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사설

[사설] 표현의 자유도 진실의 벽은 넘지 못한다

파이낸셜뉴스

영화 '암살자(들)' 싸고 논란 가열
진실은 절대적 가치로 존중받아야

29일 서울의 한 영화관에 '암살자(들)' 포스터가 걸려 있다. 이날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암살자(들)'를 둘러싼 역사 왜곡 논란과 관련해 이종배 전 국민의힘 서울시의원이 영화 제작진이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사진=뉴시스
29일 서울의 한 영화관에 '암살자(들)' 포스터가 걸려 있다. 이날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암살자(들)'를 둘러싼 역사 왜곡 논란과 관련해 이종배 전 국민의힘 서울시의원이 영화 제작진이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사진=뉴시스

육영수 여사 피격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영화 제작진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해사건의 배후에 있는 것처럼 역사를 왜곡한 혐의로 전 서울시 의원에 의해 경찰에 고발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측근인 유영하 국민의힘 의원은 "영화가 명백한 사실을 비틀어 역사를 왜곡하고 박 전 대통령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며 "유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패륜행위이자 역사에 대한 반역"이라고 주장했다.

육 여사 피격사건은 재일교포 2세 문세광의 소행임이 수사와 재판을 통해 명백하게 확인됐다. 그것은 진실이다. 영화가 박 전 대통령 측 또는 중앙정보부가 사건을 계획했을 수 있다고 암시한 것은 진실을 왜곡한 것이 분명하다. 제작사 측은 "영화 속 가설과 극적 설정을 역사적 사실로 제시하고 있지도 않다"고 주장했지만 궤변에 가깝다.

문학작품이나 영화의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 좌익과 빨치산, 인민군을 찬양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던 소설 '태백산맥'을 내사했던 검찰이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무혐의로 결론낸 것도 그런 이유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는 결코 무한하지 않다. 그대로의 사실, 즉 진실을 왜곡할 권리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진실은 단 하나뿐인 절대적 가치로서 존중받아야 한다.

영화를 만든 허진호 감독은 다른 영화에서도 역사를 왜곡한 전례가 있다. 바로 영화 '덕혜옹주'다. 고종의 딸 덕혜옹주가 정략결혼의 희생양이 된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영화에서처럼 항일운동을 하거나 한글학교를 세운 적은 없다. 옹주는 감시를 받았지만 일제의 도움으로 풍족한 생활을 했다. 옹주는 어머니 장례 참석 차 귀국한 일이 있는데 조선 땅을 한번도 밟지 못했다고 영화에서는 그렸다. 극적 효과를 위해 진실을 왜곡한 것이다.

예술적 상상력의 영역은 기록이나 증거가 남아 있지 않아 사실과 진실을 알 수 없는 문제로 한정되어야 한다.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인물이나 사건을 픽션화한 드라마를 왜곡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기록이나 사진으로 존재하는 진실을 부정하는 것은 가짜뉴스와 다름이 없다.

거짓이 주는 감동은 의미가 없다. 진실보다 소중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진실을 부정함으로써 관련된 사람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면 명백한 실정법 위반행위다. 그런 점에서 영화 '암살자(들)'이 고발을 당해 법의 심판대에 오르는 것을 반대하고 막을 도리는 없다.

이번 논란이 좌우 진영 논쟁, 정치적 공방으로 비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영화 내용이 북한의 선전 영화 '민족과 운명'에서 나왔던 내용과 흡사했다는 탈북민의 증언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이념적 시각에서 볼 것이 아니라 오직 진실 추구의 잣대로 이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5·18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이 또한 진실 왜곡으로 비판받아 마땅한 것이다.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