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영화제 '불란지' 526편 역대 최다… 본선 10편 확정
도입 3년 만에 출품작 500편 돌파
지난해보다 185편·54.3% 증가
4·3서 강제동원·디아스포라로 확장
【파이낸셜뉴스 제주=정용복 기자】 제주4·3의 기억에서 출발해 국가폭력과 강제동원, 이주와 차별, 개인의 정체성까지 영화로 확장해 온 제주4·3영화제 단편 경쟁 '불란지'에 역대 가장 많은 526편이 몰렸다. 도입 3년 만에 출품작이 500편을 넘어선 가운데 본선에서 경쟁할 10편이 가려졌다.
29일 제주4·3평화재단에 따르면 제4회 제주4·3영화제 단편 경쟁 '불란지'에는 극영화 461편, 다큐멘터리 31편, 애니메이션 31편, 실험영화 등 기타 3편을 합쳐 526편이 출품됐다. 지난해 341편보다 185편, 54.3% 증가한 역대 최대 규모다.
'불란지'는 2024년 제2회 제주4·3영화제에서 처음 도입됐다. 첫해 295편에서 지난해 341편으로 늘어난 데 이어 올해 처음 500편을 넘어섰다.
불란지는 반딧불이를 뜻하는 제주어다. 어둠 속에서 빛을 내는 반딧불이처럼 제주4·3의 아픔에서 평화와 인권, 희망의 가치를 이어간다는 의미를 담았다.
올해 공모에서는 526편 가운데 80편을 1차로 추린 뒤 추가 심사와 심사위원 대면 논의를 거쳐 본선 진출작 10편을 선정했다.
본선에는 김은서 감독의 '보물찾기', 이성만 감독의 '우리는 외계인을 기억하고 있었다', 문성원 감독의 '생존수영', 안유리 감독의 '포효하는 잿더미들', 이원식 감독의 '돈즈루보'가 올랐다.
김우식 감독의 '꿈엔들, 정암', 김진국 감독의 '돌아온 자리', 장서윤 감독의 '갱년기 소녀 투쟁기', 장주선 감독의 '의주의 언어', 조정강 감독의 '돔-류비'도 본선에 진출했다.
작품의 소재는 제주4·3에 머물지 않는다. '보물찾기'는 제주 동광리에 사는 여덟 살 소녀가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기 위해 '노래하는 돌'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제주4·3의 비극과 마주하는 작품이다. 어린아이의 시선을 통해 미처 말로 설명되지 않은 비극을 드러내고 픽션과 논픽션을 결합해 과거의 기억을 현재로 끌어온다.
'돈즈루보'는 일본 나라현의 지하 군사시설에 남은 조선인 강제동원 흔적을 추적한다. '포효하는 잿더미들'은 홋카이도에서 사할린을, 제주에서 쓰시마를 바라보며 식민과 전쟁, 냉전과 디아스포라로 이어지는 동아시아의 기억을 이미지와 사운드로 풀었다.
'우리는 외계인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1983년 전라도 시골마을에서 사라진 누나를 찾아 나선 소년들의 이야기를 미스터리 장르로 그렸다. 외계인이라는 상상력을 통해 감시와 통제, 침묵으로 이어지는 한국 근현대사의 기억에 접근한다.
이주와 디아스포라도 주요 축이다. '꿈엔들, 정암'은 1938년 만주로 집단 이주한 충북 출신 조선인들이 일군 정암촌과 후손들의 삶을 기록한다. '돌아온 자리'는 태평양전쟁 당시 팔라우로 강제동원됐다가 귀환한 뒤 여순사건까지 겪은 외할아버지의 기억을 손녀의 시선으로 따라간다.
애니메이션 '돔-류비'는 카자흐스탄 우슈토베 고려인 공동체의 언어와 음식, 이웃의 일상을 로토스코핑 기법으로 담았다.
오늘의 제도와 개인이 맞닥뜨리는 문제도 본선에 포함됐다. '생존수영'은 참사의 트라우마를 가진 학생과 재계약 압박을 받는 기간제 교사의 이야기를 통해 경쟁과 제도, 상실과 애도의 문제를 다룬다.
'의주의 언어'는 제3국에서 태어난 주인공이 탈북민 영어 말하기 대회를 준비하면서 마주하는 언어와 정체성, 소속의 문제를 따라간다.
'갱년기 소녀 투쟁기'는 24살에 조기폐경 진단을 받은 감독이 자신의 신체 변화와 삶을 기록한 자전적 다큐멘터리다. 개인의 경험에서 출발해 젊은 여성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기준과 다른 세대에 대한 이해로 시선을 넓힌다.
심사위원들은 올해 출품작에 대해 제주4·3을 직접 다룬 작품뿐 아니라 식민과 분단, 이주와 차별, 개인과 공동체의 문제까지 4·3이 던지는 질문을 확장한 작품들이 두드러졌다고 평가했다. 예선 심사는 김민경 프로듀서와 김보년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김설해 감독, 변지철 연합뉴스 기자가 맡았다.
제주4·3영화제는 4·3을 특정 시기와 지역의 역사에 가두지 않고 국가폭력과 전쟁, 차별과 이주, 저항과 연대, 회복과 평화로 확장해 영화로 살펴보는 방향을 이어왔다.
2023년 제주4·3 75주년 특별상영회로 출발한 뒤 2024년 제2회 영화제부터 단편 경쟁 불란지를 도입했다. 지난해에는 제주4·3과 대만 2·28,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부마민주항쟁, 사북항쟁을 비롯해 팔레스타인 등 현재의 전쟁과 폭력 문제까지 프로그램 범위를 넓혔다.
올해 본선에 오른 10편도 이런 흐름을 이어간다. 제주4·3의 직접적인 기억부터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디아스포라와 정체성, 오늘의 제도와 개인의 삶까지 서로 다른 시대와 공간의 문제를 연결했다.
본선 진출작은 제4회 제주4·3영화제 기간인 11월 22일부터 28일까지 제주콘텐츠진흥원 Be:in 공연장에서 상영된다. 본심을 거쳐 대상과 극영화상, 다큐멘터리상 등을 선정하고 관객 투표로 관객상도 가린다.
임문철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은 "올해 역대 가장 많은 작품이 출품돼 다양한 이야기와 시선을 만날 수 있게 됐다"며 "관객들이 4·3의 기억이 오늘의 삶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함께 생각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정용복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