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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초 만에 뚝딱 찍어낸 음악… 완벽한 '가짜'가 위협하는 K팝의 진정성 [박지현의 아트월드]

박지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2026년 1월13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 위치한 수노(SUNO)에서 AI 음악 작품을 창작하는 동안 여러 악기의 오디오 파일 파형들이 컴퓨터 화면에 띄워져 있다. /사진=뉴시스
2026년 1월13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 위치한 수노(SUNO)에서 AI 음악 작품을 창작하는 동안 여러 악기의 오디오 파일 파형들이 컴퓨터 화면에 띄워져 있다.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비가 오는 날씨네, 계절에 맞게 은은한 발라드 곡을 만들어줘." 프롬프트 한 줄을 입력하자 불과 몇 초 만에 그럴싸한 노래가 튀어나온다. 1억 명 이상의 가입자를 보유한 생성형 AI(인공지능) 음악 서비스 '수노(Suno)'의 위력이다. 오직 인간만의 성역이라 여겨졌던 창작의 최전선이 알고리즘에 자리를 내어준 지금,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전례 없는 지각변동을 겪고 있다.

최근 뉴욕타임스(NYT), 파이낸셜타임스(FT),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들은 일제히 AI가 음악 산업에 미치는 거대한 파장과 자본의 탐욕, 그리고 훼손되어 가는 '진정성'에 주목하고 있다.

■'해적'이거나 '파트너'이거나… 창작과 유통을 뒤흔든 AI

글로벌 음악 시장에서 AI는 '혁신'이라는 가면을 쓴 채 기존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FT에 따르면 프랑스의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디저(Deezer)는 지난 7월 새롭게 업로드된 음악의 절반 이상(월평균 9만 곡)이 AI로 생성된 곡이라고 밝혔다. 더 심각한 문제는 AI로 대량의 트랙을 찍어낸 뒤 봇(Bot)을 돌려 재생 수를 조작하는 '스트리밍 사기'다. 디저 측은 지난해 100% AI로 생성된 트랙 스트리밍의 최대 85%가 사기였으며, 정당한 아티스트에게 돌아가야 할 로열티가 고스란히 사기꾼들의 주머니로 흘러가고 있다고 폭로했다.

여기에 더해 최근 소니, 유니버설, 워너 등 주요 음반사들은 수노가 수백만 곡의 저작물을 무단으로 학습했다며 거액의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NYT는 이 거대 자본들의 모순적인 태도를 날카롭게 꼬집었다. 소송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워너뮤직 등은 이미 수노, 유디오(Udio)와 공식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새로운 AI 모델 개발에 거액을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NYT는 "기존 산업계에 AI는 고소해야 할 '해적'인 동시에 새로운 수익 창출을 위해 손을 잡아야 할 '파트너'인 셈"이라고 평했다.

■가상 아이돌과 AI의 습격… "팬들은 과연 지갑을 열 것인가"

5월 15일 서울 강동구 '갤럭시 로봇 파크'에서 열린 갤럭시코퍼레이션 로봇 파크 미디어 데이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이 K-POP 노래에 맞춰 댄스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뉴스1
5월 15일 서울 강동구 '갤럭시 로봇 파크'에서 열린 갤럭시코퍼레이션 로봇 파크 미디어 데이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이 K-POP 노래에 맞춰 댄스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뉴스1

이처럼 서구권 음악 시장이 창작과 유통의 주도권 싸움으로 홍역을 치르는 동안, 팬덤 비즈니스의 최전선에 있는 K팝 시장을 바라보는 외신의 시각은 보다 근원적인 질문을 향해 있다.

WSJ는 K팝 기획사들이 가상 아티스트와 AI 보컬 기술에 막대한 자본을 베팅하는 현상을 집중 조명했다. 사생활 스캔들이나 피로감이 없는 버추얼 IP는 자본의 관점에서 가장 완벽한 '리스크 헤지' 수단이다.

하지만 WSJ는 "아티스트와 팬들이 그로 인해 무엇을 잃게 될지 고심하고 있다"며 팬덤 경제의 핵심인 '진정성'의 훼손을 경고했다. 한 팬은 최악의 가수조차 완벽하게 포장해 내는 AI 기술을 '재앙'이라 칭하며 지지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완벽하게 렌더링된 AI 음악과 가상 아티스트들이 대량 생산될수록, 팬들은 역설적으로 누군가와 같은 공간에서 호흡하는 불완전한 현실 세계의 땀방울을 더욱 갈망하게 된다는 묵직한 통찰이다.

■ 공백투성이 한국 저작권… '진짜'를 증명해야 할 시간

외신이 던진 이 서늘한 질문 앞에서 한국 가요계의 현실은 뼈아프다. 미국(BMI), 유럽(GEMA) 등 선진국의 저작권 관리 단체들이 인간의 창작적 기여도를 세분화하여 저작권료 분배 기준을 세우고 발 빠르게 대응하는 것과 달리 한국은 지독한 '제도적 공백'을 앓고 있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가 인간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AI 음악의 신탁 등록을 허용하려 했으나 당국의 제동에 부딪혀 시행 22일 만에 철회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사이 대중의 일상에는 카페나 음식점의 배경음악 저작권료를 피하기 위해 찍어낸 싸구려 'AI 슬롭(Slop·찌꺼기)' 음악들이 스며들고 있다. 음악이 10초 만에 공장에서 찍혀 나오는 소모품으로 전락하고 기준 없는 혼란 속에서 창작자의 권리가 잠식당하는 사이 '가짜'는 무서운 속도로 '진짜'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제도를 조속히 정비해 글로벌 기준에 맞는 창작자 보호망을 구축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나아가 첨단 기술과 완벽함만을 좇는 K-엔터 산업 역시 깊이 고민해야 한다. 인간 아티스트의 치열한 서사와 무대 위 뜨거운 호흡이라는 프리미엄을 잃어버리는 순간, 팬들의 지갑 역시 굳게 닫힐 것이라는 경고를 잊지 말아야 한다.

[email protected]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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