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장에 300 물리고 웃던 김 부장… 식당 이모 '천원 인상' 한마디에 무너졌다" [어른의 오답노트]
주식 계좌에서 날아간 수백만 원은 의연하게 견디면서도, 10월 1일 단골 백반집의 1천 원 인상 안내문 앞에서는 기어코 무너지고 마는 대한민국 아빠들의 서글픈 경제관념
[파이낸셜뉴스] 10월 1일 목요일. 4분기의 시작 일이자, 스쳐 지나간 9월 월급의 흔적을 애써 지워야 하는 서글픈 월 초이다.
점심시간, 회사 근처 단골 백반집에 들른 4050 직장인들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물가 상승으로 부득이하게 제육볶음 가격을 1000원 인상합니다."
고작 1000원. 하지만 이 1000원짜리 한 장의 인상은 팍팍한 용돈으로 한 달을 버텨야 하는 중년 남성들에게 엄청난 분노와 상실감을 안겨준다.
결국 커피라도 아껴보자며 식당 자판기에서 무료 믹스커피를 뽑아 들고나온 이들의 손에는 어김없이 스마트폰이 들려 있다.
그리고 익숙하게 MTS(주식 거래 앱)를 켠다. 화면을 가득 채운 시퍼런 파란불. 간밤에 쏟아진 미국발 악재로 엔비디아며 테슬라가 폭락해 하루아침에 한 달 치 월급인 200~300만 원이 증발했지만, 놀랍게도 이들의 표정은 백반집에서보다 훨씬 평온하다.
대한민국 4050 가장들의 경제관념은 기묘한 이중성을 띠고 있다. 주식 계좌 속의 돈은 마치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사이버 머니처럼 취급한다. 마이너스 20%, 30%가 찍혀 수백만 원이 날아가도 "주식은 원래 엉덩이 무거운 놈이 이기는 것"이라며 워런 버핏 빙의라도 한 듯 대인배의 면모를 뽐낸다.
떨어지면 오히려 '물타기(추가 매수)'를 해야 한다며 기적같이 비상금이나 마이너스 통장 한도를 찾아낸다.
하지만 현실의 돈 앞에서는 지독한 구두쇠로 돌변한다. 아내가 쓸만한 화장품 하나를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고민할 때 "요즘 돈 들어갈 데가 많다"며 눈치를 주고, 훌쩍 커버린 아이의 신발을 새로 사야 할 땐 인터넷 최저가를 찾느라 밤을 새운다. 주식 창에서는 과감하게 '매수' 버튼을 누르던 그 배포 큰 남자는 어디 가고, 5000 원짜리 커피 한 잔 앞에서도 손을 떠는 쪼잔한 중년만 남는 것이다.
단순히 주식 중독이나 경제관념의 부재가 아니다. 가장들이 주식 계좌의 거대한 손실 앞에서도 의연한 척 버티는 이유는, 그 파란불 속에 가족의 미래를 향한 '서글픈 희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월급만 차곡차곡 모아서는 평생 서울 하늘 아래 번듯한 내 집 하나 마련하기 힘든 시대. 자식들 대학 등록금은커녕 나의 노후조차 보장받지 못한다는 짙은 불안감이 우리를 주식 시장이라는 거친 바다로 등을 떠밀었다. 지금 계좌에 찍힌 저 마이너스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팍팍한 현실을 단숨에 역전시켜 가족들에게 조금 더 여유로운 삶을 쥐여주고 싶은 가장의 무거운 책임감이 치르고 있는 '비싼 수업료'인 셈이다.
4분기가 시작되는 10월 1일. 애써 물타기 한 주식이 여전히 파란색이어도, 당장 내일부터 시작되는 10월의 팍팍한 삶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
오늘 하루쯤은 주식 창의 무자비한 숫자에서 눈을 떼보자. 모니터 속에서 수백만 원이 사라졌다고 해서, 당장 당신의 현실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대신 오늘은 퇴근길에 만 원짜리 지폐 몇 장을 꺼내, 오직 나를 위해 혹은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따뜻한 치킨 한 마리, 달콤한 과일 한 봉지를 사 들고 들어가 보자.
언제 빨간불로 바뀔지 모르는 차가운 스마트폰 화면보다, 내 손에 쥐어진 소박한 간식 봉지에 활짝 웃는 가족의 얼굴이야말로 변동성 없는 내 인생 최고의 확실한 '우량주'일 테니까.
[email protected] 전상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