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값 애초에 높게 부르고… 세입자 갱신청구권 못쓴채 '합의' [임대차2법 실효성 논란]
올 임대차 분쟁조정 접수의 70%
6년된 임대차 2법 영향으로 발생
실거주 등 이유로 갱신 거절 빈번
합의 재계약땐 '5% 보호' 못받아
올해 임대차 분쟁 조정 접수 10건 중 7건은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 등 '임대차 2법'의 영향을 받아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주택자와 비거주 1주택자 압박에 극심한 전세난이 더해지면서 집주인과 세입자 간 갈등으로 인한 혼란이 가중되는 모습이다.
■"실거주 할게요" 분쟁 폭발
29일 한국부동산원이 강대식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유형별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분쟁 접수 현황에 따르면 올해 1∼8월 총 1087건 중 '보증금·건물의 반환'이 361건으로 가장 많았다. 임대차 2법 도입 후 계약갱신 거절이나 계약 종료 시점을 둘러싼 갈등이 잦아지면서 보증금 반환 마찰이 가파르게 증가한 탓이다.
이 외에도 △계약 갱신·종료(146건) △손해배상(122건) △계약 이행 및 해석(104건) △차임 또는 보증금 증감(39건) 등 임대차 2법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유형들이 분쟁의 주를 이뤘다. 이를 모두 합치면 총 780건으로 전체의 71.8%에 달한다.
다만 이 같은 수치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관측이다. 절차가 까다롭고 시간·비용적 부담 탓에 정식 분쟁조정이나 소송조차 포기한 세입자들을 더하면 실제 시장의 혼란은 훨씬 크다는 점에서다.
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는 A씨는 올해 초 '집주인 실거주'를 이유로 계약갱신을 거부당했으나, 두 달여 만에 해당 집이 팔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A씨는 "집주인이 이미 매수자를 구해 놓고 갱신 거부의 명목으로 실거주한다는 거짓말을 한 듯하다"며 "법적 보상 방법을 알아봤지만 너무 많은 품이 들어 포기했다"고 토로했다. 임대인이 처음부터 실거주할 목적이 없어 불법성이 인정된다면 '민법' 제750조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질 수 있지만 입증을 위한 증거 수집 등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최근 계약갱신을 거절당하거나 계약이 취소된 사례들을 살펴보면 그 사유도 다양하다. 서울 동작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정부 정책으로 유주택자의 전세대출이 막혀 세입자가 계약을 무른 경우도 있고, 집주인이 다주택을 처분해야 해서 취소한 경우도 있다"며 "지난주에도 한 집주인이 지금 분위기상 실거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갱신을 거절했다"고 전했다.
■갱신권 미사용 급증…실효성 '바닥'
2020년 7월 31일 도입돼 시행 6년을 맞은 임대차 2법의 실효성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대료 급등을 막아 세입자의 주거비 부담을 덜겠다는 본래 취지와 달리 가격 상승을 부추겼다는 점에서다.
한국부동산원 자료를 보면 해당 제도가 도입된 2020년 7월 서울 주택 평균 전세가격은 3억6907만원이었지만 1년 후인 2021년 7월 4억7774만원으로 29.44% 급등했다. 제도 도입 직후 매물이 잠기면서 가격이 치솟은 것이다.
임대인들이 4년 동안 전세가가 묶일 것을 고려해 신규 계약 시 시세를 높여 부르는 현상도 벌어졌다. 이후 금리 인상과 전세사기 여파로 일시적 조정기를 겪었지만 올해 7월에는 4억9040만원을 기록하며 2022년의 전고점을 넘어섰다.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쓰지 못하고 재계약하는 이른바 '합의 갱신' 비중도 빠르게 늘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조회에 따르면 전체 갱신 거래 중 세입자가 갱신청구권을 사용한 비율은 지난해 8월 56.9%에서 올해 8월 48.7%로 8.2%p 감소했다. 반면 '합의 갱신'은 지난해 8월 43.0%에서 올해 8월 51.2%로 8.2%p 늘었다.
갱신 계약 10건 중 5건은 임대료 최대 인상폭(5% 이내)의 보호를 받지 못한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세입자들이 이사 갈 집을 찾기가 어렵다 보니 5%를 훌쩍 넘는 인상폭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강 의원은 "시장 현실을 외면한 임대차 정책이 전월세 시장의 불확실성만 키우고, 결국 그 부담을 집주인과 세입자 간 분쟁으로 떠넘기고 있다"며 "정부는 실효성이 떨어진 제도를 붙잡고 있을 게 아니라 임대차 시장의 변화를 면밀히 살펴 국민의 주거 불안과 갈등을 줄일 수 있도록 제도를 전면 재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mail protected] 전민경 이종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