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재테크

"여보, 내년이면 애가 초등학생인데"... 밤 11시 '부동산 앱' 켜고 한숨 짓는 아빠들 [어른의 오답노트]

전상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명절 연휴 친척들의 부동산 무용담이 휩쓸고 지나간 9월의 끝자락. .
내년이면 책가방을 멜 일곱 살 아이를 위해 '학군지 갈아타기'를 꿈꾸지만, DSR 규제와 까마득한 호가 앞에서 결국 뼈아픈 후회만 삼켜야 하는 4050 가장들의 서글픈 밤에 대하여.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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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9월 29일 화요일 밤 11시. 아내와 아이가 곤히 잠든 거실, 소파에 홀로 앉은 중년 남성의 스마트폰 화면에는 붉은색과 푸른색의 주식 창 대신 '부동산 실거래가 앱'이 켜져 있다. 지도를 이리저리 확대하며 학원가가 잘 형성된 동네의 아파트 단지들을 누르다 보면, 억 단위로 널뛰는 호가에 숨이 턱 막혀온다.

올해 일곱 살.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할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애들 크는 건 금방인데, 언제까지 이 좁은 집에 살 순 없잖아. 학교 들어가기 전에 학군 좋은 곳으로 무리해서라도 이사 가는 게 맞지 않을까?"
며칠 전 저녁 식탁에서 조심스레 건네던 아내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하지만 현재 살고 있는 집의 전세금을 빼고, 마이너스 통장에 남은 영끌 대출 한도를 머릿속으로 아무리 두드려보아도 새 아파트의 문턱을 넘기엔 턱없이 모자라다.

◇ '그때 살 걸'… 행동하지 않은 것에 대한 가장 뼈아픈 후회

행동경제학에서는 사람들이 '행동해서 발생한 손실'보다 '행동하지 않아서 놓친 이익(부작위의 후회)'을 훨씬 더 고통스럽게 기억한다고 말한다. 주식 투자에서 손절을 한 고통보다, 내가 팔고 나서 급등해 버린 주식을 볼 때의 미련이 더 지독한 것과 같다.

부동산 앱을 들여다보는 아빠들의 머릿속엔 끊임없이 과거의 오답 노트가 재생된다.

'3년 전, 대출이 무서워 청약을 포기했던 그 단지', '아내가 사자고 했을 때, 집값이 떨어질 거라며 고집을 피웠던 그 순간'들이 유령처럼 떠오른다.

묵묵히 회사에 출근해 성실하게 월급을 모아 온 나의 근면함이, 자산 인플레이션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는 무능함으로 전락해 버린 것 같은 깊은 무력감이 화요일 밤의 거실을 무겁게 짓누른다.

◇ DSR 한도에 갇힌 아빠의 좁아진 어깨

뉴시스
뉴시스

월급날의 기쁨도 잠시뿐이다. 정부의 강력한 DSR 규제 앞에서 월급쟁이 가장의 대출 한도는 잔인하리만치 차갑게 잘려 나간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서 연봉을 높여도, 오르는 집값을 대출로 따라잡는 것조차 불가능해진 시대. 은행 앱의 '대출 한도 조회' 버튼을 눌러보고 확인한 차가운 숫자 앞에서 가장들은 조용히 스마트폰을 덮는다.

아이에게는 언제나 든든한 슈퍼맨이고 싶지만, 부동산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는 자신의 날개가 너무도 초라하게 느껴진다. 내 아이가 남들보다 더 넓은 거실에서 뛰놀고, 더 좋은 환경에서 책가방을 메기를 바라는 그 평범하고도 위대한 꿈이,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는 부모의 '자산 계급'을 증명하는 잔인한 시험대가 되어버렸다.

◇ 평수의 크기가 아빠의 크기를 결정하지 않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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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화요일 밤, 부동산 앱의 차가운 숫자에 스스로를 너무 가혹하게 옭아매지는 말자. 당신이 과거에 주택 매수를 망설였던 이유는 투자에 무지해서가 아니라, 무리한 대출로 행여나 가족의 일상에 균열이 갈까 두려웠던 가장으로서의 '무거운 책임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집의 평수가 넓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아이를 향한 당신 사랑의 크기마저 좁은 것은 결코 아니다.

부족한 자산을 미안해하며 남몰래 한숨짓는 그 애틋한 마음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아이에게 가장 훌륭하고 든든한 학군이자 피난처다. 팍팍한 현실 속에서도 가정을 지키기 위해 내일 아침 다시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실을 당신의 묵묵한 출근길이, 그 어떤 화려한 신축 아파트보다 고귀하고 위대하다.

[email protected]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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