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압박 속 中 따라붙어… K반도체 정부·기업 '원팀' 대응을[반도체 호황의 그림자]
(상) 국내 전문가들의 제언
정부, 물·전력 등 차질없이 공급
일관된 정책·대외 협상력 등 필요
기업들도 경쟁 넘어 협력 넓혀야
중국의 기술추격과 미국의 현지투자 요구가 동시에 거세지는 가운데 한국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지키려면 정부와 기업이 투자 일정을 함께 책임지는 '원팀'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업이 차세대 공장과 연구개발에 투자하더라도 전력·용수 공급과 인허가가 늦어지면 생산시점 자체가 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2~3년을 국내 반도체 생산 기반을 다질 골든타임으로 꼽았다.
■정부, 일정대로 인프라 공급해야
27일 파이낸셜뉴스가 국내 주요 반도체 전문가들의 진단을 종합한 결과 민관 협력의 최우선 과제로 계획된 국내 투자를 실제 가동으로 연결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주류를 이뤘다.
최정동 테크인사이츠 수석부사장은 미국의 현지 생산시설과 중국의 차세대 D램·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능력이 본격적으로 확대되기 전인 2028~2029년까지가 한국에 주어진 시간이라고 분석했다. 최 수석부사장은 "정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전력·용수·송전망·부지·인허가를 묶은 국가 책임형 인프라를 실제 일정대로 공급하는 것"이라며 "공급계획이 지연된다면 곧 기술 로드맵 지연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김용석 가천대 반도체대학 석좌교수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예정대로, 가능하면 조기에 완성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전기와 물·도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한 데 이어 연구개발 인력의 주 52시간 문제 해결 등 제도 정비를 언급했다. 신창환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국내에 첨단 공장을 먼저 지을 여건이 중요하다"며 "송전망과 용수 확보에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부 교수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공공기관을 거치는 행정절차를 줄일 '원스톱 창구'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반도체 공장 건설부터 양산 안정화까지 장기간이 걸리기에 전문가들은 시간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반도체는 2~3년 선제적으로 투자해야 2~3년 뒤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틀의 원팀 필요할 때
전문가들은 일제히 '원팀'을 강조했지만 정부가 기업의 투자 방향을 대신 정하는 방식은 지양할 것을 주문했다.
정부는 국내에서 공장을 제때 짓고 연구할 수 있는 조건과 대외 협상력을 마련하고, 기업은 그 기반 위에서 다음 세대 기술과 양산에 투자하는 역할 분담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권석준 교수는 "한번 하기로 한 정책은 일관되게 추진하고, 정부가 인프라 구축과 행정적 마찰을 줄이는 일을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투자에 대응하는 민관 협력에선 정무적이면서도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미국 내 생산 확대가 빅테크 등 주요 고객 확보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국내 선행 연구개발과 협력업체까지 해외로 이동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 수석부사장은 2030~2032년 미국 공장들이 본격 가동되는 동안 국내 투자가 전력·용수·인허가 문제로 지연될 경우 '산업 공동화'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에 해외 첨단 생산능력이 전체의 25~30%를 넘고, 차세대 제품의 절반 이상을 현지 고객과 공동개발하게 되는 단계를 특히 주의해야 할 조건으로 제시했다. 김용석 교수는 메모리 전공정의 국내 기반을 유지하면서 미국에서는 후공정 투자를 확대하는 등의 방안을 제언했다.
기업 간 협력의 범위도 넓혀 또 다른 원팀이 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최 수석부사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경쟁은 해도 소재·부품·장비, 인재, 표준, 인공지능(AI) 메모리 생태계에서는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대학·연구소·기업이 함께 사용하는 300㎜(12인치) 웨이퍼 파일럿 라인과 첨단 패키징 시험시설을 구축해 중소 협력업체도 차세대 공정을 검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백서인 한양대 글로벌문화통상학부 교수는 반도체 호황으로 확보한 자원을 차세대 메모리의 기술 개발과 양산 경쟁력 강화에 다시 투입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백 교수는 "우리 정부는 정책이 절실하지 않은 것 같다. 다른 정부들은 죽기 살기로 하는데 우리는 지금 앞서 있다는 안도감이 있는 것 같다"면서 "안심할 상황이 아니다. 지금 얻은 과실과 자원을 근원적인 경쟁력을 더욱 강화하는 데 투자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김학재 박소현 박지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