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첨단 산업에 올인한 정책...소비·복지 소홀히 해 중국의 집권 기반 흔든다″ [이석우의 차이나24]

이석우 기자
파이낸셜뉴스

경제 성장과 공산당 권력 독점을 교환해 온 50년의 암묵적 거래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
WP... "부채에 의존한 경제, 막다른 길 직면"...

중국 동부 장쑤성 양저우의 양쯔강 조선소에서 지난 7월 15일 건조 중인 선박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AFP 연합뉴스
중국 동부 장쑤성 양저우의 양쯔강 조선소에서 지난 7월 15일 건조 중인 선박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AFP 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첨단 산업 발전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투자를 집중하고 있는 시진핑 중국 주석의 경제 정책이 오히려 중국 공산당의 집권 기반을 위험에 빠트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미국과의 패권 경쟁을 염두에 두고, 첨단 산업에 올인 하느라 국내 수요 부양이 소홀히 되면서 경제 활력 위축과 국내 불만 요인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21일(현지시각) 시진핑의 경제 운영 방식이 중국 국민과 중국의 교역 상대국들이 비용을 감수할 것을 전제하는 고위험 도박이라며 이 같이 주장했다.

WP는 부동산 침체와 함께 미래 기술 및 관련 생산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중국 정부의 정책이 소비 부진의 주요 이유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중국의 공장과 기술 연구소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지만, 반면 많은 사람들은 플랫폼 노동 등 미래가 막힌 일자리에 갇혀 국내 경제의 활력이 위축돼 있다는 것이다.

첨단 기술 분야에서 미국 수준 따라 잡기 위해 집중 투자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5월20일(현지 시간)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리는 정상회담을 앞두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 AP 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5월20일(현지 시간)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리는 정상회담을 앞두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 AP 뉴시스

WP는 시 주석은 세계 패권에 필수적인 반도체와 인공지능 같은 첨단 기술 분야에서 미국과 맞먹는 수준을 갖추는 데 집중 투자하고 있다면서 이점이 중국인들의 소비가 늘어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되고 있다고 짚었다. 첨단 기술 발전이 국내 소비 확대보다 우선 순위를 점하는 상황에서 소비 진작이 소홀히 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신취업형태 연구센터에 따르면 고용 증가세 부진으로 중국인 2억8000만명 이상이 플랫폼 노동을 비롯한 단기 일자리로 내몰렸다. 이는 2019년보다 75% 증가한 것이다.

거기에 성장률 둔화는 이 같은 상황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올 경제 성장률은 5%에 미달할 전망으로 1991년 이후 가장 부진하다. 게다가 이 같은 공식 통계조차 의심하면서 중국 경제가 사실상 성장하지 않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중국 국내 소비 침체의 가장 큰 이유는 5년 전 부동산 거품이 붕괴하면서 중국 가계 자산 10조 달러가 사라진 사건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미래 기술 부양을 우선 순위로 두고 관련 분야에 보조금을 쏟아붓고 있는 중국 당국의 정책은 소비 부진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전국적인 노후 보장 제도가 없어 평균적으로 가계 소득의 약 절반을 저축을 하고 있는 상황도 소비 부진을 가중시키고 있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가계 소비가 중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불과 40%로, 세계 평균인 64%를 크게 밑돈다. 낮은 금리로 저축을 해도 일반인들의 소득이 적은 것도 상황을 악화시킨다. 당국이 기업들이 저비용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금리를 낮게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첨단 산업 투자 집중한 2021년부터 ... 국유기업 자금 조달 연간 9%씩 증가

베이징 AGIbot 팀(왼쪽)과 상하이 서커스 학교 & AGIbot 합동팀의 로봇들이 지난 8월 25일 중국 수도 베이징에서 열린 제2회 세계 휴머노이드 로봇 경기대회 헤비급 킥복싱 경기에서 경쟁하고 있다. 신화통신 연합뉴스
베이징 AGIbot 팀(왼쪽)과 상하이 서커스 학교 & AGIbot 합동팀의 로봇들이 지난 8월 25일 중국 수도 베이징에서 열린 제2회 세계 휴머노이드 로봇 경기대회 헤비급 킥복싱 경기에서 경쟁하고 있다. 신화통신 연합뉴스

중국 당국은 핵심 산업에 지원을 몰아주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중국은 도로와 교량, 공항, 고속철도망을 전국에 건설하면서 인프라에 막대한 투자를 했다. 이후 투자는 부동산 부문으로 방향을 틀었고, 거대한 거품과 붕괴를 초래했다.

2021년부터 중국 정부는 첨단 제조업 투자에 집중했다. 미 맥킨지 글로벌연구소가 지난 6월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중국 국유기업들은 신규 생산능력에 대한 자금 조달을 연간 9%씩 늘린 반면 민간기업은 1% 늘리는 데 그쳤다.

중국은 이제 매년 미국과 유럽을 합친 것보다 3배나 많은 신규 생산능력을 추가하고 있으며, 그 대부분은 자본 통제로 인해 국내에 묶여 있는 저축으로 자금을 조달한다.

이러한 투자는 중국을 점점 더 많은 산업에서 세계적 우위에 올려놓았다. 또 미국이 지배해 온 기술 분야에서 독립을 이루려는 목표도 더 가까워지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투자의 상당 부분이 낭비됐다고 WP는 지적했다. 컨설팅업체 맥킨지에 따르면 중국에서 추가 생산량 1달러를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자본은 미국이나 유럽보다 70% 더 든다는 것이다. 지방정부와 국유기업들은 자금 조달을 위해 은행에서 돈을 빌리거나 채권을 발행했고, 이는 중국이 경제 계획을 감당할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부채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국제금융협회에 따르면 현재 중국의 총부채는 중국 경제 규모의 300%를 넘어선다.

2002년부터 베이징에 거주해 온 미국 경제학자 마이클 페티스는 "중국의 성장은 부채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역사상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부채 부담을 안게 됐다"고 말했다.

과잉 생산 해외 수출 확대.... 일자리 확대가 딜레마

중국 산둥성 자오좡의 한 슈퍼마켓에서 지난 8월 9일 소비자들이 넘쳐나는 상품들의 가격을 비교하면서 고르고 있다. AFP 연합뉴스
중국 산둥성 자오좡의 한 슈퍼마켓에서 지난 8월 9일 소비자들이 넘쳐나는 상품들의 가격을 비교하면서 고르고 있다. AFP 연합뉴스

새로 생긴 공장들은 중국이 국내에서 판매할 수 있는 양을 훨씬 넘어서는 자동차, 화학제품, 태양광 패널, 철강, 시멘트를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중국 국내 기업들 사이의 '파괴적인 경쟁' 속에서 전기차와 같은 일부 부문의 가격은 너무 낮아져 기업들이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원가와 비슷하거나 원가에 가까운 가격으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고 WP는 지적했다. 또, 적자를 내고 있는 일부 기업은 정부 지원으로 연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유럽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판매 경쟁에 지친 중국 생산업체들은 점점 더 "인위적으로 낮은 가격"으로 해외에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그러나 공장을 가동하고 노동자를 고용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해외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는 중국을 상대로 교역 상대국들의 반발도 커지고 있다.

중국 국내 경제는 침체돼 있으며 임금 상승세도 크게 둔화됐다고 WP는 전했다. 7월 소매판매는 1년 전과 거의 변함이 없었다. 올해 초 이케아는 중국 내 7개 매장을 폐점했으며, 상하이 매장 한 곳도 포함됐다.

경제학자들은 수출과 부채에 중독된 중국이 경제적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다고 지적했다고 WP는 지적했다.

인공지능과 기타 첨단 기술의 '새로운 생산력'이 더 높은 경제성장을 이끌 수는 있지만,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가능성은 낮다는 점이 중국의 딜레마이다. 지난달 중국 청년실업률은 사상 최대 규모의 졸업생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하면서 18.9%로 상승했다.

WP는 지난 50년 놀라운 경제 발전 기간 동안 중국의 안정은 암묵적인 정치적 거래에 기반했는데, 이 같이 첨단 기술 우선 정책이 지난 50년 성장과 공산당 집권을 교환하는 거래를 위험에 빠트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메이퉌의 배달원들이 베이징에서 음식 배달에 나서고 있다. 고용 증가세 부진으로 중국인 2억8000만명 이상이 플랫폼 노동을 비롯한 단기 일자리로 내몰렸다고 WP가 전했다. 연합뉴스
메이퉌의 배달원들이 베이징에서 음식 배달에 나서고 있다. 고용 증가세 부진으로 중국인 2억8000만명 이상이 플랫폼 노동을 비롯한 단기 일자리로 내몰렸다고 WP가 전했다. 연합뉴스

[email protected] 이석우 국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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