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감옥에서 엄마와 사는 영아들

파이낸셜뉴스
서지윤 사회부
서지윤 사회부

낯선 이가 문 앞에 선다면 우리는 어디까지 그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호머의 서사시 '오디세이'에서 거지로 변장한 오디세우스가 목동 에우마이오스의 오두막을 찾는다. 에우마이오스는 그를 손님으로 맞아들여 음식과 잠자리를 내어준다. "모든 낯선 이와 거지는 제우스로부터 온다"는 믿음에서다. 고대 그리스에서 낯선 이를 받아들이는 일은 단순한 친절을 넘어 지켜야 할 환대의 규범이자 문명이었다.

그 오래된 이야기가 지난달 14일 서울북부지법의 한 항소심 법정에서 떠올랐다. 한쪽 손목에 수갑을 찬 20대 여성 A씨의 가슴에는 생후 9개월 된 아기가 안겨 있었다. A씨는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수감됐는데 아이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아 교정시설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아이는 예방접종을 제때 받지 못했고, 피부 발진도 치료받지 못했다고 한다. A씨는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겠다며 재판부에 보석을 요청했다.

매년 생후 18개월 미만 영아 10여명이 교정시설에서 엄마와 생활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상하게 느껴졌던 것은 엄마가 죄를 지어 법정에 섰는데 아기까지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현실이었다. 김현경은 저서 '사람, 장소, 환대'에서 사람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사회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갖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죄를 지은 부모와 아이의 삶을 분리하는 일은 아이에게도 자신의 자리를 마련해 주는 일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아이를 교정시설 밖에서 키우는 것이 원칙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부모의 범죄와 아이의 삶은 분리돼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이를 맡길 곳이 없는 경우다. 원칙만 남으면 아이는 엄마와 담장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예외적으로 생후 18개월까지 교정시설에서 아이를 양육할 수 있게 한 것도 이런 현실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아이를 엄마와 떼어놓느냐, 함께 두느냐 같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다. 부모의 형벌과 아이의 삶을 분리할 수 있는 자리를 사회가 마련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아이에게 머물 곳이 있다면 부모는 아이를 위해 구금을 면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지 않고 죄에 상응하는 책임을 질 수 있다. 아이에게 부모와 다른 자리를 내어주는 건 부모의 책임을 가볍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책임을 온전히 묻기 위한 조건일지도 모른다. 아이가 감당해야 할 것은 부모의 죄가 아니다. 부모의 죄를 묻는 순간에도 아이의 얼굴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법과 함께 지켜야 할 문명의 감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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