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세포, 전이된 장기에 맞춰 '변신'…간 전이 대장암 약점 찾았다 [헬스LAB]
[파이낸셜뉴스] 암세포는 다른 장기로 옮겨가면 그곳의 환경에 맞춰 살아남는 방식을 바꾸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연구진이 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되는 환경을 재현해 이 같은 초기 적응 과정을 규명하고, 간으로 전이된 대장암 세포가 특정 단백질을 차단하는 약물에 취약하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특히 간으로 전이된 대장암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는 단백질도 찾아내면서 맞춤형 암 전이 억제제 개발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22일 울산과학기술원(UNIST)에 따르면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조승우·박태은 교수팀은 장기별 주변 조직을 재현한 배양 시스템을 개발해 대장암 세포의 전이 초기 적응 과정과 간 전이 대장암의 취약점을 규명했다.
연구팀은 암세포가 실제 장기에 전이됐을 때와 유사한 환경을 실험실에 구현했다. 장기에서 세포를 제거하고 세포외기질만 남겨 만든 젤에 환자 유래 대장암세포를 넣는 방식이다.
세포외기질은 세포를 둘러싸 지탱하는 역할뿐 아니라 세포 표면의 수용체와 상호작용해 성장과 생존에도 영향을 미친다. 장기마다 세포외기질의 구성도 다르다. 연구팀은 사람과 조직 성분이 유사하면서 충분한 양을 확보할 수 있는 돼지의 대장·간·폐·뇌를 이용해 총 4종의 배양재료를 만들었다.
실험 결과 같은 대장암 세포라도 어떤 장기의 배양재료에서 자라느냐에 따라 종양 덩어리가 형성되는 정도와 유전자 작동을 조절하는 '후성유전적 변화'가 다르게 나타났다. 암세포가 새로운 장기에 도착하면 주변 환경에 맞춰 특정 유전자의 작동 방식을 바꾸며 생존에 적응한다는 의미다.
특히 간 조직을 재현한 환경에서는 유전자 작동을 조절하는 단백질 'HNF4A'의 생성이 증가했다. HNF4A를 억제하자 작은 종양 덩어리가 형성되는 비율도 크게 줄었다.
간 환경에 적응한 대장암 세포의 또 다른 약점도 발견됐다. 세포의 생존 신호를 받아들이는 '수신기' 역할을 하는 단백질 'c-MET'을 차단하는 약물을 투여하자 암세포 생존율이 크게 떨어졌다. 반면 일반적인 배양 환경에서는 같은 약물에 대한 반응이 미미했다.
이는 암세포 자체만 볼 때는 잘 드러나지 않던 약물 취약점이 전이된 장기의 환경을 재현했을 때 나타날 수 있다는 의미다. 연구팀은 c-MET이 간으로 전이된 대장암을 공략할 수 있는 치료 표적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연구팀은 "암세포가 다른 장기에 도착한 직후 적응하는 과정은 전이 성공을 가르는 중요한 관문이지만, 환자에게서는 이미 종양이 형성된 뒤 발견되는 경우가 많아 연구하기 어려웠다"며 "이번 연구는 장기별 주변 조직을 재현해, 암세포가 자리 잡은 곳에 따라 유전자 작동과 생존 방식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양한 암종으로 확대해 환자의 암이 특정 장기로 전이됐을 때의 취약점을 파고드는 맞춤형 치료 개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에는 UNIST 윤희정·김다영 연구원이 제1저자로 참여했다. 연구 결과는 생체재료 분야 국제학술지 '바이오액티브 머터리얼즈(Bioactive Materials)'에 지난 8월 26일 온라인 게재됐다.
[email protected] 연지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