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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유럽 자동차 업계, 방산으로 살길 찾기 [윤재준의 월드뷰]

윤재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포드 영국 법인, 군용차 9000대 공급 사업 입찰
폭스바겐, 오스나뷔르크 공장 방산 거점 검토
유럽 업계, 수익성 악화에 중국산 EV 밀물로 고전
독일 노조, 방산 물가 생산에 윤리적 부담
중국 경쟁사와 제휴까지 검토

독일 동부 츠비카우의 폭스바겐 공장. 과거에 독일에서는 자동차 공장 폐쇄를 상상할 수 없었으나 폭스바겐은 10만명 감원을 예고하고 드레스덴 공장을 폐쇄했으며 이곳 츠비카우를 포함한 4개 공장의 가동을 중단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AFP연합뉴스
독일 동부 츠비카우의 폭스바겐 공장. 과거에 독일에서는 자동차 공장 폐쇄를 상상할 수 없었으나 폭스바겐은 10만명 감원을 예고하고 드레스덴 공장을 폐쇄했으며 이곳 츠비카우를 포함한 4개 공장의 가동을 중단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AFP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유럽 완성차 제조업체들이 심각한 실적 악화와 과잉 설비 문제에 직면하자 방위산업으로 대거 눈을 돌리고 있다. 전기차 전환 지연과 낮은 가격을 앞세운 중국 완성차 업체들의 공격적인 시장 침투로 입지가 좁아진 상황에서, 최근 안보 위기로 급증한 유럽 각국의 국방 예산을 성장의 새로운 기회로 삼으려 하고 있다.

지난 25일(현지시간) BBC 방송을 비롯해 최근 외신들은 영국과 독일 등 유럽의 자동차 업계들이 방산에서 살길을 찾으려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포드 자동차의 영국 법인 포드 UK의 경우 완성차 업계의 유례없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군용 차량 시장 진입을 추진하고 있다. 포드는 방산 전문기업 제너럴다이내믹스, 리카르도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영국 국방부(MoD)의 육군 차량 교체 사업 입찰에 참여했다. 해당 사업은 향후 5~7년간 기존 랜드로버 기반 차량을 대체할 약 9000대의 군용차를 공급하는 프로젝트다. 리사 브랭킨 포드 UK 회장은 "제조업체로서 군수 분야의 수요 급증은 놓칠 수 없는 절호의 기회"라고 밝혔다. 재규어랜드로버(JLR)도 군수 사업을 전담할 별도 사업부를 신설하고 영국 국방부의 차세대 군용차 사업 입찰에 참여 중이다.

독일 자동차 기업 폭스바겐은 가동률이 떨어진 독일 오스나브뤼크 공장을 방산 제조 거점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스라엘 방산업체 라파엘(Rafael)과 손잡고 방공망 체제인 아이언돔 미사일 부품 등을 생산하는 협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인공지능(AI) 드론 스타트업 타이탄 테크놀로지스와 협력해 G클래스 및 스프린터 기반의 드론 방어·운용 시스템 개발에 착수했다.

프랑스 르노자동차도 방산 대기업 탈레스(Thales)와 전략적 협약을 맺고 월 1000대 생산을 목표로 군용 드론 제작에 나섰다. 프랑스 군 당국은 르노의 대량생산 시스템을 활용해 정체된 군수 공급망을 혁신하겠다는 구상이다.

■공장 놀리느니 방산 물자 생산
유럽 자동차 산업이 방위산업에 눈독을 들이는 배경에는 심각한 공장 가동률 저하와 수익성 악화가 있다. 과거 효자 시장이었던 중국 내 입지가 급격히 줄어든 데다, BYD·지리 등 중국 브랜드들이 저렴한 전기차(EV)를 앞세워 유럽 본토 시장까지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에 따르면 현재 서유럽 자동차 공장의 유휴 생산 능력은 연간 250만대에 달한다. 폭스바겐은 향후 수년간 최대 10만명 규모의 감원을 추진 중이며, 드레스덴 공장을 비롯해 EV 생산 시설에 10억유로(약 1조5400억원) 이상을 투입했던 츠비카우 공장 등 주요 생산 거점의 폐쇄를 검토하고 있다. JLR 역시 비용 절감을 위해 영국 내 인력 4000명을 감원하기로 했다.

영국 자동차고용주협회(SMMT)의 마이크 호스 이사는 "영국 자동차 생산량은 10년 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공장 가동률이 남는 자동차 공급망 업체들에게 방위산업은 고객사를 다변화할 수 있는 구원투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노동자들 군수 공장 전환에 반발
그러나 자동차 생산 라인을 방산 체제로 재편하는 것이 완벽한 해법이 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무성하다.

우선 대량생산에 최적화된 완성차 공장 시스템과 소량 다품종 중심의 방위산업 간 구조적 차이가 크다. 시그리드 데 브리스 ACEA 사무총장은 "방위산업이 유휴 설비 문제를 일부 완화할 수는 있겠지만, 대중 소비재 시장인 자동차 산업의 거대한 공백을 완전히 메우기엔 한계가 있다"고 짚었다.

현장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의 윤리적 거부감도 넘어야 할 산이다. 독일 금속노조인 IG 메탈 측은 방산 전환이 대규모 실직을 막을 근본적 대안이 될 수 없다며 회의적인 입장을 밝혔다.

30년간 폭스바겐에서 근무한 노조 관계자 라르스 히르제코른은 "사측이 직원을 상대로 '방산 물자를 만들지 않으면 공장을 폐쇄하겠다'며 윤리적 협박을 가하고 있다"며 "전쟁 무기 생산에 동원되는 것에 대한 현장 노동자들의 반발과 고충이 극에 달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중국 경쟁사와 손잡아야할지 고민
그러나 방산 전환이 유럽 자동차 산업의 완벽한 구원투수가 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데 브리스 ACEA 사무총장은 "자동차 업계가 보유한 생산 역량과 물류, 첨단 기술은 유럽의 국방 강화 목적에 적합하다"면서도 "전시 상태가 아닌 이상 방산 물량은 민간 대중시장의 부재를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포드의 9000대 군용차 계약 역시 과거 연간 9만대를 생산하던 공장 규모에 비하면 "바다의 물 한 방울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이 때문에 유휴 공장 설비의 막대한 고정비를 감당하기 위해 '적과의 동침'을 선택하는 모순적인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스텔란티스는 중국 전기차 업체 립모터 지분 20%를 인수해 유럽 공장에서 위탁 생산을 시작했고, 닛산 역시 영국 선덜랜드 공장에서 중국 체리자동차의 위탁 생산을 검토 중이다.

서방 자동차 업계는 지난 2000년대초만 하더라도 중국을 기회의 땅으로 봤다. 급증하는 중산층의 구매력에 폭스바겐은 전체 순익의 절반을 중국 시장에서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자동차 산업을 육성하면서 시장내 경쟁이 치열해자 중국 업체들은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유럽 제조업의 자존심이었던 자동차 산업이 방산 전환과 중국 기업과의 협력이라는 파격적인 선택지 앞에 서 있다. 하지만 급증하는 방위비 지출조차 과거의 화려했던 제조업 영광을 완전히 되살리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6월25일 중국 산둥성 옌타이에서 MG 사이버스터 전기차가 수출을 위해 선적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AFP연합뉴스
지난 6월25일 중국 산둥성 옌타이에서 MG 사이버스터 전기차가 수출을 위해 선적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AFP연합뉴스

[email protected] 윤재준 기자


#유럽 완성차 #방위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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