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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중앙아시아에 '新실크로드' 연다

파이낸셜뉴스

韓·중앙아시아 정상회담 첫 개최
유라시아 지경학 중심부 다시 진입
'글로벌 사우스' 외교 이정표 세워
단발성 지원 ODA 체제를 재설계
핵심광물 파트너십 등 면밀히 이행
韓 외교 '공영의 리더십' 발휘해야

신범식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장
신범식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장

최근 국회 인사청문회와 외교안보 현안의 파도에 지난 '제1회 한·중앙아시아 정상회담' 소식이 다소 묻힌 감이 있다. 그러나 이번 회담은 한국 외교가 지각변동을 겪고 있는 유라시아 지경학의 중심부로 다시 진입하고, 정부 최초의 대(對)중앙아시아 특화전략인 'K-실크로드 협력 구상'을 선언하며 '글로벌사우스(Global South)' 외교의 이정표를 세운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중앙아 5개국은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한국에 특별한 지역이었다. 1996년 우즈베키스탄 아사카에 설립된 연산 20만대 규모 대우자동차 공장이 '대우 효과'를 창출하며, 한국은 서구 주요국들마저 중앙아 진출전략을 자문할 정도로 지역 핵심 파트너이자 선두주자였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기존 유라시아 대륙 공급망이 단절되며 중앙아의 지정학·지경학적 가치는 급상승했다. 이에 미국, 유럽연합(100억유로 규모 글로벌 게이트웨이 사업), 중국(China+C5 정상회의 및 500억위안 지원), 일본, 튀르키예,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요국들이 경쟁적으로 막대한 자본과 외교력을 투입하고 있다. 한국은 여전히 높은 호감도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공세적 강대국들과 경쟁해야 하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현재 중앙아 국가들은 연 4~6%대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하며 사회경제적 역동성을 분출하고 있다. 석유·가스뿐 아니라 우라늄·리튬·희토류 등 핵심광물 공급망의 중심축으로 부상했으며, 정보기술(IT)과 인공지능(AI) 및 데이터센터 구축 등 디지털 전환에도 사활을 걸고 있다.

물류 지형의 변화도 눈부시다. 카스피해를 통과하는 '중부회랑(Middle Corridor)'의 화물 운송량은 2021년 약 58만t에서 2024년 430만t 이상으로 급증했다. 이런 유라시아 물류 회랑의 재편 외에, 서울 면적 1.5배 규모의 카자흐스탄 '알라타우 스마트 신도시' 개발, 현대로템의 우즈베키스탄 고속철(EMU-250, 2700억원 규모) 첫 해외 수출, 투르크메니스탄 갈키니시 가스전 및 석유화학 플랜트(60억달러 규모) 협력 등은 한국 기업에 기회의 창을 열어주고 있다.

이런 변화는 한국 외교에 도전적 질문을 던진다. 전통적 미·중·일·러 강대국 중심 외교를 넘어 글로벌 공급망과 인적 자원의 중심축으로 부상한 글로벌사우스와의 연대를 어떻게 전략적으로 완성할 것인가다.

중앙아시아 전체 인구 8000만명 중 30세 이하 비중이 60%를 넘듯, 글로벌사우스는 중위연령(18~25세)의 탄탄한 인력구조와 다양한 측면의 잠재력으로 세계 무대에서 부상하고 있다.

한국은 이들과 특별한 유대감을 가진다. 식민지배, 전쟁, 빈곤이라는 굴레를 직접 경험했다는 점에서 한국의 뿌리 역시 글로벌사우스와 맞닿아 있다.

단 반세기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하고 세계적 문화강국으로 도약한 한국의 성공은 글로벌사우스가 '따라 배우고 싶은 전범(典範)'이다. 바로 이 지점 '선진국이지만 선진국이 아니었던 경험'에 한국 외교의 필승 자산이 있다. 과거 개발도상국의 고충을 체휼적(體恤的)으로 이해하면서도, 선진 기술과 체제를 전수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협력자라는 점이다.

이에 더해 외교적 리더십을 완성할 핵심 고리는 한국 공적개발원조(ODA) 사업구조의 개편이다. 그동안 부처별로 파편화되고 단발성 지원에 그쳤던 ODA 추진체계를 과감히 탈피, 글로벌사우스 외교전략과의 호환성과 전략적 연계성을 강화해야 한다. 중앙아시아와 글로벌사우스 국가들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산업인프라 구축, 핵심광물 공급망 결합, 디지털 전환, 맞춤형 인재양성 사업에 ODA를 전략적으로 패키지화해 투입하는 '전략적 ODA' 체제를 재설계해야 한다. 그래야만 일회성 시혜를 넘어 공영의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선언된 '신(新)실크로드 구상' 및 '서울선언' 등 많은 약속들이 말잔치로 그쳐서는 안 된다. ODA 구조 혁신을 바탕으로 핵심광물 파트너십과 인프라·교육·디지털 프로젝트 등을 면밀히 이행하고 2년마다 열기로 한 한·중앙아 정상회담에 맞춰 사후관리를 제도화할 때 한국의 글로벌사우스 외교는 비로소 '공영의 리더십'을 발휘하며 한 차원 높은 단계로 도약하게 될 것이다.

신범식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장

■약력 △서울대 외교학과 △모스크바국제관계대 정치학 박사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중앙아시아 특별위원회 위원장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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