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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다노 창업자에서 '홍콩 민주화 상징'으로…지미 라이의 끝나지 않은 싸움 [홍채완의 글로벌 이사람]

홍채완 기자
파이낸셜뉴스

밀항 소년, 의류 재벌 거쳐 언론사 창업 천안문 유혈 진압에 인생 전환…中 비판 앞장 징역 20년 선고…국제사회 석방 요구에도 옥중 생활 지속돼

지미 라이가 2020년 7월 1일 홍콩에서 인터뷰하는 모습.AP뉴시스
지미 라이가 2020년 7월 1일 홍콩에서 인터뷰하는 모습.AP뉴시스

[파이낸셜뉴스] "지미 라이를 석방하라"

지난 9월 미중 정상의 국빈만찬이 열린 미국 백악관 밖에서는 시위대의 구호가 울려 퍼졌다. 백악관 동쪽 몇 블록 거리에서 친중·반중 시위대가 경찰 저지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했다. 반중 시위대는 홍콩 민주화 운동가 지미 라이의 석방을 요구했다.

그러나 당시 두 정상은 라이의 석방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모두 응하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라이 문제를 논의했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인 성과는 공개하지 않았다. 화려한 외교 행사장 밖에서 라이의 이름이 울려 퍼졌지만, 석방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올해 78세인 라이는 의류 브랜드 지오다노 창업자이자 홍콩 빈과일보 설립자다. 중국 본토에서 밀항해 의류 공장 노동자로 출발한 그는 기업가로 성공한 뒤 중국 당국을 비판하는 언론인이 됐다. 홍콩의 경제적 성공을 보여주던 자수성가의 주인공은 이제 홍콩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둘러싼 갈등을 상징하는 인물이 됐다.

밀항 소년의 성공, 천안문에서 방향을 바꾸다
1947년 중국 광동성에서 태어난 라이는 12세 때 배에 숨어 홍콩으로 건너왔다. 의류 공장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렸고, 영어도 스스로 익혔다. 1981년 설립한 지오다노가 해외로 사업을 넓히면서 그는 큰 부를 쌓았다.

그의 삶을 바꾼 사건은 1989년 천안문 유혈 진압이었다. 중국 당국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하는 모습을 지켜본 그는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를 위한 활동에 뛰어들었다.

1990년 주간지 넥스트 매거진을 창간했고, 홍콩의 중국 반환을 2년 앞둔 1995년에는 빈과일보를 세웠다. 기업가로서 축적한 자본을 언론 사업에 투입하며 중국 당국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를 키운 것이다. 그의 정치적 활동으로 중국 본토의 지오다노 매장들이 당국의 압박을 받으면서 이후 그는 의류 사업에서도 손을 떼게 됐다.

빈과일보는 홍콩 민주파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주요 매체로 자리 잡았다. 2014년 우산혁명과 2019년 대규모 민주화 시위를 거치며 그는 중국 당국에 맞서는 홍콩의 대표적인 인사로 국제사회에 이름을 알렸다.

신문은 멈췄고, 창업자는 감옥에 갇혔다
중국 당국과의 갈등은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을 계기로 결정적인 국면을 맞았다. 라이는 그해 8월 체포됐다. 빈과일보 역시 당국의 수사와 자산 동결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다가 2021년 6월 마지막 신문을 발행했다.

라이에게는 외국 세력과의 결탁 공모와 선동적 출판물 관련 혐의가 적용됐다. 홍콩 법원은 지난해 12월 유죄를 인정한 데 이어 올해 2월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고령인 그에게 20년형은 여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판결을 홍콩 언론 자유에 대한 심각한 타격으로 규정하며, 독립 언론과 중국 공산당 비판자들을 억누르려는 의지를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반면 홍콩과 중국 당국은 라이의 재판이 공정하게 진행됐으며 국가보안법 아래 누구에게나 법이 동등하게 적용된다는 입장이다. 국가보안법이 2019년 대규모 시위 이후 홍콩의 질서를 회복했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장기 수감에 따른 건강 우려도 커지고 있다. 가족들은 독방 생활과 건강 악화 등을 이유로 그의 형량이 사실상 "사형선고"나 다름없다고 호소해왔다.

국제사회가 부르는 그의 이름…석방은 여전히 미지수
영국 시민권자인 라이의 석방 문제는 영국과 중국 사이의 외교 현안이기도 하다. 영국 정부는 2024년 그의 석방을 우선 과제로 정했고, 키어 스타머 전 총리는 올해 1월 베이징에서 시 주석을 만나 석방을 촉구했다.

후임인 앤디 버넘 총리도 이 같은 요구를 이어갔다. 버넘 총리는 지난 9월 유엔총회를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미중 정상회담에서 라이 문제를 제기해달라고 요청했다. 영국 대표단은 라이가 석방되면 영국에서 거주할 수 있다는 뜻도 전달했다.

미국 의회에서도 압박 움직임이 이어졌다. 크리스 스미스 공화당 하원의원과 댄 설리번 공화당 상원의원은 라이와 같은 홍콩 정치범이 사망할 경우 제재와 정책적 불이익을 부과하는 법안을 지난 9월 발의했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요구가 향후 석방으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베이징에서 시 주석을 만났을 때도 라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이번 9월 회담 이후에도 석방에 관한 구체적인 진전은 공개되지 않았다.

12세 밀항 소년에게 홍콩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해준 곳이었다. 의류 공장 노동자를 기업가로, 기업가를 언론인으로 만든 도시이기도 했다. 그 도시의 자유를 지키겠다며 중국 당국과 맞선 라이는 지금 감옥에 있다. 그가 만든 신문의 발행은 멈췄지만, 석방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홍콩을 넘어 전 세계로 이어지고 있다.

홍콩 빈과일보 2021년 6월 24일 마지막 신문.연합뉴스
홍콩 빈과일보 2021년 6월 24일 마지막 신문.연합뉴스

[email protected] 홍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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