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가스 잠든 알래스카 노스슬로프, 韓 자본 기다려 [박종원의 그때 여기]
북극권에 접한 영구동토층 노스슬로프, 美 에너지 생산 핵심 거점
이미 1980년대에 남북 관통 송유관으로 원유 개발 융성
원유와 함께 나오는 천연가스, 운송 수단 없어 밖에 못 파는 상황
가스관 신설해 천연가스 수익화 노력, 韓 자본 투입 기대
[파이낸셜뉴스] 미국 알래스카주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브룩스 산맥을 넘어 북쪽으로 향하면 북극해까지 이어지는 완만한 경사면과 구릉지를 만나게 된다. 이곳의 이름은 말 그대로 '북쪽 사면(North Slope·노스슬로프)'이다. 행정 구역상 미국 본토의 '카운티'와 비슷한 '버러(Borough)'로 지정되어 있으며 면적은 한반도 전체와 비슷한 24만5520㎢다. 땅은 대부분 영구 동토층으로 여름에만 잠깐 녹아 습지가 형성된다. 식생은 이끼와 풀을 비롯한 고산 식물들이 대부분이다. 이 땅에 사는 인구는 2020년 기준으로 1만1031명에 불과했다. 인구의 약 51.5%는 알래스카 원주민이며 그 다음으로 백인(27%)이 많다. 원주민들은 1826년에 서방 탐험가들이 해안 지도를 만들기 전까지 연안 어업과 사냥 등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1800년대에는 포경 산업이 유행하면서 외지인의 출입이 늘었고, 원주민들 사이에서 역병이 돌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의 노스슬로프는 텍사스주와 더불어 미국의 석유 공급을 책임지는 중요한 에너지 거점이다. 지질학자들은 1900년대 초부터 이곳에 석유 및 천연가스가 있다고 추정했으며 수십 년에 걸친 탐사 끝에 마침내 1968년 프루도베이에서 첫 원유 채굴이 시작됐다. 엑손모빌 등 미국 에너지 기업들은 컨소시엄을 구성해 1974년 4월∼1977년 6월 사이 프루도베이와 알래스카주 남부 항구 발데즈를 연결하는 1287㎞ 길이의 '트랜스 알래스카 송유관'을 건설했다. 해당 시설은 당시 80억달러가 투입된 세계 최대 규모의 민자 건설 사업이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알래스카주에서 생산되는 원유는 2025년 기준으로 일평균 42만1000배럴이었다. 이는 같은 해 미국 전체 원유 생산량(일평균 1358만배럴)에 비하면 약 3% 수준이다. 다만 알래스카주의 원유 생산량은 고점이었던 1988년에 일평균 200만배럴을 기록하며 당시 나라 전체 생산량(일평군 981만배럴)의 약 20%를 차지했다. 알래스카주의 원유 생산량은 올해 들어 신규 유전이 대거 개발되면서 급반등하고 있다. 알래스카주의 원유 가운데 95%는 노스슬로프에서 생산된다.
알래스카주에는 석유만큼이나 천연가스도 풍부하다. 알래스카주의 천연가스 생산량은 2025년 기준 991억900만m³로 미국에서 텍사스, 펜실베이니아, 뉴멕시코, 루이지애나, 웨스트버지니아에 이어 6번째로 많았다. EIA는 알래스카주 노스슬로프에서 생산되는 천연가스가 현지 수요보다 많지만 남부로 운송할 수 있는 시설이 없다고 지적했다. 현재 노스슬로프에서는 원유 채굴과정에서 나오는 천연가스를 다시 땅에 밀어 넣어 원유 채굴을 가속하는 용도로 쓰고 있다.
이러다보니 주요 에너지 기업들은 노스슬로프에서 남아도는 천연가스를 남부 항구로 옮겨 내다 팔기 위해 노력했다. 엑손모빌과 BP, 코노코필립스 등 다국적 에너지 기업들은 프루도베이 가스전에서 추출한 천연가스를 남부 니키스키까지 옮겨 액체로 만든 다음 수출하는 사업안을 구상했다. 이를 위해서는 알래스카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약 1297㎞ 길이의 가스관과 액화터미널 등의 기반시설이 필요하다. 에너지 기업들은 2014년에 해당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지만 막대한 사업비와 경제성 문제 등으로 2017년에 사업에서 철수했다.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를 둘러싼 논란도 이어졌다.
해당 사업은 이후 알래스카주 산하 알래스카 가스라인 개발공사(AGDC)가 진행했다. 지난해 3월에는 미국 에너지 기업 글렌파른이 가스관 사업 관련 자산을 보유한 AGDC 자회사 '8스타 알래스카'의 지분 75%를 인수하며 건설 사업에 합류했다. AGDC는 나머지 25%를 보유하고 있다. AGDC 측에서는 새 가스관을 이미 건설된 송유관과 고속도로 옆에 나란히 지으면 건설 난이도가 높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지난해 출범한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는 해당 사업을 다시 추진, 아시아에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를 판매하기 위해 노력 중이며 한국 및 일본의 투자를 촉구했다.
[email protected] 박종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