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각

[강남視角] 텍사스 주지사 애벗의 변심

파이낸셜뉴스
최진숙 논설위원
최진숙 논설위원

"텍사스는 비즈니스의 속도로 움직인다"고 말한 이는 올해로 12년째 이곳 주지사인 그레그 애벗이다. 텍사스 토박이로 텍사스대와 밴더빌트대 로스쿨을 나왔다. 변호사시험을 준비하던 중 조깅하다 20m 높이의 참나무가 덮치는 사고로 척추를 다쳐 지금까지 휠체어를 탄다. 애벗은 훗날 이 사고를 자신의 정치적 서사의 일부로 자주 언급했다. "삶은 닥친 시련이 아니라 어떻게 대응하느냐로 결정된다." 변호사에서 판사, 주 대법관을 거쳐 주 법무장관을 12년 지냈다. 이 기간 주로 한 일이 버락 오바마 행정부를 상대로 한 규제 소송전이다. "출근하면 연방정부를 고소하고, 집에 간다." 자신의 하루 일과를 이렇게 언급한 적 있다.

휠체어를 탄 법률가의 정치 스타일은 그렇게 전투적이었다. '작은 정부, 낮은 세금, 적은 규제'의 텍사스 보수 모델을 신념처럼 밀어붙였다. 2014년 주지사에 당선된 뒤 "정부가 아니라 사람을 믿는다. 당신들의 꿈의 크기를 제한하지 않겠다"고 한 것도 이 연장선이었다.

기업들이 움직인다. 테슬라와 휴렛팩커드 엔터프라이즈가 글로벌 본사를 텍사스로 옮긴다. 테슬라는 대대적인 기가팩토리 프로젝트도 공개했다. 오라클도 오스틴으로 향했다. 석유와 카우보이의 땅 텍사스가 반도체의 새 기지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소득세가 없고, 땅은 넓었다. 무엇보다 에너지가 축복이었다. 세계적인 유전, 천연가스전에 재생에너지도 충만했다. 거대한 독립 전력시장 ERCOT를 둘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애벗 취임 후 10년간 300개 넘는 기업이 본사를 텍사스로 옮겼다.

인공지능(AI)시대는 그 뒤 도둑같이 왔다. 전기에 목마른 빅테크들이 데이터센터를 여기에 밀어 넣었다. 오픈AI가 주축인 5000억달러 규모의 스타게이트 AI 인프라 사업이 소도시 애빌린에서 첫 삽을 떴다. 말이 뛰던 목장지대에 거대한 AI 설비 골조가 들어섰다. 이렇게 몰린 데이터센터가 300개가 넘었다. 정점은 지난해 말 구글의 깜짝 발표였다. 댈러스 남쪽 미들로디언에서 3년간 400억달러를 텍사스에 쏟아붓겠다고 선언했다.

돌아보면 순식간의 성공이다. 기업들의 물결에 쌍수 들고 환영했던 주민들이 술렁인다. 교회에서 돌아오다 평소와 다른 자갈길로 들어섰다가 달라진 풍경에 분노했다는 목격담도 나왔다. 전기요금이 오르고, 물이 마르고, 집값과 동네의 삶마저 흔들릴 것이라는 불안감이 번졌다. 지역의 60% 넘는 주민들이 데이터센터 반대 깃발을 내건다. 현실적 우려와 막연한 공포가 뒤섞인 결과다.

11월 4선 도전을 앞둔 애벗의 고뇌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극단적 친기업으로 분류됐던 애벗의 톤이 지난 6월부터 달라졌다. 세제 혜택을 줄이고 기업에 인프라 비용 청구서를 들이밀겠다고 했다. 그러고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신규 데이터센터 허가에 전격 제동을 건다. 그러면서 던진 말이 "텍사스 주민이 먼저다(Texans must come first)"였다.

공교롭게도 애벗의 모라토리엄이 선언된 그날(9월 21일), 한국은 3500억달러 대미투자 사업을 공식 발표했다. 1호 사업으로 텍사스 가스복합발전 프로젝트가 확정됐다. 폭증할 데이터센터가 주요 수요처가 될 것이라는 계산이 당연히 있었다. 물론 텍사스에 여전히 전력이 필요한 것은 맞겠지만 한국 특정 발전소가 20년간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리스크 부담과 '상업적 합리성'을 마지막까지 따질 수밖에 없다.

더 주목해야 하는 건 애벗의 변심을 부른 현실이다. 주민들의 불편과 공포 앞에 애벗의 '작은 정부'는 흔들린다. 텍사스만의 일이 아니다. 미국 여러 곳에서 갈등이 불붙고 있다. 송전망 하나 세우는 데 한 세대가 걸리는 한국은 더 뼈아프다. 설득과 합의의 고비가 산 넘어 산이다. 지자체의 힘으로 풀 수 없는 난제다. 딜레마에 빠진 미국, 가시밭길의 한국이다. 그러는 사이 중국은 국가 주도 철권 드라이브로 초고압 전력망을 깔고 데이터센터를 무섭게 지어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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