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K팝으로 '입덕'한 한국어, 한국인 선생님 만나 날개 달았어요" [동남아 돋보기]

김준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7> 한글날 시리즈-박닌영재고 한국어반
출범 2년차 박닌영재고 한국어반...입시 경쟁률 5:1
K팝 넘어 진로까지...진지해진 한국어 학습 동기
제1외국어 승인부터 TOPIK 면제까지
베트남, 한국어 사랑 '유별'

다음 달 9일 한글날 제정 100주년을 기념해 [동남아 돋보기]가 베트남, 인도네시아, 인도 등지의 한국어 교육 현장으로 찾아갑니다. 현지에서 불고 있는 뜨거운 한국어 열풍과 생생한 교육 현황을 향후 수 주에 걸쳐 집중적으로 전해드립니다.

23일 베트남 박닌성에 위치한 박닌영재고등학교 10학년 한국어반에서 천강희 교사가 학생들에게 수업을 하고 있다. 사진=김준석 특파원
23일 베트남 박닌성에 위치한 박닌영재고등학교 10학년 한국어반에서 천강희 교사가 학생들에게 수업을 하고 있다. 사진=김준석 특파원

【박닌(베트남)=김준석 특파원】 "이번 방학에 우리 같이 스키장에 갈까요?"
천강희 교사의 질문이 떨어지자 교실에 있던 35명의 학생이 일제히 입을 열었습니다. "좋아요. 같이 가요."
23일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제조기업들이 둥지를 튼 베트남 북부 거점 도시 박닌시에 위치한 박닌영재고등학교 10학년(한국의 고등학교 1학년에 해당) 한국어반 교실입니다. 하노이한국교육원 파견 교원인 천 교사가 교과서 속 대화문을 한 문장씩 읽어 내려가자 학생들도 곧바로 따라 읽었습니다. 낯선 한국어 문장을 앞에 두고도 학생들의 목소리는 망설임이 없었습니다.

이날 수업 주제는 '날씨와 계절'이었습니다. 학생들은 녹음된 대화를 들으며 날씨를 맞히고, 좋아하는 계절과 그 이유를 한국어로 말했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처음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학생들은 천 교사가 칠판에 적는 단어 하나, 설명 하나까지 놓치지 않으려는 듯 노트에 꼼꼼하게 받아 적었습니다.

23일 베트남 박닌성에 위치한 박닌영재고등학교 10학년 한국어반에서 천강희 교사가 학생들에게 수업을 하고 있다. 사진=김준석 특파원
23일 베트남 박닌성에 위치한 박닌영재고등학교 10학년 한국어반에서 천강희 교사가 학생들에게 수업을 하고 있다. 사진=김준석 특파원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무엇인가요?"
천 교사가 묻자 한 학생이 손을 들었습니다. "겨울"이라고 답한 학생은 이어 한국어로 좋아하는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했습니다. 교과서 속 표현을 외우는 데서 끝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계절과 그 이유, 일상을 직접 한국어로 풀어내는 시간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입학 후 한국어 자음과 모음부터 처음 배웠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학생들의 발음도 또렷했습니다. 천 교사의 질문이 이어질 때마다 학생들의 눈이 반짝였고, 답을 맞히거나 발표가 끝날 때면 교실 곳곳에서 웃음과 박수가 나왔습니다.

이날 천 교사가 수업한 박닌영재고등학교는 1995년 설립된 박닌성 내 최우수학교로 꼽힙니다. 한국의 특수목적고에 해당하는 이 학교는 2024년 한국어반을 신설해 현재 10학년과 11학년에 각각 1개 반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입시 경쟁률은 4:1~5:1 가량으로 치열하다고 합니다.

한국어반 학생들은 주 6시간의 한국어 수업을 수강하고 있습니다. 천 교사 외에도 하노이외국어대 한국어과 출신 2명의 현지인 교사가 학생들을 지도하며 한국어 실력 강화에 나서고 있습니다.

당 하이 린 박닌영재고 한국어 교사는 "학생들이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관심을 갖고 많은 지원을 했다"면서 "학부모님들의 반응도 좋은 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외국어 학습에 있어 듣기와 말하기 실력이 가장 향상시키기 어려운 분야인데 천 선생님이 수업을 해주면서 학생들의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것 같아 뿌듯하다"고 한국인 교원을 파견해준 하노이한국교육원에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이날 교실에서는 통상 여학생들이 많은 언어반 수업과 달리 남학생 13명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천 교사는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 중에 대다수가 K팝이나 K드라마이기 때문에 여학생들이 절대 다수"라면서도 "남학생들과 일부 여학생들 중에는 문화 콘텐츠를 넘어 유학이나 심화 공부를 생각하고 한국어반을 선택한 경우가 많아서 책임감을 가지고 한국어를 지도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대학에서 베트남어를 전공한 천 교사는 "원어민 교원으로서 한국과 베트남 문화가 비슷하면서도 다른 부분들이 많다"면서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쉽게 알기 힘든 한·베 양국의 문화 차이와 한국의 최신 문화에 대해 생생하게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23일 베트남 박닌성에 위치한 박닌영재고등학교 10학년 한국어반 한 학생이 수업시간 판서를 공책에 필기하고 있다. 사진=김준석 특파원
23일 베트남 박닌성에 위치한 박닌영재고등학교 10학년 한국어반 한 학생이 수업시간 판서를 공책에 필기하고 있다. 사진=김준석 특파원

한국어는 베트남에서 인기 외국어 중 하나입니다. 베트남은 이전부터 어느 나라보다 더 적극적으로 한국어를 체계적이고 점진적으로 정규 교육 과정에 통합해 왔습니다. 2020년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승인한 데 이어 2021년에는 제1외국어로 인정하고 고등학교 졸업시험 과목 목록에 포함시켰습니다.

베트남 고3 학생들은 수학 및 문학 시험을 치르고, 외국어나 역사 등 9개 선택 과목 중 두 과목을 선택해 총 네 과목의 졸업시험을 치른 결과로 대학에 입학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규정에 따라 올해부터 한국어능력시험(TOPIK) 자격증이 이 시험의 외국어 과목을 대체할 수 있게 됐습니다. 구체적으로 TOPIK 3급 이상을 취득한 학생은 선택 과목 중 외국어 시험이 면제되며, TOPIK 점수를 외국어 점수로 환산해 졸업 및 대학 입학 심사에 반영하게 됩니다. 이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제도입니다.

현재 베트남은 TOPIK 응시자 수가 매우 많은 국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2025년 전 세계 TOPIK 응시자 56만6665명 가운데 8만5896명이 베트남 학생으로, 15.2%를 차지했습니다. 한국을 제외한 국가 중 1위입니다. 현재 베트남에서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합쳐 총 169개 학교에서 한국어 수업을 제공하고 있으며, 약 3만3000명의 학생들이 수강하고 있습니다.

김현동 하노이한국교육원장은 "학생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에 대한 관심을 넓혀갈 수 있도록 하노이한국교육원에서도 지원할 수 있는 부분을 적극 찾아 돕겠다"면서 "앞으로 한국 대학 유학이나 한국 기업 취업 등 다양한 기회를 접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이 학생들이 향후 베트남을 이끌어갈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힘쓸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동남아 돋보기]는 글로벌 공급망과 외교·안보의 핵심 요충지로 부상한 동남아시아의 주요 현안과 비하인드 뉴스를 현지에서 생생하고 깊이 있게 전하는 코너입니다.[email protected] 김준석 기자


#한국어 #K팝 #한국인 선생님 #박닌영재고등학교 #문화 차이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기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