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현미경 속에서 만난 산수…이이남이 포착한 작은 생명 [fn 아트스냅]

장인서 기자
파이낸셜뉴스

담양 용소폭포 미생물과 고전 산수의 만남
AI와의 대화로 돌아본 인간 중심의 시선
학고재서 미디어·설치 15점…10월 24일까지

서울 종로구 학고재에 설치된 이이남의 '두 개의 세계'(오른쪽)와 '하나의 물, 여러 개의 풍경-용소'. 학고재 제공
서울 종로구 학고재에 설치된 이이남의 '두 개의 세계'(오른쪽)와 '하나의 물, 여러 개의 풍경-용소'. 학고재 제공

[파이낸셜뉴스] 수조 속 화면이 수면을 경계로 서로 다른 풍경을 펼쳐 보인다. 물 위에는 고전 산수화의 산세가, 물 아래에는 현미경으로 포착한 미생물의 흔적이 나타난다. 미디어아트 작가 이이남의 '두 개의 세계'다. 물 한 방울에서 길어 올린 생명의 흔적이 옛 그림 속 산세와 만난다.

23일 서울 종로구 학고재에서 개막한 이이남 개인전 '시어무형 청어무성: 생명과 존재를 향한 회화적 사유'는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생명에서 새로운 풍경을 찾는다. 2009년 이후 17년 만에 학고재에서 여는 개인전으로, 미디어·설치 작품 15점을 선보인다.

■물 한 방울에서 발견한 산수
작업의 출발점은 고향 담양의 용소폭포다. 작가는 직접 채집한 물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봤다. 그 안에서 움직이고 모였다 흩어지는 미생물의 자취는 산맥의 능선과 강의 흐름, 구름과 안개를 떠올리게 했다. 용소폭포에서 영산강으로 이어지는 물길은 생명의 근원과 자신의 뿌리를 되짚는 출발점이 됐다.

고전 회화에 움직임과 시간을 더해온 작가는 이번에 이미지가 생겨나는 과정으로 관심을 옮겼다. 완성된 풍경을 재해석하는 작업에서 더 나아가, 작은 생명의 움직임이 어떤 형상을 만들어내는지 살핀다. 산과 강을 바라보던 시선이 그 풍경을 이루는 미세한 생명 안으로 들어가는 셈이다.

인공지능(AI)과의 대화도 시선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 작가는 AI를 인간 중심의 시각을 되돌아보게 하는 대화 상대로 삼았다. 하나의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에는 물과 미생물, 빛과 온도, 현미경과 카메라 등 서로 다른 생명과 물질, 환경과 기술이 함께 관여한다.

전시 제목은 '보이지 않는 것에서 보고, 소리 없는 것에서 듣는다'는 뜻을 담았다. 인간이 감지하지 못한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다.

윤재갑 독립 큐레이터는 전시 서문에서 "크기는 작아졌지만, 세계를 바라보는 질문은 오히려 더 근원적으로 확장된다"고 짚었다.

담양 용소폭포에서 채집한 물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이이남 작가. 학고재 제공
담양 용소폭포에서 채집한 물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이이남 작가. 학고재 제공
이이남의 '미시산수-금강내산'(2026). 미생물의 형상과 움직임을 금강산의 모습으로 풀어낸 병풍 형식의 미디어 작품이다. 학고재 제공
이이남의 '미시산수-금강내산'(2026). 미생물의 형상과 움직임을 금강산의 모습으로 풀어낸 병풍 형식의 미디어 작품이다. 학고재 제공
이이남의 '무브 사운드 이미지-공동세계'(2026) 설치 전경. 수조에 비스듬히 잠긴 브라운관 TV 뒤로 미생물의 형상으로 이뤄진 산수가 펼쳐진다. 학고재 제공
이이남의 '무브 사운드 이미지-공동세계'(2026) 설치 전경. 수조에 비스듬히 잠긴 브라운관 TV 뒤로 미생물의 형상으로 이뤄진 산수가 펼쳐진다. 학고재 제공

■수조와 병풍에 펼쳐진 미시 세계
'두 개의 세계'의 바탕은 중국 북송 화가 곽희의 '조춘도'다. 수조를 반쯤 채운 물은 원작의 산세와 미생물의 흔적을 가르면서 두 모습을 함께 보게 한다. 고전 회화와 현미경 영상이 한 화면에서 연결된다.

병풍 형식의 '미시산수-금강내산'은 미생물의 형상과 움직임을 금강산의 모습으로 바꾼다. 가까이에서는 점과 얼룩, 세포의 흔적이 드러나고, 거리를 두면 산과 능선, 골짜기로 읽힌다. 병풍이 꺾이는 구조에 따라 풍경은 나뉘거나 다시 이어진다.

수조가 수면을 기준으로 화면을 나눈다면, 병풍은 관람객의 위치에 따라 화면의 관계를 바꾼다. 두 작품을 함께 보면 미생물이라는 소재뿐 아니라 이미지를 담는 틀과 보는 거리도 풍경의 일부가 된다는 점이 드러난다.

'하나의 물, 여러 개의 풍경-용소'에서는 폭포의 물과 숲, 바위, 빛을 촬영한 영상이 여러 대의 브라운관(CRT) 모니터에서 서로 다른 속도로 흐른다. 바닥에 쌓은 모니터와 높은 곳에 매단 모니터가 관람객의 시선을 위아래로 이끈다.

'무브 사운드 이미지-공동세계'는 수조에 비스듬히 잠긴 브라운관 TV와 프로젝터 8대를 결합했다. 미생물이 빚는 산수에 전쟁과 폐허의 기억을 겹쳐, 작은 생명의 공존과 인간이 남긴 파괴를 대비한다. 영상과 소리는 벽과 바닥까지 이어진다.

전시는 서울 종로구 학고재 본관에서 10월 24일까지 열린다.

[email protected] 장인서 기자


#이이남 #삼청동전시 #서울전시 #미디어아트 #학고재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기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