 주변 조직의 손상을 줄이면서 필요한 부위를 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복벽 결손 부위를 봉합하고 인공막을 적절한 위치에 배치하는 등 약해진 복벽을 안정적으로 재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봉 교수는 "복잡한 탈장 수술에서는 주변 조직의 손상을 최소화하면서 약해진 복벽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재건하느냐가 중요하다"며 "정교한 박리와 복벽 재건은 수술 과정에서 불필요한 조직 손상을 줄이고 수술 후 통증과 회복 부담을 낮춰 환자가 보다 빠르게 일상생활로 복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탈장 예방과 재발 위험을 낮추려면 복부에 과도한 압력이 반복적으로 가해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평소 적정 체중을 유지하고, 변비로 배변 시 힘을 주거나 만성기침이 지속되는 경우에는 생활습관 개선과 적절한 치료를 통해 복압이 반복적으로 높아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무거운 물건을 들 때는 허리와 복부에만 힘을 주기보다 무릎을 굽혀 다리의 힘을 함께 사용하는 것이 좋다.
봉 교수는 "탈장은 단순히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힘을 많이 써서 생기는 질환이 아니라, 복벽이 약해진 상태에서 복압을 높이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다"며 "평소 복부에 과도한 부담을 주는 요인을 줄이고, 수술 후에도 회복 상태에 맞춰 일상생활로 복귀하는 등 꾸준히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mail protected]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